아자흐 아내도 당일 살해된 후 집과 함께 불태워져
함께 있던 자녀들과 조카들, 처남은 도망쳐 목숨 건져

엘리자베스를 포함해 25명의 기독교인이 살해된 카메룬 남서부 맘페 마을. 이 지역은 인구의 95%가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엘리자베스를 포함해 25명의 기독교인이 살해된 카메룬 남서부 맘페 마을. 이 지역은 인구의 95%가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구글맵
지난 11월 6일 카메룬 남서부 지역 맘페(Mamfe) 마을에서는 총을 든 무장 괴한들이 급습하여 최소 25명의 기독교인을 사살하고 집들을 불태우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한 남편의 아내이자 다섯 자녀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Elizabeth)도 이날 집에 쳐들어온 괴한들에게 희생된 후 시신이 집과 함께 불태워졌다. 당시 함께 있던 두 자녀와 조카들 및 처남은 빠르게 뒷문으로 도망쳐 목숨을 건졌다.

엘리자베스와 남편 아자흐 프란시스 아슈(Ajah Francis Ashu, 54)의 가족은 나이지리아 국경에서 50km가 채 떨어지지 않은 이 마을에서 내전에 의한 치안 악화로 공포와 불안에 떨며 살아왔다. 카메룬의 소수 영어권 지역 분리주의자들은 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북서부 및 남서부 카메룬 지역에서 공격과 납치, 살해를 자행해 왔다. 특히 분리주의 반군은 2017년부터 암바조니아(Ambazonia)라는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끊임없는 폭력을 저질러, 지난 7년간 최소 6,000명이 사망하고 100만 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지역 인구의 95%는 기독교인으로, 기독교 신앙도 종종 공격의 이유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실한 기독교인인 아자흐는 기독교가 강하고 사람들이 친절한 한국에서 난민 비자를 받아, 하루빨리 가족이 함께 모여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번번이 비자를 거절당하던 중 이번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사고로 그의 소박한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제 아자흐에게 남은 소망은 하나다. 자녀들을 안전한 한국에 데려와서 함께 사는 것이다. 아자흐는 최근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엘리자베스와 결혼한 것은 내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었다. 아내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다”면서 “그녀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저와 우리 아이들을 지지해 주었고,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해주었다. 제가 한국에서 일자리가 없는 동안에도 아내가 아이들을 홀로 부양해 왔다”며 그리운 마음을 드러냈다.

아자흐는 1990년 카지푸(Kajifu)라는 마을에서 열린 학생 행사에서 엘리자베스를 처음 만났다. 1992년 첫째를 낳고 1993년 전통혼례를 치렀으며, 1998년, 2001년, 2005년 2008년에 각각 자녀를 출산하여 현재 자녀들의 나이가 31세, 25세, 22세, 18세, 15세가 되었다. 법정에서의 결혼은 2012년에 했다.

아자흐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 11월 6일, 카메룬 시각으로 오전 4시쯤 넷째 딸의 전화를 받았다. 딸은 울고 있었고, 무슨 문제인지 묻자 “엄마가 돌아가셨다”라고 말했다. 그 충격으로 아자흐는 더는 말을 꺼낼 수 없었고, 4일 후에야 구체적으로 무슨 사건이 발생했는지 알기 위해 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무장 괴한들에 살해된 엘리자베스
▲무장 괴한들에 살해된 엘리자베스
넷째 딸에 따르면,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공포에 빠진 가족들이 엘리자베스를 제외하고 모두 화장실로 도망쳐 숨었다고 한다. 그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장 괴한들은 엘리자베스의 방에 들이닥쳤다. 총을 든 그들은 엘리자베스에게 남편과 아이들에 대해 물었고, 엘리자베스는 남편이 집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순간 괴한은 엘리자베스를 총으로 쏴 죽였다.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본 딸은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예수님”이라고 두 번 소리쳤다고 한다.

괴한들은 집에 함께 있던 두 자녀와 조카들과 처남, 그리고 마을에서 같은 위험에 처해 도망친 4살과 7살 정도 된 아이들을 찾기 위해 계속 다른 방들을 뒤졌다. 다른 가족들이 처음 총성을 듣자마자 집 뒷문으로 뛰쳐나온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한 괴한들은 엘리자베스의 시신과 함께 집을 불태운 후 떠났다. 엘리자베스의 시신은 사망 당일 오후 3시쯤 매장됐다.

아자흐는 사건 이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임시로 멀리 떨어진 마을로 이동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그는 “자녀들은 이 일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우울해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가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본 넷째 아이가 그렇다”며 “자녀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 괴한들은 앞으로 다시 이들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제 아이들은 안전하지 않다”고 걱정했다.

아자흐는 “제 모국 카메룬에서는 이런 야만적 행위를 벌이는 알려지지 않은 무장 괴한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들이 매일 사람들을 살해하고 있어 주민이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부 카메룬의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는 영어권 카메룬의 진정한 해방 전사들은 이런 사악하고 악마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며 “이 알려지지 않은 총잡이들은 정부에 의해 파견되어 무고한 사람을 강간하고 살해하며, 집을 불태우기 때문에 절대 체포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아자흐는 2013년 컨퍼런스를 위해 한국에 온 이후 비자를 변경하여 현재까지 9년간 한국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4년 1월 4일 손가락 절단 사고로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다행히 G1 의료비자를 받아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한국에 머물렀지만, 기한이 끝나자 이민국은 아자흐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아자흐는 내전이 계속되는 카메룬에 돌아갈 수 없어 난민 비자 신청을 했다. 세 차례 법원에 출석했지만 비자는 거절됐고, 이후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항소를 신청하여 항소가 승인된 상태다.

아자흐는 “2022년 9월 비자를 연장해야 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날짜를 놓쳤다. 3일이 지나 찾아갔을 땐, 해당 출입국관리소에서 비자 연장이 안 되니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지 않으면 비자 신청이 취소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두 차례 받았는데, 그들에게 가서 설명하기가 두렵다”며 “체포돼 고국으로 송환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자흐는 한국에 온 이후 교회를 꾸준히 다녔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여전히 굳게 붙들고 있다. 그는 “아내와 다른 사망한 24명의 기독교인이 정의를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길 바란다”며 “또한 한국 정부를 통해 제 아이들을 이곳에 데려올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피해를 본 맘페 마을 주민 중 다수가 임시 피난처를 찾기 위해 다른 도시와 마을로 도망갔다고 한다.

아자흐는 “비록 제 아내는 죽었으나, 저는 그녀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며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에 있을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당신을 이 땅에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이 시간 당신을 다시 데려가기로 결정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지요. 나는 당신이 지금 천국에 있다는 것을 알아요. 하나님은 당신이 죽기 전 당신과 함께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를 주셨어요. 당신이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요. 천국에서 우리 모두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