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구 목사
▲이선구 목사
권위(權威)란 ‘다른 사람을 통솔하여 이끄는 힘’을 말한다. 반면 권위의식(權威意識)이란 ‘자신이 다른 사람을 통솔하거나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나 판단’을 말한다.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면 권위주의가 되고, 스스로 권위를 이용하여 타인을 통제하면 권위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권위 있는 사람은 타인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권위적인 사람은 타인의 변화만을 강요하고 모든 일을 간섭하는 마이크로 관리자(micromanager)가 된다.

인력경영학자 이윤선 교수에 의하면 마이크로 관리(micro-management)란 상급자가 하급자의 행동을 간섭, 감시하는 것을 주요 행태로 삼는 관리 스타일을 뜻하며, ‘micromanagement’로 쓰기도 한다.

마이크로 관리를 즐겨 하는 마이크로 관리자는 권한 위임을 거부하면서 하급자가 규정에 따른 권한을 행사하는 것마저 자신에게 미리 상의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면 분개한다. 그래서 마이크로 관리는 ‘자율성과 창의성의 적’으로 간주한다.

마이크로 관리자는 자신의 그런 행위가 갖는 부정적 측면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며, 자신의 관리 스타일을 ‘구조화된(structured)’, ‘조직화된(organized)’, ‘완벽주의적(perfectionistic)’ 등과 같은 언어로 정당화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영국의 조직 이론가 린다 그래튼(Lynda Gratton)이 2025년에 기업을 이끌 Y세대를 통찰하기 위해 MBA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학생들이 부정적인 의미로 가장 자주 사용한 단어는 마이크로 관리(경영)이었다. 인터뷰에 참가한 20여 명은 자신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하면서 시시콜콜 지시하고 과도하게 감독하는 마이크로 관리는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리 인생은 어떤 권위(權威)를 존중하며 사는가에 따라 그것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구약의 사사 시대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에 따라 살아갔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이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사사 시대의 권위는 사사들에게 있었지만, 그 권위가 통일성 있게 지속적으로 백성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각자 자신의 권위대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1장에 보면 ​‘엘리’라고 하는 제사장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왕정 제도 이전의 사사 및 대제사장으로서 정치적인 면과 영적인 면을 총괄하는 최고 통치자이며,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어른이었다. 그는 성전에 엎드려 기도하는 중에 혹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어려운 문제를 상담하여 위로와 격려를 해 주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는 대제사장이었다.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어라.”(삼상 1:14) 엘리는 성전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한나의 모습을 술 취한 행동으로 보았던 것이다. “술을 끊어라”고 권면하는 제사장 엘리의 모습에서 실상과는 심각한 왜곡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엘리 제사장은 오랫동안 사역을 감당해 오면서 스스로의 교만과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나 선교단체에서도 동일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초기에는 겸손하게 시작하지만, 세월이 지나는 동안 교회나 조직이 성장하면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하고 마이크로 관리로 매사에 간섭하고, 권위가 아닌 권위의식으로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세상이 말하는 권위는 그 사람이 처한 위치, 또는 신분과 연결되어 있다. 대통령의 말에 사람들이 귀 기울이고 따르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권위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그 신분에 어쩔 수 없이 머리 숙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러한 권위를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권위를 세상을 다스리는 힘으로 여기는 것은 권위에 대한 왜곡된 생각이다. 권위가 ‘다른 사람을 통솔하여 이끄는 힘’이지만, 위임받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의 권위는 국민한테서 위임받았듯이 담임목사의 권위는 성도들한테서 위임받은 것이고, 조직의 대표의 권위는 조직 구성원들에게서 위임받았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그러하기에 진정한 권위는 자신에게 위임된 권위를 합당하고 투명하게 위임할 때 권위의식으로 변질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매사에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권위가 아닌, 권위의식이 투철한 사람이다. 말로는 복음전파와 선교를 말하지만, 교회와 노회와 총회에서 사역을 빙자하여 감투를 탐하는 모습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정신과는 전혀 맞지 않는 심히 민망함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끝으로 이러한 왜곡된 행동은 지극히 세상적인 기준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꺼낸 것 중 하나가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권위와 영광을 예수님께 주겠다는 것이었다. 마귀조차도 예수님께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와 영광을 제시했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회당에 있던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눅 4:34)라고 말했다. 귀신들도 예수님을 자신들을 멸할 수 있는 분으로 인정한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말한다. 예수님에 대한 그의 지식은 정확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말로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고 우리를 멸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할지라도, 예수님 없이도 우리 힘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것은 지극히 세상 적이고 마귀에 속아서 사는 삶의 방식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혹여 나에게 어떤 권력이나 권위가 있다면, 그 권력과 권위의 진정한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알고서, 주어진 권력과 권위를 선용(善用)할 수 있도록 역량 있는 위치의 타인에게 위임하는 용기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게 할 사명이다.

이선구 목사(지구촌사랑의쌀나눔재단 이사장, 세계선교연대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