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전공과 직업이 1대 1로 꼭 맞는 직업은 많지 않아
젊은이들, 직업 선택 시 자본주의에 좌우되는 점 아쉬워
현대는 수많은 직업이 존재한다. 2020년 발간된 ‘한국 직업사전 통합본 제5판’은 대한민국의 직업 수를 1만 2,923개, 직업명은 1만 6,891개로 보고했다. 그리고 이젠 인공지능(AI)과 로봇, 빅데이터 등 혁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확산, 전 지구적 환경문제 등으로 직업군도 끊임없이 재편되고 있다. 기존 직업군이 빠르게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직업군이 빠르게 생겨나기도 하는 시대를 맞아 문화비전코리아와 청소년이 되고 싶어 하는 직업군들을 조사하여 현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기획했다. <편집자 주>
누구나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처방전을 발급받아 약국에서 약을 구입한다. 이는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우리 삶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직간접으로 접하는 약국과 약사를 보며 많은 학생이 약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평생을 약사로 일하고, 은퇴 후엔 자폐 및 지적장애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최은용 약사를 만났다. 최은용 약사는 1980년 성균관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부터 2019년까지 육아를 위해 잠깐의 공백기를 제외하고 29년간 십자약국을 운영했다.
A. 공부에 별 관심 없던 초등학생 때, 인체에 대한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 갑자기 학교 수업에 흥미가 생겼어요. 그러면서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되었지요.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화학, 생물, 물리에 더욱 재미를 느끼게 된 게 약대로 이어졌고, 대학 공부와 약사 면허증을 받기까지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서 이런 관심 분야 위주의 공부 능력으로는 약대 입학은 어렵겠지요.
Q. 약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누구나 문과적 소양과 이과적 소양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수업 과목의 대부분이 화(化), 생(生), 물(物), 분석(分析)이 들어가므로 이과적, 원리적, 분석적 성향이 많은 사람이 약학 공부하기에 유리합니다.
약대뿐 아니라 각자 호기심과 흥미와 재미가 유발되는 것에 집중하면서 대학 학과를 선택하고, 졸업 후 관련된 직업으로 이어진다면 일에 대한 만족도나 성과가 좋게 나올 겁니다.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도 있고요. 대학 전공과 직업이 1대 1로 꼭 맞는 직업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도리어 연관된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만큼 폭넓고 관계가 잘 되는 사람이 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더 유리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의사, 약사처럼 직업을 미리 정하고 그 길만이 유일한 길인 줄 알고 좁은 문에서 경쟁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기보다는 직업군으로 설정해 놓으면 직역이 더 넓어지겠지요. 예를 들어 의약 계통, 영업 계통, 농업 계통, 법률 계통, 건축 계통, 경제 계통, 전기 계통, 운동 계통 등으로요. 이런 것들이 연결되어 뿌리처럼 뻗어나간 국민이 이끌어가는 국가가 튼튼한 국가이겠지요.
Q. 약사가 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일단은 사람의 몸과 정신 건강, 환경오염 등에 대한 관심과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굳이 순위로 따지자면 점수로 표시할 수 없는 ‘마음가짐’이 1번, ‘시험 점수’가 2번이었으면 합니다.
Q. 약학 연구원이 되는 것은 어렵나요?
A. 직업은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어떤 직업도 쉬운 직업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연구원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듯 탐구, 끈기, 인내 등이 요구되는 어려운 직업임은 분명하지만, 자기 직업을 ‘무엇’(what?)이 아니라 ‘어떻게’(how!), 바로 자신만의 ‘노하우’(know how)를 만들어 가느냐가 자존감을 유지해 가면서 만족감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직업관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약학이라는 학문은 영역이 넓고 다양한 곳에서 응용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질병을 일으키는 환경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지고, 길어지는 수명과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더욱 세밀하게 분석하고 연구하게 될 분야입니다, 즉, 쓰임이 많은 직업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연구원의 스트레스 지수는 높은 편에 들어갑니다.
A. 요즈음은 약학을 이해하고 약사로서의 내적 마음가짐을 가지고 대학 선택을 하기보다는 부모님의 역량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성적으로 약대생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약사가 된 이후에도 경제력을 내세우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약대뿐 아니라 우리 미래의 젊은이들이 직업 선택에 있어 자본주의에 좌지우지되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고,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환경, 화학, 생물, 제조, 화공, 바이오, 생명, 유전자 등 약학 계통으로 보면 직업 선택지가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약학 계통의 일을 한다 해도 많은 다른 계통의 일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폭넓은 관심을 강조하는 겁니다. 폭넓은 관심과 맷집, 근력을 키우는 습관은 그 특성상 어려서부터 갖는 것이 좋겠지요.
Q. 약대를 졸업하고 약국 약사, 병원 약사, 공직(공공기관) 약사, 제약 회사 등으로 취업한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의 약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은지요?
A. 방학 기간에 약국이나 병원, 기관, 제약 회사의 약대생 실습을 적극적으로 해 볼 것을 권합니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자신의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직장에 대한 실망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곳에서 일하든지 업무는 달라도 일이 서로 연계되고 있어 폭넓은 경험은 큰 도움이 됩니다. 화장품, 환경오염, 건강식품 분야도 있고, 약학 관련 기자처럼 문과적인 일과의 콜라보도 할 수 있습니다. ‘약’자가 있다고 꼭 ‘약’과 관련된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직업의 영역이 넓습니다.
특히 처음부터 약국 운영에 관심 있는 약사라면 졸업 후 여러 약국에서 1년 정도 계약직 관리 약사로 근무하면서 타 약국의 장단점을 자기 약국에 적용할 것을 권합니다. 실패도 경험이라 할 수 있지만, 약국 개설에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에 실패 확률을 전략적으로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배우러 들어간 만큼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근무하기’는 좁은 약계에서 좋은 평판과 인맥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Q. 약국 경영은 얼마나 하셨나요?
A.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제약회사 실험실에서 1년간 일하고, 결혼 후 4년간 제 약국을 경영하다가, 남편의 무역업을 따라 외국을 드나들며 4년간 육아와 집안일에 전념하였습니다. 이후 다시 25년간 약국 경영을 시작했고 지금은 은퇴했습니다. 마침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외국에서의 생활과 살림이 어려운 동네에서 약국을 했던 것이 제 직업관이나 인생관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Q. 약사님의 특별한 직업관이나 인생관은 무엇인가요.
A.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학교나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습니다. 점점 더 목표 설정 기간이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목표가 일직선이 될 경우, 주변이 모두 경쟁자가 되면서 폭 좁은 관계 형성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길에서 벗어나게 되면 실패했다고 단정하게 됩니다. 주위에 널려있는 다른 행복들은 다 놓치고, 불행한 이유만 찾게 하는 기초와 바닥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관심 가는 것들로 범위가 점점 좁혀지면서 찾아가는 직업이 자신에게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자존감, 만족감은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를, 또 감사함을 느끼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회가 너무 일찍부터 불안과 불만의 원인을 제공하고, 우울과 분노의 결과물을 얻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예외 없이 부여받은 백지장에 우리는 어떤 인생의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할까요. 제 역할은 색연필을 사주고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까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상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논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굳이 나서서 그같이 말하진 않습니다.
Q. 은퇴 후 어떤 삶을 살고 계신가요?
A. 약국을 운영할 때 틈틈이 중고등학생들에게 진로 상담을 한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먹고사는데 걱정 없는 은퇴 약사로서, 이런 계통의 봉사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은퇴 시기와 코로나 시기가 겹쳐 기회를 만들지 못하다가, 마침 자폐 스펙트럼과 지적장애 청소년들을 위해 교육 봉사할 기회가 생겨 저만의 방법으로 즐겁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일에 경험치를 쌓아가며, 또 꾸준히 배워가면서 교육 봉사를 할 수 있을 때까지 해 볼 생각입니다.
Q. 후배들을 위한 당부의 말을 부탁합니다.
A. 제가 생각하는 교육에 대한 이슈 중 가장 안타까운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좁은 문을 통과만 하면 반드시 행복이 있을 거라 믿습니까. 그 문을 들어가려 너무 애쓰는 것은 아닐까요? 넓은 길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넓은 길에 널려 있는 보물은 안 보려 합니다.
학생들이 약대, 약사에 관한 질문을 하면, 저는 거기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인 얘기를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튼튼한 뿌리’라는 기본을 갖춘 나무가 ‘줄기’를 뻗고 ‘잎’과 ‘꽃’을 피우는 일은 무지하게 힘든 일도, 또 무지하게 애를 쓸 일도 아닌 것 같아 그렇습니다. 게다가 ‘열매’와 ‘씨’까지 만들어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지금도 다 갖춘 상태인데 뭘 더 바라겠습니까. 주변에 좋은 것들도 많은데 굳이 어려운 것만 고집하지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