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은 다락같이 높은데 자존감은 깡통이 된 것 같아,
젊은이들, 작지만 내 꿈을 이루고 나로 사는 것이 중요해”
한국인의 애송시 ‘풀꽃’의 나태주 시인은 때로는 거침없고 솔직한 입담으로 웃음을 주고, 때로는 따뜻하고 진심 어린 위로의 말로 감동을 주었다. 지난 4월 29일 서울 중랑구 상봉동 은혜제일교회(국제독립교회연합회 소속, 최원호 담임목사)에서 열린 ‘행복한 우리동네 BOOK 콘서트’(매·마·토·2)에 초청된 나태주 시인은 이 시대에 고단하고 불안하고 낙담한 이들을 위해 격려와 용기의 메시지를 건넸다.
1945년생으로 올해 78세인 나 시인은 공주사범학교, 충남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2007년 교장으로 43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했다. 청소년기부터 꿈이었던 시인으로는 26세 때인 1971년에 등단하여 지금까지 수천 편의 시 작품을 써냈다. 소박하고 따뜻한 자연의 감성을 쉽고 간결한 시어에 담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특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풀꽃’으로 국민 시인으로 떠올랐다. 창작 시집 50여 권을 포함해 다양한 문학작품을 써서 총 200여 권의 책을 펴냈고, 흙의문학상, 향토문학상, 편운문학상, 황조근정훈장,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유심작품상, 김삿갓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공주문인협회 회장, 공주녹색연합 대표, 한국시인협회 부회장, 공주문화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을 운영하면서 전국 각지를 다니며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월 중순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서툴고 불안하고 낯선 인생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인생의 종점까지 끝까지 걸어가길 희망하면서 쓴 시집 ‘처음 사는 인생, 누구나 서툴지’를 출간했다.
나 시인은 “어제 아주 특별한 것을 배웠다. 세상의 모든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3인칭인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이 ‘당신, 그대, 님, 너’의 2인칭이 되면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라며 “국민의 반절 가까이가 마음이 아픈데, 시인들도 내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마음속의 힘든 것을 고백하고, 내가 소망하는 것을 하소연해서 들어달라는 것이 시의 출발이거든요. 그런데 그 한 사람한테 고백하고 하소연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대상이) 숫자가 늘어나야 하고, 그래서 가능하면 인류 전체를 상대로 해서 하소연하고 고백하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저는 우리 예수님이 그러셨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전체를 두고, 태어나지도 않은 인류까지도 합쳐서 당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천국에 대해서 하소연해 주신 겁니다.”
그러면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는 ‘풀꽃’ 시를 쓰게 된 계기를 전했다. “사실은 제가 선생 할 때 좀 까칠했어요. 요즘 아이들은 더 까칠하다는데 전 아이들이 덜 까칠할 때 선생 해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제가 선생 할 때도 안 예쁜 애가 있었어요. 애들은 기본적으로 다 예쁜 건 아닙니다. 내 새끼라도 안 예쁠 때가 있어요. 내가 가르치는 내 제자, 내 새끼, 밉지만 어떻게 할까요? 예쁘게 봐야죠. 그렇지 않으면 선생 그만둬야 합니다. 그래서 예쁘지 않은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사랑스럽지 않은데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입니다. 사실은 예쁘지도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은 어떤 대상에 대해 쓴 것입니다. 우리 학교 애들을 위해 쓴 거예요.”
나 시인은 “(‘풀꽃’ 시에서) 3인칭이 있었는데, 사랑이 생겨서 2인칭이 되어 ‘너도 그렇다’라는 시를 시집에 내니 사람들이 아주 많이 보았다”라며 “한국 사람 중 아마도 이 ‘풀꽃’이라는 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한다. 외국에서 살던 사람도 나태주는 모르지만 ‘풀꽃’은 안다고 해서 참 감사했다”고 말했다.
“제 앞에 말 잘 듣는 애들만 있었고, 사랑스러운 애들만 있었으면 저는 그런 글을 안 썼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풀꽃’ 이후로 시인은 나 혼자의 하소연과 나의 고백만 하는 게 아니라, 또 한 사람하고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저것 내가 쓴 것 같아, 나를 위해 시를 써 준 것 같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 시인은 “그런데 이 시를 쓰니, 진짜 예쁜 사람들도 ‘자세히 안 보면 안 예쁘고 자세히 봤더니 예쁘다. 오래 봤더니 안 사랑스럽던 사람이 사랑스럽다’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사람이 ‘저건 나를 위해 쓴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에 우리 마음이 이지러진 증거라고 본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곤 “저는 이 시가 한국에서 폐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2 학생들이 저한테 시를 잘못 썼다고 항의했습니다. 나는 자세히 안 봐도 예쁘고, 오래 안 봐도 사랑스럽다고, 왜 그렇게 시를 썼는지 항의해요. 이게 어떤 탓이냐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이지러진 것입니다. 자존심은 다락같이 높은데 자존감은 깡통이 됐습니다. 밖에 나가 다른 사람과 살 때 자기를 높이는 마음,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내가 나를 높이는 마음이 자존심입니다. 집에 가서 혼자가 됐을 때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에 대해 평가하는 마음이 자존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밖에 나가서는 사람들이 다 뻣뻣하고 당당하고 힘이 들어가 있는데, 집에 들어오면 다 풀어 죽어 있습니다. 저는 이걸 바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겸손하게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내려놔야 하고, 오히려 자존감은 올라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 시인은 이날 특별히 미리 받은 강의료 중 일부를 은혜제일교회에 헌금하고 가기도 했다. 헌금봉투에는 ‘작은 것이 큰 것임을 늘 깨닫게 하소서’라고 적었다. “평생의 제 주제가 ‘작은 것을 큰 것으로 알자’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소년들이여, 대망을 가져라’(보이스, 비 앰비셔스·Boys, be ambitious)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14세 때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했는데, 저는 15세 때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초등학교 선생이 되었는데, 저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그것이 제 평생 가는 길이었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작지만 내 꿈을 이루자고 했는데, 오늘날 젊은이들은 꿈이 너무 커서 걱정이고, 꿈이 확실하지 않아서 걱정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계기도 소개했다. “1971년에 시인이 됐는데, 매우 불안하게 시인이 되었습니다. 어떤 여자한테 버림받아서, 버림받은 아픔을 쓴 것이 저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분이 나를 버려주지 않았으면 시인이 안 됐습니다. 겁나게 원망스러웠는데, 그래서 시인이 됐습니다. 짧게 봐서는 비극, 실패인데 길게 봐서는 성공이고 좋은 일일 수가 있어요. 진짜로 제가 버려져서 시인이 된 겁니다.”
나 시인은 “지금 20~30대 젊은 분들이 제일 막막하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원칙이다. 인생은 어차피 무겁고 고달픈 것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낫다. 문제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고 잘 사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옛날과 달리 이제는 공격자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습니다. 공격자가 밖에 있으면 방어할 수 있는 기제가 밖에 있는데, 공격자가 안에 있는 것은 남이 어떻게 해줄 수 없습니다. 본인이 본인을 공격하고, 자기가 자기를 착취하니 문제입니다. 무한 속도, 무한 경쟁, 무한 정복, 무한 소비가 오늘날 도시의 모습인데, 나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힘든 사람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태주 시인은 행복론에 관해서도 전했다. “행복해지려는 마음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지 않더라도 만족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면 행복해질 겁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옥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때로 천국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같이 사는 사람도 사람 천사가 아닙니다. 나도 그 사람한테 절대 천사 아니에요. 절대로 우리는 천사가 아닙니다. 천사이려고 노력할 때 때때로 천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이 아닌 이 세상을 천국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같이 사는 사람을 천사라고 생각해야 하고, 나도 저 사람한테 천사가 되려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국을 꿈꾸고 천사를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어 나태주 시인은 ‘저녁 때/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힘들 때/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외로울 때/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이라는 ‘행복’을 비롯하여 ‘선물’, ‘멀리서 빈다’ 등 자신의 시를 여러 편 낭송하고 특강을 마무리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신앙 시’를 쓰는 방법을 묻자 나 시인은 “저도 써봤는데, 제일 어려운 시가 신앙시다. 왜냐하면 신앙시는 신의 영역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말하자면 문지방에 발을 딱 걸치고 들어갈까 말까 하는 것으로, 성과 속 사이에서 늘 고민하고 아파하고 방황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신앙 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또 시를 쓰는 대상에 대해서는 “저는 세상과 사람과 자연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이 하나이다. 특별히 저는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시가 나온다. 시는 끊임없이 사랑해야 하고, 예뻐해야 나온다”라고 말했다.
은혜제일교회 최원호 담임목사는 이날 “큰 것만 바라보지 말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이 바로 큰 것이고, 소중하고 감사한 것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Art.p 예술심리연구소 문혜민 대표가 사회를 맡은 이날 북콘서트의 특별초청 공연은 2018년 평창올림픽&패럴림픽에서 공연한 이병란 크로매틱 하모니카 연주자가 자작곡 ‘여행 가자’, ‘레겐보겐(Regenbogen)’과 찬양 ‘은혜’, 앙코르곡으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여 큰 감동을 선사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2시 ‘행복한 우리동네 북콘서트’(매·마·토·2)를 개최하는 은혜제일교회는 오는 5월 27일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기적의 피아노’ 주인공인 유예은 씨(한세대 음악학부), 6월 24일에는 청소년 분야 베스트셀러 ‘괜찮아, 꿈이 있으면 길을 잃지 않아’의 백수연 저자(화성시 여성가족청소년재단 관장), 7월 29일에는 히트곡만 300여 곡이 넘은 김정택 SBS 명예예술단장, 8월 26일에는 ‘유튜브 떡상의 비밀’의 저자 전상훈 박사, 9월 23일에는 요들여신 이은경 씨를 초청한다. 매·마·토·2는 누구나 무료로 참석 가능하며, 전화(02-433-0697)로 신청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