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순교한 성도 5명 가운데 시신이 발견된 4명은 마리우폴 중앙침례교회 안뜰 묘지에 안장됐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지난 3월 9일 러시아군의 수류탄 공격에 목숨을 잃은 성도 5명의 추모예배가 4월 초 진행됐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한국 VOM)는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성도들은 숨지기 전까지 마리우폴 중앙침례교회 지하실에 피신해 있던 200여 명을 몇 주 동안 돌봤다”며 “우리는 이 5명의 성도를 순교자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3월 9일, 5명의 성도로 구성된 사역팀은 의약품과 연료를 구하기 위해 승합차를 타고 교회 밖으로 나갔고, 이것은 그들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후에 발견된 폭격을 맞은 차량 안 뒷좌석에는 불에 탄 3명의 시신이 있었고, 운전자의 시신은 승합차에서 5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나머지 1명의 시신은 현장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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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폴 지역의 순교자 다섯 명과 그 가족들 ⓒ한국 순교자의 소리

현숙 폴리 한국 VOM 대표는 “희생된 성도들은 200여 명의 시민에게 음식과 약품, 생필품을 조달해주는 사역을 하고 있었다”며 “임시 대피소에 피신한 사람들은 중앙침례교회 교인들과 그들의 친척, 이웃이었고, 그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사람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5명 중 2명은 중앙침례교회 출신이었다. 니콜라이 세메켄(Nicolai Semeken) 집사로, 아내와 세 자녀가 있었고, 스타니슬라브 버딘(Staneslav Burdun)은 6개월 전에 결혼한 신혼이었다.

다른 3명은 마리우폴 베다니교회 출신이었다. 세르게이 사벨레프(Sergei Savelev)는 아내와 두 자녀가 있었고, 그의 친동생 로만 사벨레프(Roman Savelev)도 아내와 두 자녀가 있었다. 5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스타니슬라프 엘레제프(Staneslav Eleseev)는 자녀는 없고, 아내만 있었다.

5명의 성도는 교회 지하실에 대피한 사람들에게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밖에 나올 때마다 근처 담벼락에 도와달라는 글이 적힌 것을 흔히 보았다고 한다. ‘도와주세요, 아기가 먹을 것이 없어요’라고 적힌 글을 본 이들은 폭탄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어렵게 분유를 구해 어머니에게 갖다주는 일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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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기독교인 3명이 러시아군의 수류탄 공격으로 목숨을 잃기 며칠 전, 자신의 집 지하실에 갇혀 있던 한 남성을 구출하고 있다(실제 사진). ⓒ한국 순교자의 소리

한국 VOM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4일 밤 폭격으로 불이 난 집 지하실에 갇힌 사람의 목숨도 구해주었다. 당시 5명의 성도 가운데 몇 명이 자동차를 점검하기 위해 교회 주차장으로 나갔을 때, 이웃들은 교회 인근에 거주하는 한 사람이 자기 집 지하실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에 성도들이 즉각 그 집에 달려갔을 때, 집은 러시아 다연장 로켓포의 공격을 받아 검은 연기가 치솟고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다. 소방대원도 없고 물도 부족했기 때문에 성도들은 현장에서 화재 진압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 불을 끄는 한편, 그 남자를 구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도들은 톱으로 마룻바닥을 잘라내 지하실로 내려갔고, 그곳에 집주인 보바(Vova)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바는 허리까지 잔해 속에 파묻혀 있었고, 한쪽 팔은 부러지고 한쪽 다리는 움직이지 못했다.

스타니슬라프 버딘과 그의 아내 빅토리아는 당시 구조대의 일원으로 그 집을 찾아갔다. 버딘은 “살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구해주실 것을 믿으세요?”라고 보바에게 소리쳤고, 그 집의 문을 들것으로 사용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보바를 교회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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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에 휩싸인 집에서 한 남성을 구출해 그리스도께 인도한 스타니슬라프 버딘과 다른 기독교인의 모습을 버딘의 아내 빅토리아가 그린 그림. 버딘은 실종 상태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
보바는 오후 5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잔해 속에 묻혀 있으면서 몸이 얼었고, 보바 근처로 불길이 옮겨붙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그에게도 물을 뿌리면서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성도들은 보바를 구조한 뒤 차를 끓여주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다음 날 아침 병원으로 데려갔다. 나중에 성도들이 문병을 갔을 때 보바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버딘의 아내 빅토리아는 “그날 밤 지하실에서 불길에 맞서 싸우는 동안 모든 것이 헛수고로 끝날 것 같았던 순간이 세 번 있었다”라며 “하지만 우리는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을 끄고 보바의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 집이 불에 타는 동안 러시아군의 포격은 없었고, 우리는 보바를 구할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고 회상했다.

이어 빅토리아는 자신과 5명의 성도가 몇 주 전 이미 주님을 위해 생명을 바치기로 결단했기 때문에 보바를 구조하던 순간이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빅토리아는 지난 2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여기 머물 것입니다. …저와 남편은 두렵지 않아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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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 ⓒ한국 순교자의 소리
하지만 불과 며칠 뒤인 3월 9일, 5명의 성도는 러시아의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적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우크라이나 남부 요충지인 마리우폴에서는 러시아군의 총공세가 장기화되면서 1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숙 폴리 대표는 “5명의 순교자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며 “순교자란 목숨을 바쳐 주님을 섬기겠다고 의식적으로 결단하는 기독교인으로,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순간에도 주님을 증언함으로써 신실한 증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순교가 박해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성경적인 순교는 신실한 증인이 되었을 때 그 결과로 핍박 당하는 것으로, 때로는 핍박이 다른 사람에게서 오거나 영적으로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다 목숨을 잃은 우크라이나 기독교인 가족에게 ‘순교자 및 수감자 가정 지원 사역’에 모금된 헌금을 보내주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 기독교인 긴급 구호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한국 VOM 웹사이트 www.vomkorea.com/donation 납부 유형 ‘순교자 및 수감자 가정 지원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