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기도문과 함께 사용되고 있는 송영은 성경에서 그 유형을 찾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주기도문과 함께 사용되고 있는 송영은 성경에 전반적으로 세 가지 형태로 정리된다. 첫째, 거룩하고 기쁜 찬양으로, 둘째 모든 기원을 실행하기를 탄원하고 논증하는 것으로, 셋째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는 확신과 확인과 천명으로서 간구된다. 송영을 통하여 우리는 기도의 참된 진수를 마무리할 수 있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 기록된 구약 시편의 기도에도 끊임없는 기도와 찬양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서 우리가 송영과 함께 주기도문을 드릴 때 그 간구는 진정한 찬양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서 우리가 송영과 함께 주기도문을 드릴 때 그 간구는 진정한 찬양이 되는 것이다. ⓒunsplash
(1) 구약 성경 가운데 주기도문과 함께 사용되고 있는 송영의 유형은 시편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① 역대상 29장 11절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험이 다 주의 것으로소이다”
② 시편 146장 10절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아멘〉”
③ 시편 72장 19절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2) 신약 성경 가운데도 주기도문과 함께 사용되고 있는 송영의 유형은 바울 사도의 권위 있는 교훈과 다른 성경 기자들에 의하여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 속에 담겨 있다.

① 디모데후서 4장 18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② 요한계시록 5장 12절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았던 탁월한 성도들의 기도는 모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시 22:3)께 드리는 찬미와 그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주기도문의 송영은 성경에 나타난 그 유형들과 비교할 때, 기도하는 자의 모범적인 간구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모든 간구와 찬양의 알파와 오메가 되신 분이심을 알게 한다. 즉, 이 송영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것으로 시작했고,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우주의 왕 통치자이심을 찬양함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모범적인 기도인 주기도문은 간구하는 자들이 간구할 때, 감사와 찬양이 있는 기도만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보좌를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신실하고 솔직한 성도들의 입술의 고백으로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때처럼, 송영은 그 빛의 퇴색함이 없이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실 날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스러운 예배 가운데 함께할 것이다.

필자는 담임을 맡았던 교회의 예배에서 주기도문과 함께 암송도 하지만, 기도의 진실함과 정성스러움을 드리기 위해 주기도문 찬양을 설교 순서 바로 전에 회중과 함께 일어서서 불렀다. 그때 열리는 기도의 문이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충만하시기를 기대하면서, 각 간구 가운데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는 시간이 되었다.

3. 주기도문의 송영에서 첫머리에 「대개」라는 접속사가 첨가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개」의 헬라어는 ‘호티’(ὃτι)인데, 영어 성경 번역에는 네 가지 유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1) 고대 권위 있는 사본들이 그 기록을 생략하고 있는 것을 따른다.
2) 송영을 주기도문 본문 마지막에 기록하되 괄호 안에 두고 있다.(이것은 본래 권위 있는 사본에서 생략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3) 송영을 주기도문 본문에 기록하지 않고 별도로 난하주에 기록한다.
4) 송영을 괄호 없이 주기도문 본문에 이어서 기록하고 있다.

주기도문의 「대개」는 우리말 성경 번역에 영향을 끼친 중국어 성경에서 「아마」, 「대개」, 「대략」, 「혹은」으로 간주할 수 있다. 또는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왜냐하면... 때문이다’의 뜻으로 영어의 ‘because’에 해당된다. 그런데 대부분 영어 성경은 ‘because’를 쓰기보다는 「For」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For」는 헬라어로 ‘가르’(γαρ)가 있기 때문에, 「For」로 된 영어 성경과 같이 우리 글 성경에서 번역한다면 ‘이는…’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단어 번역의 중요성보다, 주기도문 전체가 송영과 연관성을 갖게 하는 점에서 「대개」라는 말이 「때문에」, 「왜냐하면」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점도 피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주기도문 전체의 사상이 되는 ‘나라가 아버지에게 있다’는 사실을 제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로 시작하여 번역될 수 있는 본문의 송영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때문〉입니다’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송영의 「대개」는 주기도문의 모든 기원을 간구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께 드릴 때, 간구의 이유로 서두에 첨가시킬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맨 마지막에 위치하면서 모든 간구와 상호 연관성을 강조하는 것을 명확하게 해준다. 여기서 종합적으로 세 가지 번역이 나올 수 있다. 「대개」, 「이는」, 「때문에」 등이다. 정확한 번역과 사용도 권하지만, 주기도문의 송영 부분의 특징은 주기도문을 가르치셨고 받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감사하는데 근본적인 정신과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본다.

4. 주기도문의 본문과 함께 송영의 의미가 가지는 상호 연관성은 무엇인가?

주기도문의 송영은 주기도문 전체 구성에서 그 균형을 유지해준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첫 번째 조목의 세 가지 간구는 주기도문의 하나님께 대한 간구(Thou-Petitions)와 상관관계가 있다”라고 말한다. 즉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머리말에 이어서 ‘이름이 거룩하게 하옵시며’는 송영에서 〈영광〉, ‘나라에 임하옵시며’는 송영에서 〈나라〉, ‘뜻이 이루어지이다’는 송영에서 〈권세〉라고 하였다. 세 간구가 우리 자신의 특별한 임무에 대하여 표현하듯이, 주기도문 본문과 송영은 서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주기도문 전반부의 세 간구를 대표할 수 있는 이름, 나라, 뜻은 송영에서의 나라, 권세, 영광과 서로 자연스러운 조화를 유지시켜 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기도문 강해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간구(Thou-Petitions)와 우리에 대한 청원(We-Petitions)에 대해서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주기도문 본문과 송영과의 상호 관련을 통해 담긴 의미만을 다루고자 한다.

첫째, ‘나라(Kingdom)가 당신의 것이옵니다’.

주기도문의 간구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송영에서 ‘나라’가 아버지께 영원히 속해 있다는 찬양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간구할 때 찬양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우리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의 영역이 있는 나라이다. 하나님은 그 나라의 주권자이시다. 우리는 그의 백성으로 간구하며 찬양해야 한다. 찬양하며 간구할 때 응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첫째 과거에 있는 것(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눅 13:28), 둘째 현재에 있는 것(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1), 셋째 장래에 있는 것(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계 21:1) 등으로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왕이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온전히 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 나라의 성취는 아직도 미래에 속해 있으므로 송영할 때마다 ‘나라가 당신의 것이옵니다’라는 간구를 찬양으로 드릴 수 있게 된다. 〈나라〉라는 어휘의 헬라어 사전은 〈주권〉, 〈다스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지상에서도 그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내 마음을 다스릴 때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 나라인 ‘천국’의 만족을 얻고, 그 기쁨을 소유하며, 그를 찬양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서 우리가 이 송영과 함께 주기도문을 드릴 때, 그 간구는 진정한 찬양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우리의 삶 속에, 가정 속에, 사회 속에, 그리고 교회 속에 계속된다면 우리가 드리는 송영은 감사와 찬양이 담긴 모범적인 기도가 되리라 본다.

둘째, ‘권세(Authority)가 당신에게 있사옵나이다’.

주기도문의 셋째 청원에서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라는 간구는 송영에서 ‘권세가 영원히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라는 찬양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영광 중에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때문에 자기가 원하시는 것은 하늘에서 이루시고 땅에서도 이루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주적인 권위와 권리를 가지시고, 이 권리와 권위로써 자신의 기뻐하신 뜻을 따라 만물을 다스리시고 찬양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와 은혜에 있어서 최고 주권자이시다. ‘권세’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자신의 절대적 주권을 행사하시고 하늘과 땅에서 자신의 뜻을 수행하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권세는 은혜와 사랑을 목적으로, 그의 공의로 그의 뜻을 성취하시는 위대하고 참된 권세이다. 그의 권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애굽 왕 바로의 거대한 세력을 꺾으시며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 40년 동안 반석에서 생수를 내시며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며 구원하셨던 권세이다.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세상의 모든 권세를 자유롭게 다스릴 수 있는 분이라고 설명한다(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나니…, 요 10:18). 그 권세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도 내어 쫓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자신이 부활의 권세에 참여하시고 승천하시며, 다시 만왕의 왕, 만주의 주와 심판의 왕으로 그 권세를 가지고 오실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권세와 함께 사탄으로부터 오는 권세를 경계해야 한다. 마태복음 7장 22절에 보면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라고 말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하셨다. 오늘날 이러한 사탄으로부터 오는 권세를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한다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Miracle), 능력(Power)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주변에 매스컴을 이용해서 ‘성령의 능력’이라며 청중들과 시청자들을 매도하는 광경을 목격할 때마다 사탄의 권세가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는 때인지 알게 된다.

사탄을 숭배하는 사탄 경배자들은 사탄의 힘을 이용한다. 그들은 개신교(Protestant Church) 목사들을 물질적(돈), 육체적(이성)으로 타락시키며 신자들을 교회에서 멀어지도록 하기 위해 사탄에게 금식 기도까지 한다고 한다(물론 이런 금식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는다). 세상의 악과 사탄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보다는 결코 강하지 못함을 아는 신자들은 참으로 진실된 권세를 붙들고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고백했고(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롬 13:1), 그러므로 그 권세를 잘못 사용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2)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신해야 할 것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고, 그 주어진 권세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라’(대상 29:11)는 말씀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수님에게만 하나님의 영원한 참 권세가 있다. 죄를 사하는 〈권세〉가 그에게 있다(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마 9:6).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으시고 우리에게도 그 권세를 주신다(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막 3:15). 그의 말씀과 가르침에는 하나님의 〈권세〉가 있으시다(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8/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눅 4:32).

그는 죽음을 다스리시고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권세〉를 가지셨다(요 11장, 고전 15장). 병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가지셨고 우리에게도 주신다(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눅 9: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만민을 다스릴 권세(Authority)의 근본이시다. 그 모든 권세는 성부 하나님과 원초적으로 동일하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모든 구원에 반대되는 악한 사탄의 힘을 정복하신다. 권세(Authority)라는 말은 헬라어에서 엑소시아(εχουσια)라는 말이고, 영어에서는 엑소시스트(Exosist), 즉 마귀 추방자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는 모든 사탄의 힘을 추방시키는 권세가 있다.

이러한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이유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Authority)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는 말씀처럼 모든 족속으로 이 복음에 복종케 함에 있고, 우리가 이 권세를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지상 대위임령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할렐루야! 여기에 우리가 이 송영에서 ‘권세가 영원히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라고 찬양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간구를 마치면서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라는 기도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이다. 필자는 주기도문의 찬양 가운데 〈영광이 영원히〉라는 대목을 부를 때마다 그 감동과 감화를 성령님의 은혜로 체험하며, 기쁨과 뜨거움으로 이 송영을 드린다. <계속>

김석원 목사
국제기도공동체(GPS, Global Prayer Society)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
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