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의 간구에 대한 우리의 실행, 책임, 정신에 대한 태도
1)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의해 우리의 성품이 형성되고 행위가 조절되고 바로 잡힐 수 있어야 한다.
주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을 때 사단(악한 자)의 어떤 시험(유혹)이 있을지라도 즉각적으로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주장하지 않을 때는 내 육신의 정욕과 죄악이 나를 유혹하고 지배해 버린다.
말씀은 운동력이 있다. 말씀은 악과 대항하여 싸워 이길 힘이 있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하나니…,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이 본문에 대한 우리의 실행, 책임, 정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교훈하신다(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 하시리라…, 시 66:18).
악한 자(사단)의 시험(유혹)에 승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말씀에 전폭적으로 모든 삶을 의지해야 한다.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 119:97), ‘그 말씀을 깊이 마음에 두며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라는 시편 성도의 고백처럼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두는 일이란 말씀을 상고하고 암기하는 일이다.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예수님 자신도 악(악한 자, 사단)으로부터 그 시험(유혹)을 친히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모범을 보여주셨다. 사단(악)이 유혹(시험)할 때 ‘성경을 보고 나서 말씀하시기를’이 아니라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시면서 자기 마음속에 기억되어 있는 말씀으로 사단을 대적하시었다. 성경에도 주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라’(잠 3:3)고 했다.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꽉 차 있어서 언제든지(whenever) 어떤 장소에서든지(wherever) 사용해야 한다. 이 말씀이 마음 판에 새겨지도록 항상 읽어야 한다. 그리고 지켜야 한다(…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계 1:3). 진정한 성도의 복은 물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정신적인 악으로부터 승리하고, 시험(유혹)으로 구원받는 이중적인 복을 누리는 것이다.
2) 우리의 연약성(Total unability)을 내 모습 이대로 고백하고 시인할 수 있어야 한다.
(1) 때로 우리는 악이 유혹(시험)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시험(Test)하시는 것인지 사단(악)이 시험하는 것인지 그 정체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연약함이 있다. 하와가 맨 처음에 그랬고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단의 시험은 간교하기 때문에 그것이 시험인지 아닌지 미처 모른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약점이고, 무능함이고, 문제점이다.
(2) 때로 우리는 사단이 주는 시험(Temptation)인 줄 알면서도 끌려 들어가는, 그래서 시험인 줄 알면서도 돌아서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이다. 야고보 사도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라고 기록했다. 그것이 욕심인 줄 알면서도 끌려간다. 욕망이 고개를 들 때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간다. 명예욕, 이성욕, 물욕인 줄 알면서도 욕망의 뿌리를 끊어버리지 못하고 그 뿌리를 내리고 악의 열매를 맺기까지 나아간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시험(유혹)이 될 만한 것과는 가까이하지 말고 그 시험 거리를 청해서는 안 된다. 가령 뜨거운 불 속에 들어가면서 ‘이 뜨거운 불이 나를 뜨겁게 하지 말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와 똑같은 격이 되고 만다. 우리는 항상 연약하다는 연약성을 기억해야 한다.
3) 성령(Holy Spirit)의 소욕(所愁)을 따라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갈 5:17)라고 했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갈 5:16)을 강조하고 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삶은 악한 자(사단)의 시험(유혹)에 끌려 사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삶은 악한 자(사단)의 시험(유혹)에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삼손, 사울은 자신을 드렸을 때, 성령이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손에 쓰임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의 충만이 그들을 떠날 때 악한 자들의 손에 넘어가고, 악령에 이끌리어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함께 그를 도우셨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다. 제자들에게 ‘성령의 권능을 받고’(행 1:8)라고 말씀하셨고,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능력을 얻은 사도들과 제자들은 악한 자(사단, 귀신)를 내어쫓고, 악한 자에게 괴롭힘과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자유케 해 주었다.
성령은 거룩한 영, 진리의 영이고,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는 영이다. 그러나 악한 자, 성경의 ‘악한 영’(엡 6:12)이라는 표현은 더러운 영이고, 거짓 영이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악’하게 살도록 유혹하고, 유혹에 빠뜨린다. 스스로 더럽혀서는 안 되는 이유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한 후 성령님이 내주(內住)하시기 때문이다.(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6). 그래서 우리는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성령으로 살면서 성령으로 행할 때(갈 5:24∼25),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사단과의 싸움을 싸운다고 하면, 우리의 약한 육신을 모두 벗어버리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비로소 승리를 얻을 수 있다!”라고 했다.
4) 악(사단)으로부터의 시험(유혹)에 승리하여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상급을 바라보아야 한다.
야고보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라고 우리 개인 각자에게 하나님의 상급으로 약속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일곱 교회를 향해서 약속하신 상급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1)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주신 말씀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고 하였다. 에덴동산(창 2:9, 3:22)에서 잃어버린 생명을 하나님의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에서 회복시키시어 그 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를 먹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이는 곧 영생을 의미하며 죄악에서 회개하고, 악에서 이기고 악에서 구원받은 자가 얻을 영광이고 은혜의 상급인 것이다.
(2)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주신 말씀은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1)고 하셨다. 첫째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고, 둘째는 영의 죽음이다. 즉 죽은 후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을 영원히 떠나는 심판을 받는 것이다(계 20:6, 21:8). 영생으로 부활하는 것은 첫째 부활이다. 주기도문 본문과 관련해서 볼 때 악에서 이기는 자는 영원히 죽는 심판의 자리에서 구해 주신다.
(3) 버가모 교회를 향해서 주신 말씀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은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고 하셨다. 이것은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요 6:35)을 통하여 신령한 만나를 받은 것을 뜻한다. 흰 돌은 옛날 그리스의 경기장에서 우승자의 이름을 새겨 주었던 것을 참작해 볼 때, 하늘나라에서 세상의 악한 유혹에서 승리한 신앙의 승리자에게 주는 상급으로 볼 수 있다.
(4)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서 주신 말씀은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계 2:26~27)고 하셨다.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은 정복과 승리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와 같이 만국을 정복하시는 동시에 질그릇을 깨뜨리는 육정(세상의 악한 것)에 사로잡힌 세상적인 마음, 악한 마음도 깨뜨리신다. 우리는 세상의 악의 세력을 깨뜨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오늘도 유혹에서 건짐받도록 이 간구를 드리므로 승리할 수 있다. <계속>
김석원 목사
국제기도공동체(GPS, Global Prayer Society)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
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