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1회 졸업, 수준 높은 교회사 책 펴내 연구 나침반 제공
서양 교회사 책 번역 및 소개하고 동양 교회사도 연구해 소개
신학 학부생들엔 무서운 ‘호랑이 교수’, 신앙과 삶 통전적 교육

만 70세 아프리카 케냐 교육 선교사로 떠나, 예배당 직접 지어
보수와 진보 신학자 아우르는 한국 최초 연합신학연구소 설립
경기 화성 ‘광명의 집’ 은퇴목회자 숙소에서 소박한 말년 보내

혜암신학연구소
▲혜암신학연구소 첫 모임에서 이장식 박사(가운데)가 (왼쪽부터)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 총장), 강근환 박사(전 서울신대 총장),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모습. ⓒ혜암신학연구소
고(故) 이장식 박사(한신대 명예교수)가 초대 소장을 지낸 혜암신학연구소는 16일 추모 메시지를 공개했다. 이장식 박사는 지난 15일 101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혜암신학연구소의 ‘혜암’은 고인의 호 ‘혜암’(惠岩)를 따 2014년 설립됐다.

연구소는 “이장식 박사님께서는 신학자이자 목회자이자 선교사로서, 열정적인 삶을 사셨다”라며 “한신대학교 은퇴 후 만 70의 나이에 사도행전 22장 21절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고 아프리카 케냐 선교사로 떠나셨다. 케냐에서 그는 PCEA(Presbyterian Church of East Africa) 산하 장로교신학교에서 14년간 교편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개척해 성전을 기초부터 건축해 봉헌했고, 한국에서 아동학 관련 교수였던 아내 박동근 사모와 같이 아이들을 위한 학교도 지어 열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장식 박사님은) 케냐에서 14년의 사역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80대 중반부터는 한국에서 또 한 번의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여셨다”며 “특히 2014년 우리 혜암신학연구소를 한국교회의 신학자들과 함께 창립하셨다”고 했다.

연구소는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하였던 평소 삶의 소신대로 연구소 창립 때도 보수와 진보 신학자들을 한데 아우르셨고, 본 연구소는 소위 가장 보수적인 교단의 신학자부터 가장 진보적인 교단의 신학자까지 협력해 만든 한국 최초의 연합신학연구소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라며 “본 연구소의 연구지 이름을 정할 때도 교회에 봉사하는 신학 연구지를 만들자는 의도가 반영되어 「신학과 교회」라 지었다”고 했다.

이어 “이장식 박사님의 저서 및 번역서는 20여 권에 달한다. 그는 학문과 목회로 한국과 아시아에 많은 제자들을 기르셨다”며 “태어나고 자랐던 시대는 기독교 문화가 전무하던 때였고 신학은 그가 한국신학대학교 제1회 졸업생이었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매우 빈약한 상황이었지만, 이 척박한 땅 위에서 그는 교회사를 연구해 한국어로 수준 높은 교회사 책들을 집필했고, 이는 후학들에게 연구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아울러 “이장식 박사님의 교회 역사에 대한 이해는 사상사와 더불어 역사를 관통하는 시각을 가졌고, 또 한편으로 그의 역사 서술은 서양의 앞선 교회사 책들을 일방적으로 번역 및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동양 교회의 역사도 희귀한 자료들을 찾아가며 연구해 뛰어난 문장력으로 집필하셨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특히 “이장식 박사님은 교회를 사랑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이자, 선교사셨다. 이는 그의 삶과 신앙과 신학에서 드러난다”며 “신학교 교수 시절 학부생들에게 가장 무서운 ‘호랑이 교수’로 통하셨는데, 이는 당시 신학도들을 미래 한국교회를 이끌 자들로 보았기에 단순히 학문 지도에서 그치지 않고 신앙과 삶을 통전적으로 가르치시고자 하셨던 열정의 일면”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아프리카 케냐 교육 선교사 시절에도 단순히 현지 교육에서 교편 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배당을 직접 지었다. 교회 지을 부지들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이 교회는 처음 50∼60명에서 후에 400∼500명 정도로 교인이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며 “성공적인 교회 건축 소식을 들은 케냐 곳곳에서 성전 건축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는데, 그 때마다 마다하지 않고 여러 곳에 교회를 세우는 일을 도우셨다”고 했다.

연구소는 “케냐 선교 이후 2005년도부터 한국에서는 화성시 광명의 집이라는 은퇴목회자 숙소에서 말년을 보내셨다. 12평 남짓되는 공간에서 부엌 한 켠에 책상을 두고, 그 책상에서 책을 쓰시고 한국교회를 위한 여러 글들을 써내셨다”며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학자로, 목회자와 선교사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사셨다. 이 땅에서의 일을 마치셨으니, 하늘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