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와 고무적인 일들

우리의 다양한 성서공회 사역이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도움을 받았고, 방해를 받았는가에 대해 설명할 지면이 마땅치 않다. 예를 들자면, 러시아에서는 교회와 정부가 성서공회에 매우 우호적이었다. 오스트리아(Austria) 몇몇 주에서는 아직도 성경을 거리에서 판매하는 것이 불법이다. 세르비아(Servia), 불가리아(Bulgaria), 루마니아(Rumania)의 성직자들과 교구 감독들은 우리 매서인들을 격려했다.

모든 그리스 왕국에서는 현대어 그리스어 성경은 금지되고 있다. 로마교회(카톨릭)도 아직껏 자유롭게 개방된 성경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회주의 국가에 의해 복음이 비통하게 거부되고 있다. 부다페스트(Budapest) 사회민주당은 우리 매서인들을 다음과 같이 맹렬히 비난했다. “당신들은 왜 이곳에 와서 성직자들을 도우며 그 마약을 팔려고 하는가?” 우리의 대답은 “성경이 독약이라면, 그것은 단지 죄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을 예방하는 항독제일 뿐이다!”였다.

4-2. BFBS 대한제국 활동 상세 보고서

인구 (1912년) 13,461,000명.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상류층에서는 유교 의식이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제국에는 승려들도 많이 있다. 널리 인기를 얻고 있는 종교는 미신을 숭배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빠르게 퍼지고 있다.

1910년 대한국은 일본에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합병되었다.

지난해(1912년) 약 157명의 매서인들은 1909년 53,996권, 1910년 95,252권보다 많은 1,141,445권의 성경책을 판매했다.

전 세계 성경배포량을 보면 1909년 356,617권, 1910년 666,187권이었는데, 지난해 183,845권을 반포했다. 공회에서 받은 후원금과 판매대금은 74파운드 6실링 10d였다.

대한국지부: 대한국, 서울, 종로, 대영성서공회사
총         무: 민휴(Mr. Huh Miller)
부   총   무: 롬프레이(Mr. I. L. Lomprey)와 토마스 홉즈(Mr. Thomas Hobbs)

1912년도 대한국 성경 반포 현황
▲1912년도 대한국 성경 반포 현황
개관

지난 한 해 성서공회의 활동들은 예상보다 많이 고발되었다. 그런 환경들은 복음서를 주문받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예수님 앞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동정적이지 않았다.

선교사들의 진전

소수의 대한국 개종자들이 입교를 하게 되었는데, 이는 몇 년 전보다 적은 숫자이다. 통계를 보면 작년에는 그 이전해 10,000명보다 훨씬 줄어든 간신히 3,000명을 넘는 사람이 입교했다. 마찬가지로 교리문답자와 예비입교인 수가 4,000명이나 줄었다. 이것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놀랄만한 점은 좋지 못한 환경에서도 줄어든 숫자가 그리 크지 않은 해라고 기억될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에 병탄된 조선의 변화

경제 환경이 변화하는 여러 증거를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성경 반포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성경공부를 위해 모인다거나 특히 낮에 강연회를 여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전에는 특별히 겨울 농한기에 낮 시간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어쨌든 남자들은 낮 시간에 일을 하고 있다. 농부들도 밖에 나가 일할 수 없는 날씨가 되면 그들은 더 많은 수입을 위해 가내공업에 매달린다.

옛날 거래 방식은 급격하게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욕구들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데, 지난해의 사치품이 올해는 필수품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농토를 갖고 있지 않는 양반 계층이나 정부 관리계층의 사람들은 전에는 개인이나 나라의 부유함을 위해 상업이나 이와 비슷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요즘에는 회사를 설립하고, 장사에 뛰어들고, 또는 공장을 설립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도회지의 삶을 정리하고 지금은 조선에서 제일 커다란 부를 생산하기 위해 농촌에 살면서 농업 기술을 개발시키고 있다.

비록 다른 해의 평균과 비교하면 지난해 곡식 수확량은 조금 증가했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농사가 실패했다. 지금까지의 조선인들의 삶은 그저 입에 풀칠할 정도였고 저축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비록 운반 수단들이 많이 발전했지만, 춘궁기를 지나 먹을 식량도 장만하기 어려운 가운데 새로운 운반기계들을 구입하기는 굉장히 힘들고 모든 농가에 불가능했다. 특별한 경우에는 총독부에서 지원을 하기도 했다.

생활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조선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했다. 주식인 쌀값의 경우 5~6년 전보다 3배나 올랐고, 거기에 비해 임금은 오르지 않았기에 날품 파는 노동자들은 더욱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렇게 오른 식비를 줄이려고 조선 사람들의 미국산 밀가루 소비가 급증했다. 식량이 부족한 지방 모든 곳에서는 곡식값이 폭등했고, 그런 지방 사람들은 필수품이 아닌 성경책을 구입하려는 욕구는 많이 떨어졌다.

옛 관습은 급격히 사라졌고, 누가 보아도 여인들의 활동에는 자유스러운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에서 남정네를 본다거나 오토바이에 그의 부인을 태우고 다니는 것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교회 회중을 남자 석과 여자 석으로 나눴던 휘장을 교인들의 요청으로 없애기도 했다. 지금도 남·여 좌석을 구분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조선의 남부, 특별히 경상도 지방에서는 중국 접경지대인 간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총독부 당국은 이를 막고 있다. 들리는 소식통에 의하면, 간도로 간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간도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의 수는 현재 중국인의 3배에 달한다고 한다. 남부지역 도(경남, 전남)에서는 많은 농토가 조선 사람의 손에서 일본인들한테 넘어갔다. 총독부는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조선 사람들은 그들의 농토를 다시 소유할 수 있다고 공표를 했다는 것은 관심을 가질 만하다.

소(小) 지주들은 변함없이 사채꾼들에게 돈을 빌리고, 이를 갚기 위해 어떤 경우에는 농토를 좋은 가격에 팔게 되면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다른 농토를 사서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작 겸 소작농이나 소작농으로 변하게 된다.

초기 매서인 모습
▲초기 매서인 모습 ⓒGCAH Digital Gallary
교육

새로운 조선은 현대화된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총독부, 선교부, 사립학교는 모두 이러한 요구에 불충분하다. 총독은 전문학교, 대학에 대해 조선에 갈수록 혜택을 주고 있다. 그는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수년 내에 산업분야와 교육계가 서로 손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시작된 여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모든 계층에서 잘 진행되고 있다.

기독교 교육에 대한 결정적 조치가 하나 시행되었는데, 교육위원회에서는 영향력 있는 한 위원을 기독교 학교의 통합과 협력 사업에 그의 근무시간의 1/2을 쓰도록 임명했다. 이 위원은 총독부와 교육위원회와의 공식 조정자 역할을 할 것이다.

N.B.S.S.

NBSS에서는 100파운드를 보내와 4명의 매서인과 2명의 매서부인을 지원했다. 이들은 NBSS에 고용되어 5,069권의 성경을 판매했고, 이 수량은 NBSS 실적에 잡혔다.

성서주일

1912년 마지막 주일은 ‘성서주일’로 지켜졌는데, 보고에 의하면 이는 지금까지 지켜진 성서주일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 성서주일 연보는 397엔(=40파운드)이 증가한 연보가 드려졌다.

한 여신도는 현금이 없어 그가 지니고 있던 은가락지를 ‘성서주일’ 연보로 드렸다. 이는 아마 그녀가 수년간 저축한 금액일 것이다.

클락(Rev. Dr. C. A. Clark) 목사의 보고이다.

“여기에 ‘성서주일’에 드려진 연보를 보낸다. 장말(Chang Mal)에서 7센이 드려졌는데 이 마을에는 25명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은 선전했다. 그들은 극심하게 가난한 사람들이고, 지금까지 그들은 1개월에 1엔(이 금액은 이 지역 노임 10일분임)을 순회 목사께 드렸고, 이 7센은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쓰이기 바랐다. 7센(=1 3/4d)은 본질적으로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니다. 보통 하루 노임의 7/10에 해당하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이 연보가 본질적으로도, 다른 것과 비교해서도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연보는 그들이 풍성해서가 아니요 비참한 소유 가운데서, 하루 부실한 음식을 두 끼밖에 먹을 수 없고, 어떨 때는 그마저 한 끼를 건너뛰는 가운데서 드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연보는 여러분들이 조선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성서공회에 대해 어떤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2년간 가장 많은 연보를 보내온 마산포에서 사역하는 아담슨(Rev. A. Adamson) 목사의 보고이다.

“매서인들과 함께 해온 이 일들은 비록 매서인들의 판매는 실망시키는 수준이었지만, 우리 선교사업에 높은 관심을 갖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 구역에 나와 있는 성서공회 지사의 노력이 우리 구역 신자들에게 감사하게 느껴져 비록 그들이 빈곤에 허덕이지만 지난 성서주일에 비교적 많은 37.49엔(=3파운드 15센)의 연보를 내게 된 것이다.”

번역과 출판

한국어·한자어 혼용 구약성서 편역은 1912년 7월에 시작되어 꾸준히 작업 중이다. 신약 주석 작업은 지난여름 끝마쳤고, 신약 한글 주석 성경이 올해 안에 출간될 예정이다.

성서공회는 구약전서 5,000권을 발행했고, 시편 2,000권, 열왕기 상·하 3,000권, 주석 신약성경 6,000권, 마태복음 10,000권, 마가복음 10,000권, 누가복음 10,029권, 요한복음 5,000권, 사도행전 4호 활자본 5,000권, 마가복음 5호 활자본 40,000권, 신약 6호 활자본 5,000권, 혼용 마가복음 25,000권, 합계 131,029권의 한글성경을 출간했다. 이는 1911년보다 25,029권이 증가된 수량이다. 이 한글본 성경은 일본에 있는 성서공회에서 인쇄되었다.

출고

서울성서공회에서 지난해 7,871권의 합본 성경과 구약성경이 출고되었고, 20,137권의 신약전서, 그리고 185,653권의 쪽복음서, 합계 213,661권이 출고되었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29,179권이 증가된 숫자이다.

반포

올해 반포량은 183,845권이었는데 이는 지난해에 비해 79,451권이 감소한 것이다. 1911년에는 무료 배포용으로 선교사들이 복음서를 많이 구매했다. 이러한 주문은 1912년에는 계속되지 않았고, 보급소 판매량의 감소로 이어졌다. 매서인과 부인매서인들의 판매는 27,719권 증가했다.

매서활동

대한 사람들에게 매서활동을 하는 매서인들의 고발이 확대되고 있다. 작년 평균 157명의 매서인이 고용되었고, 141,445권의 성경이 반포되었다.

이는 지난해보다 25,552권이 증가했는데, 전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이 성서공회의 세심한 감독과 관리의 결과이다. 우리가 지난해에도 언급했지만, 대한국의 매서인들은 대체적으로 선하고, 성실하고, 영성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불신자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게 하는 방법을 모른다.

이들은 내륙뿐만 아니라 섬들까지 방문한다. 매서인들은 간도지방, 만주지방, 시베리아로 이주한 주민들한테도 다가갔다. 시베리아에서는 매서인 2명이 유치장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나 대한국으로 돌아왔다. 매서인들은 여행하며, 여인숙에 숙박하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어려움, 곤고 등뿐만 아니라 그의 활동에 따른 고발도 견뎌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물들은, 영혼을 바르게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매서인들에 의해 자주 기쁨으로 수행되거나 실행되었다. <계속>

『매서인은 교회설립의 선구자였다』에서 발췌 정리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