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아웃리치를 다녀와서  

 오세안 권사
▲루마니아 티미슈주 티미쇼아라 구시가 중심지에 있는 티미쇼아라 광장에서 아웃리치팀과 함께. ⓒ 오세안 권사

10월 28일 우리 팀 12명은 루마니아 아웃리치를 위해 인천공항에 집결했다. 숭실통일아카데미를 통한 선교여행이지만, 서로를 잘 모르기도 하여 약간의 서먹함도 있었다. 그러나 헝가리 부다페스트 도착 이후, 루마니아에서 30년 넘게 사역하신 정홍기 선교사님 부부를 만나면서 14명이 된 우리 팀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베오그라드, 루마니아로 오가는 긴 시간의 여정 동안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시간 속에서 은혜와 기쁨을 누렸다.

아침 경건회를 시작으로 출발하는 버스 안에선 언제나 은혜가 충만했다. 서로를 소개하며 선교의 비전을 공유하며 중보기도 제목을 나눴다. 가는 곳의 목적지가 어디든, 얼마를 가든 버스 안에서는 늘 찬양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을 담은 찬양들은 기도와도 같았다.

'김일성 모방' 차우셰스쿠 축출 도화선 된 민주화 시위는 교회서부터
아직 신앙의 자유 누리지 못하는 '형제국가' 북한 주민에 긍휼함 있어

선교여행을 떠나오기 전 막연하게 느낀 '동유럽의 체제 전환 국가'에서의 선교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침례교회와 오시에크의 복음주의신학교 ETS에서의 세미나, 베오그라드 신학교 방문, 루마니아의 아라드 아우렐 블레이크 대학과 현지교회에서의 예배와 친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의 선교 방향성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 오시에크 복음주의신학교 데이비드 코바체빅(David Kovacevic) 교수는 "1972년 사회주의 배경하에서 신학교가 시작되었으며, 동유럽 나라들이 자유가 없을 때도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신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다. ...유럽연맹에 가입하고 나서 신학교는 변화를 겪고 있다"고 했다. "유럽을 기독교 대륙으로 생각하지만 유럽은 거대한 선교지로 변해가고 있다"고도 했다. 1987년 이래 선교사로 활약하며 헝가리에서 사역하다 온 쿨 교수(Dr. A. M. Kool) 역시 조요셉 목사님의 북한선교에 대한 설교를 들으며 함께 기도하고 동역하길 소망했다. 세월의 흔적 속에서도 크로아티아는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오랜 시간을 달려와서 루마니아의 역사적 현장인 티미쇼아라를 둘러보았다. 광장과 동방정교회, 1989년 12월의 민중봉기의 원동력이 되었던 퇴게시 라즐로 목사가 있었던 개혁교회 자리도 둘러보았다. 루마니아의 공산시절 독재자 니콜라스 차우셰스쿠는 이곳에서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차우셰스쿠는 김일성의 개인숭배와 우상화, 주석궁 등을 모방하며 자신의 통치체제를 구축해 나갔고, 형제국가로서 북한과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이어갔다. 루마니아인들의 북한에 대한 선교 관심도 형제국가로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열악한 환경에도 열정으로 복음 전하려는 루마니아 신학생들
남북한 위한 사랑의 기도가 샘솟고 있던 루마니아 시골교회

오세안 권사
▲오세안 권사
베오그라드 침례교 지방 신학교에서의 미팅은 늦은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직장을 다니는 학생들의 경우는 직장을 마치고 더 늦은 시간에 합류했다. 세미나 룸 현판에 붙어있는 디모데후서 2장 2절의 말씀처럼 청년들은 예수를 만난 간증을 하며 헌신되어 있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시골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찬양하는 밀란 페트로, 어린 시절부터 예수를 믿었지만 청년이 되어 거듭나서 생각해 보니 제대로 믿지 않고 시간을 낭비한 그 시절이 너무 안타깝고 아쉽다는 요나단과 같은 뜨거운 신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주님 만난 열정으로 신학을 공부하며 복음을 전하려는 너무나 순수한 청년들의 헌신에 감동된 시간이었다. 목사님들이 안 계신 교회도 많다고 하였다. 중보기도가 절실한 곳이었다.

루마니아에서의 모든 일정은 감동과 은혜의 현장이었다. 특별히 우리가 묵은 숙소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비세리카 크리스티나(Biserica Crestina) 침례교회에서의 예배와 교제는 우리 모두를 성령 충만한 훈훈함으로 녹여 주었다. 시골교회를 간다고 해서 열악한 환경의 교회를 생각하고 별다른 기대도 못 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132년 전 한 구두수선공이 세운 교회는 2017년에 새롭게 헌당하여서 음향이나 예배실 모두 최고로 좋았다. 우리들이 교회로 들어갔을 때,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빠체, 빠체" 하며 악수를 청하고 환영해 주었다. 내 자리 건너편의 여자 어린이도 나를 꼭 안으면서 루마니아어로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건넸다. "갓 블레스 유(God bless you)."

예배는 두 시간 정도 드려졌는데, 남자와 여자가 구분하여 앉았고 여자들은 치마를 입고 왔다. 다들 밤인데도 깔끔하고 정숙한 옷차림을 하고 왔다. 아이들도 두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예배를 드렸다. 침례교 목사님의 멘트가 끝나고 대표 기도가 이어졌다. 우리나라 교회와는 달리 루마니아 교회는 감동받은 사람들이 계속 기도를 이어갔다. 언어가 다름에도 남북한을 위한 깊은 기도로 느껴졌다.

감동적인 설교와 간증, 특송을 드린 예배가 끝나고 우리에게 피자와 홈메이드 케이크와 쿠키를 대접해 주셨다. 예배 때 찬양을 인도했던 부목사님은 아코디언을 연주해 주었고, 다니엘은 트럼펫을 불었다. 우리와 루마니아 성도들은 금방 하나가 되어 함께 찬양을 부르며 손을 잡고 홀을 돌았다. 찬양하는 내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내 평생에 가는 길 늘 잔잔하며..." 가는 내내 찬양을 하며 돌아갔다. 밤이 늦었지만 조는 사람도 없이 찬양을 이어 갔다. 시골교회라 생각했는데 그곳엔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있었고 남한과 북한을 위한 사랑의 기도가 샘솟고 있었다. 충만한 기쁨이 가득한 그곳은 초대교회와도 같았다.

체제 전환 국가에서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 준비는 시대적 요청
선교의 디딤돌은 거듭난 성도가 증인된 삶을 살도록 돕는 것

10월 28일부터 11월 5일까지 진행된 이번 루마니아 선교여행을 통해 우리가 방문한 교회들에서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들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 어른이든 어린아이든 최대한 정장에 가까운 깨끗한 옷을 입고 서로를 반기는 모습에서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느꼈다. 청년들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비디오카메라 녹화와 찬양 인도, 성가대 등에서 헌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부러워했지만, 우리 팀은 성령의 임재가 가득한 예배를 드리며 초대교회와 같이 서로 떡을 떼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루마니아 교회들의 순전하고 온전함을 부러워했다. 참으로 감사하고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예배에 집중하고 부흥 성장했지만,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는데, 성도들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동유럽 국가들에서의 고민은 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체제 전환 국가에서의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하는 것은 시대적인 요청이기도 하다. 동유럽의 체제전환국을 돌아보면서 선교의 디딤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거듭난 성도들이 증인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느꼈다. 선교를 하기 위해 새롭게 교회를 세우고 개척하기보단, 기존에 그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 중보하며 돕는 것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라 여겨졌다.

루마니아의 곳곳에서 북한선교를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함께 동역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가 맘대로 갈 수 없는 땅이 된 북한을 갈 수 있는 루마니아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북한선교를 위해 발걸음을 떼고 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열심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고 세우고 계심을 루마니아 선교여행을 통해 알게 하셨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 기도한다.

오세안 권사(숭실대 기독교통일지도학과 석박 수료, 숭실통일아카데미 1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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