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나도 모르게 내 가족, 친구, 동료에게 말로 준 작은 상처를 잊지만, 상대방의 가슴속에는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Mimi Thian on Unsplash
어느 날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제자에게 말했다. 큰 돌멩이를 바구니에 담아 놓고 네가 두고 싶은 곳에 두고 오라고 말했다. 제자가 큰 돌멩이를 놓고 오니 이번에는 작은 돌멩이 한 바구니를 두고 오라고 했다. 영문을 알 수 없던 제자는 순순히 스승의 말을 따랐다. 다음날 소크라테스의 지시는 정반대였다. 어제의 큰 돌멩이를 다시 갖고 오라고 한 것이다. 제자는 큰 돌멩이를 모두 찾아왔고, 소크라테스는 작은 돌멩이도 다 거둬오라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제자 손에 들린 건 작은 돌멩이 몇 개뿐이었다. 큰 돌멩이를 둔 곳은 모두 기억났지만, 작은 돌멩이는 작고 많아서 어디에 놨는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에게 왜 이렇게 하라고 했는지 알겠느냐."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제자는 곰곰이 생각해도 스승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소크라테스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한 큰일들은 기억하지만 작은 일들은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다고. 그게 우리 인간들의 삶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작은 잘못들은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큰 실수라면 기억에 남지만, 아주 작은 것이었다면 기억의 저편으로 멀리 떠나보낸다. 나도 모르게 내 가족, 친구, 동료에게 준 작은 상처를 잊게 되는 것이다. 반면 상대방의 가슴속에는 끝내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기억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작은 실수가 '말'이다.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흉기로 사람을 해치는 것만이 살인이 아닌 것이다. 말 한마디는 사람의 인격을 도륙하기도, 주저앉아있는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기도 한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을 포함한 모든 것을 대변하는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말의 엄중함을 가슴 깊이 새기고 정제된 말을 해야 한다.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내 말이 상대방 처지에서 상처가 되지는 않는지 세심하게 생각해야 한다. 충격에 의한 외상은 아물지만, 말로 인한 내상은 영원히 아물지 않을 수 있다. 마음을 할퀸 상처는 숱한 시간이 흘러가야 아문다. 최근 사회 지도층이라고 일컫는 국회의원들의 막말 릴레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언행의 신중함을 되새겨본다. 말이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는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그 말 속에 성품과 인격과 그 사람이 이제껏 살면서 이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그 사람을 나타내지만, 어떤 가정에서 어떤 부모 밑에서 가정교육을 받으며 성장해온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성심 부산소망교회 집사
▲이성심 부산소망교회 집사
요즘에 우리 사회가 어떤 부분에서 보면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지도층들이 마치 '막말' 릴레이를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만이라도 정말 '말'의 신중함을 되새기고 조심스럽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모르게 무심코 한 말 한마디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면 한 교회 안에서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로 인하여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상처를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서로에게 결코 이롭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야고보서 3:2)"는 성경말씀은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중한가를 깨닫게 한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 누구도 예외가 없는 것이다.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누구라도 말을 하기 전에 이 말을 하면 듣는 상대방이 상처를 입지 않을까를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더욱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성심 ㈔한국뇌성마비복지회 부산지회 전 사무국장
부산소망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