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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토박이이신 아버님은 일본의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셨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3~4대 독자인 아버님은 일찌감치 가장이 되어 무거운 짐을 져야 했습니다. 보수적이고 고지식하신 아버님은 유교를 철저히 믿으셨고, 어머니는 하늘의 칠성을 믿는 칠성 불교를 믿으셨습니다. 어렸을 때 저희 집에는 작은 제단이 마련되어 있고, 어머니는 그 앞에서 자주 두 손을 모으시고 가족을 위해 간절히 비셨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1955년 제주도 구자면 하도리 어촌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갓난아이 때 한 번 죽었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적이 있습니다. 태어난 지 70일쯤 되어 갑자기 열병에 걸렸고, 식구들 모두 죽은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저를 포대기에 싸서 버리려고 집을 나섰다가, 울음소리가 들리자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저희 마을에는 7개 부락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마을 조합장으로 일하셨습니다. 또한 가옥이 세 채이고, 농장을 운영하는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아버님께 대필을 부탁하러 오는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바둑을 좋아하시고 곧잘 두시던 아버님은 마을에 바둑을 보급하는 일도 하셨습니다. “너도 바둑 공부 해보아라.” 아버님은 제게 바둑을 배워보라고 권하셨지만, 저는 아버님의 꿀밤이 너무 아파 슬슬 피하기만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지금은 ‘바둑 좀 배워둘걸’ 하고 후회가 됩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 바둑을 두면 취미로 좋지요. 지금은 저녁마다 바둑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물론 바둑 두는 실력도 제법 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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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구 3G테크놀러지 사내 협력업체 일출정밀 대표(6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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