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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는 ‘소망’의 한 요소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믿음과 사랑은 경험을 바탕으로 설교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소망을 주제로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건 매우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소망은 고난의 바다를 항해해본 경험이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역사에서 가장 슬프고 어두운 시대는 어쩌면 소망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기였을 것이다. 시대적, 개인적으로 어두운 상황 가운데 신음을 토해내는 내용이 담긴 욥기,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그리고 고통을 노래한 시편과 히브리서를 읽어보면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게 무엇인지 보게 된다.

소망을 노래하려면 절망과 비통, 우울의 어두운 밤 시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리고 아침을 맞을 때 비로소 그 아침을 향한 기대를 갖게 된다.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와 도우시는 손길을 향한 소망이 우리를 회복시킨다.

시편 88편은 시편 중에서 가장 어두운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시편 저자는 극심한 고통과 아픔을 하나님께 토로한다. 자신은 죽은 자같이 되었다고 한다.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시편 88:5)

나는 몽골을 떠나 다시 선교사로 인도네시아에 와서 그것과 유사한 체험을 했다. 내 모든 기도가 막힌 것 같고,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고 믿고 선택한 길에서 계속되는 좌절을 경험하며,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 스러지는 듯했다. 그때는 내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하나님과 전혀 다른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그 시간이 다 지나고서야 ‘그때 그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내가 알고 고백하는 하나님은 내 틀 속에 갇힌 제한된 하나님이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절망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비로소 소망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소망을 가져야지’라고 결단한다고 갖게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며, 그 소망 자체가 능력임을 배웠다.

시편 88편에 희망의 한 줄기 빛과 같은 구절이 있다.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시편 88:13)

내가 고통 가운데 마음이 산란하여 방황하며 하나님을 찾았던 그때, 이 한 구절이 내게 소망의 빛을 던져주었다. ‘부르짖음’은 주님만을 기대한다는 걸 몸과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통스러울 때,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편안한 때는 다른 걸 추구하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어려움이 닥쳐야 하나님을 찾게 된다. 그분을 기대한다는 게 무엇인지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건 소망을 마음에 두었을 때 가능하다. 너무 힘들어 낙망하고 좌절했을 때는 기도할 의지도 사라진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내 외마디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는 분임을 마음으로 깨닫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이 된다.

또 그분께 부르짖는 가운데 우리가 기다리는 대상이 달라진다.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실체가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임을 배운다. 아침을 기다리는 목적이 달라진다. 내 주변 상황의 변화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 바람이 달라져 있음을 보게 된다. 내 기도를 타고 올라가 하나님 앞에 다다라서 그분을 체험한다.<북코스모스>

- 『기대』 중에서
(이용규 지음 / 규장 / 256쪽 / 13,000원)

저자 이용규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중동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몽골에서 몽골국제대학교 부총장으로 섬겼으며, 현재는 인도네시아에서 교육선교와 한국교육단지 내 JIU(자카르타 국제대학교) 설립에 헌신하고 있다. 저서로는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 『떠남』이 있다. 그가 더 이상 나눌 게 없다고 느낄 즈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기대’에 대해 묵상하게 하셨다. 그것도 그의 삶에 극심한 기근으로 어두움 가운데 있을 그때에, 인도네시아에서의 교육 사역을 막 일으켜야 하는데 그를 병원 침상에 꽁꽁 묶어두신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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