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jpg1947년 독립 이후로 셋으로 나누어진 군부세력과 함께 불안정한 혼란을 겪어왔다. 2008년 선거와 함께 이러한 상황은 사라졌고, 2013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시민정부로 권력이 넘어갔다. 사실 파키스탄 내 정부나 군대 어디에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시민정부와 군사령부 일부 세력들 간의 상호통치에 의해 나라의 큰 그림들이 그려진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둘 중 한 세력이 강한 통치권을 가지기 위해 충돌할 위험에 처해 있기도 하다.

증가되는 급진주의 이슬람

2011년 1월과 3월에 있었던 펀자브주(Punjab) 주지사 살만 타세르(Salman Taseer)가 반대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는 신성모독법을 개정하려 한 것과 신성모독죄로 사형 위기에 처한 한 여인을 지지한 것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이 나라에서는 법의 통치와 종교적 다양성 유지가 불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주지사 타세르의 살인자는 수백 명의 자원한 변호사들로 비호되었고, 그들은 보수 없이 그를 변호하려는 의지를 보였으며 종교분파와 중요한 종교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법정은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는데 사형을 언도한 판사는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국외로 피신해야만 했다.

2015년 10월 7일 이 살인자는 파키스탄 대법원으로부터 사형을 언도받았고, 2016년 2월 29일 집행되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수천 명의 사람이 모든 신성모독범들의 즉각적인 사형을 요구하면서 수일간 폭동을 일으켰다. 신성모독에 대한 무고한 혐의로 인한 공격과 비난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기독교인들은 무법과 무보호의 처지에 놓여 있다.

p2.jpg이웃과의 긴장된 관계

비록 파키스탄이 공식적으로는 미국의 동맹이더라도, 군 세력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Taliban)을 후원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불안정과 변덕스러운 상황은 파키스탄 내에 많은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수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두 나라 간의 긴장관계로 인해 난민들을 아프간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있다. 인도와의 관계도 여전히 긴장관계이다. 2012년 4월, 7년 만에 처음으로 파키스탄 수상의 델리(Delhi) 방문은 긴장 완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보여주었지만 발전된 결과를 맺지는 못했다. 2015년 후반에는 두 국가의 국경에서 소규모접전이 다시 일어났으며, 잠재적인 문제로 인도강의 분배에 대한 두 나라 간의 조약이 남아있다. 이 조약은 세 번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60년간 이어져 오고 있다.

지속되는 경제적 위기

파키스탄은 급격한 인구증가를 겪고 있으며, 젊은 층의 경제 관념은 부족한 편이어서 경제적 밝은 미래를 예상하기는 힘들다. 빈곤율은 높고, 수만 명의 사람이 소액의 돈으로 삶을 연명한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이 살고 있다. 그 돈은 하루의 필요를 충분히 채우기엔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은 특별히 민족적, 종교적으로 소수인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준다.

아동 노동은 국가 내 만연되어 있다. 전체 인구가 이러한 빈곤한 상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만 소수그룹, 특히 기독교인들은 더욱 심하다. 그들 대부분은 온종일 노동을 하며, 그들을 고용한 사업주의 불공정한 대우에 의지해 살아간다. 고용주들은 흔히 독단적이고 폭력적이다. 여성과 아동은 특별히 취약한 대상들이다. 지난 수십 년간 국가 교육에 대한 정부의 빈약한 투자는 이슬람교 고등교육 시설인 마드라사(madrassas)의 증가를 가져왔다. 이러한 학교의 숫자는 3만5,000개를 넘어서며 정확한 학생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다. 이로 인해 기독교인들의 교육적 혜택은 줄어들고, 무슬림 고용자에 의지해 가난하게 살아가야만 한다. 또한 종종 좁은 시각을 가지며 무관용적인 마드라사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끝)

오픈도어선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