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1.jpg※ 해당 글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내가 C국에 있을 때부터 지인과 가족들을 통해 영화 ‘국제시장’이 볼만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다. 남편 K선교사는 내가 귀국하면 어머니도 모시고 온 가족이 다 함께 ‘국제시장’을 볼 계획이라고 연락을 해왔다.

이제 내가 귀국한 지 꼭 한 주간이 되는 날, 토요일인 오늘 드디어 우리 가족은 ‘국제시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가족단톡방’을 통하여 서로의 삶의 이야기나 소식을 모두 공유한다. 그래서 오늘 할머니를 모시고 영화 보러 간다는 말을 가족단톡방에서 본 대구에 사는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니 계좌 좀 알려주세요~~^^. 할머니 모시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별다방커피도 한잔하고 오세요”라며 영화관람료를 보내 주겠다는 기특한 소식을 보내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머니를 모시고 목동 H백화점 안에 있는 영화관으로 갔다.

나는 아침도 든든히 먹었으니 돈을 조금이라도 아낄 생각으로 팝콘은 사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웬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영화관에 내리기가 무섭게 어머니께서 하시는 첫 말씀이 “아유~ 고소한 냄새”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의 그 한마디 말씀에 나는 두말할 것 없이 버터, 팝콘, 오징어, 음료세트를 주문했다. 이렇게 간식까지 챙기고 영화 볼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자,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중공군의 침투로 이북의 흥남부두에서 철수하는 미함정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배에 실었던 모든 무기를 버리고 부두에 몰려든 피난민을 싣는 장면이 전개되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는 저 배 이전에 다른 군함을 타고 거제도로 갔어. 피난민 가운데서도 학생과 처녀들을 먼저 태웠지” 하신다. 그러니까 함흥 출신이신 어머니는 이북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탈출하신 산증인이신 셈이다. 그러니 ‘국제시장'을 보시면서 얼마나 많은 추억이 떠오르면서 공감이 되었을지 상상이 간다.

그래선지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집중해서 영화를 보시든지 영화에 완전히 몰입하셨다. 내가 간혹 영화를 보다 말고 옆에 앉으신 어머니를 슬쩍 살펴보노라면, 소녀처럼 두 손을 가슴에 포개어 깍지를 꼭 끼시고는,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국제시장'은 소년의 몸으로 가장 아닌 가장이 된 주인공 덕수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다. 동생 막순이의 손을 놓친 죄의식과 그로 인해 아버지와 헤어진 것에 대한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간다. 덕수의 아버지가 동생 막순이를 구하러 구사일생으로 탔던 배를 다시 내려가며 “이젠 네가 가장이다”라며 덕수의 마음에 일생 새겨질 한마디를 던진다.

그리고 덕수는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대한 순종으로 일생을 바친다. 서울대에 입학한 남동생의 등록금과 학비를 대기 위해서 독일의 광부로 가서 모진 고생을 하고 돌아오지만, 고모가 운영하던 수입잡화점 '꽃분이네'를 인수하고, 혼수욕심 많은 여동생을 결혼시키기 위해서 다시 전쟁터인 베트남에 기술자로 돈 벌러 간다.

덕수는 독일광부 시절 만난 아름다운 간호사 아가씨와 결혼했으나, 아내와 아이를 남겨두고 갔던 베트남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다리를 저는 불구자가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덕수의 희생으로 가정의 경제는 안정이 된다. 방송사의 이산가족 찾기의 도움으로 어릴 때 헤어진 뒤, 미국으로 입양되어 갔던 여동생 막순이도 극적으로 만난다.

이제 온 가족이 모여서 즐거운 파티를 벌이지만 그 자리에 덕수의 아버지만 없다. 덕수는 시끌벅적 즐거운 가족들의 곁을 떠나서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 보면서 덕수는 아버지에게 말을 건다. “아버지 저 이만하면 참 잘 살았지예. 근데 참 힘들었어예”라고 독백한다.

그러자 화면은 어느덧 덕수가 아버지와 헤어졌을 당시의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갑자기 듬직한 아버지가 나타나 어린 소년 덕수를 꼭 안아주며 위로해준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던 마음의 상처를 아버지가 나타나 보듬어 주고 있는 것이다. 내겐 크게 감동이 되어 다가온, 덕수가 내적 치유를 받는 장면이다.

그리고 지대가 높은 집 옥상 평상에 부산바다와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이젠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된 덕수와 그의 아내가 앉아 있다. 문득 덕수의 아내가 묻는다. “당신은 일생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이 뭐였어요?” 덕수는 “난 선장이 되어 배를 타고 싶었어.” 덕수의 아내가 “왜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말을 안 했어요?” 하지만 덕수는 아내의 그 말에 침묵한다.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가장 덕수는 자신의 꿈을 아내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채 일생을 보냈던 것이다. 그만큼 가족을 부양하는 의무,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는 책임감은 덕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생의 가치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인 ‘가장의 책임’을 목숨 걸고 지켜야만 했었다.

이번에 덕수의 아내는 화제를 바꾸어 여성답게 로맨틱한 다른 질문을 던진다. “당신 나와 왜 결혼했어요?” 덕수는 지체 없이 대답한다. “예쁘니까 결혼했지.” 덕수의 아내는 피식 웃으며 “거짓말이라도 듣기는 좋네요”라고 응수한다.

이번에는 덕수가 묻는다. “임자는 왜 나와 결혼했어?” 덕수의 아내 역시 조금의 지체 없이 “사랑하니까 결혼했지요”라고 대답한다. 아내의 그 말에 덕수는 “거짓말이라도 기분은 좋네” 라고 응수하고 함께 웃는다. 두 사람의 모습에서 고난의 역사 가운데 함께 살며 사랑했던 공감대가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전쟁을 겪으며 고단한 가장의 삶을 인내로 살아낸, 위대한 우리의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진 덕수의 모습에서 고지식하지만 믿을 만하고 든든한 아버지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의무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남편을 내조하며 인내로 살아온 덕수의 아내를 통해서는, 당시에는 보통 5~6남매의 아이들을 낳아서 기르면서도 어떻게든 가르치고 교육시켜 온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속 깊은 뚝심을 보는 듯하다. 나도 우리 어머니를 통해서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또 덕수 부부를 통해서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살게 된 원동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식들에게만큼은 고생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집념은 곧 덕수 삶의 이유며 희망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덕수의 자녀들은 아버지 덕수를 고집쟁이 구닥다리 노인으로 폄하한다. 아버지 덕수의 그 속 깊은 마음을 아마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덕수가 자기의 꿈과 낭만을 좇아 마도로스가 되었더라면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꿈은 좋은 것이지만 여기서는 타인을 위한 '희생'의 가치와 그 소중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너무 쉽게 가정을 해체하는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부모들의 뼈를 깎는 수고로 우리는 더 잘살게 되었는데 왜 그리 이혼이 급증하는 것일까? 분명히 그들은 덕수 같은 책임감 강한 부모의 자녀일진대 어떻게 그렇게 쉽게 가정을, 가족을 포기할 수 있을까.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은 없기에 모두 나름의 아픈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난 뒤에 풀리지 않는 나의 의문점이었다. 예뻐서 결혼했든, 사랑해서 결혼했든, 그리고 그것이 덕수 부부처럼 서로 거짓말이라고 말할지언정,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가족에게 신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중국어문선교회 www.chinatogod.com)

나은혜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출처: 중국은주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