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남겨놓고 간 교훈

우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선교단체의 이스캠프에 얼마 전에 큰 둑님(?)들이 들었다. 안식년과 질병치료를 위해 잠시 떠나 있는 선교사님들이 맡겨둔 값비싼 선교장비며 생활용품들을 훔쳐 달아났다. 초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 그 많던 경비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지? »라고 서로 묻게 되었다. 눈총을 받게 된 경비들은 억울하다며 하나가 되어 근무를 거부하고 나타나지도 않고 있다. 이런 반응 앞에 많은 사람들이 « 도둑이 제발 저리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 아니겠어? »라며 더 큰 의심의 눈초리를 그들에게 보내는 것 같다. 누가 진범인지는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아신다. 그러나 경비로써 그 소임을 충실히 감당하지 못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꼬마들도 안다. 이곳에서 25 년을 사역한 선교사님부부는 그래서 더욱 낙심이 되어있다 (경비들은 모두 선교사님 부부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며 이웃들이다). 동료 선교사가 아니라 함께 삶을 나눈 현지인들이 이럴 때 함께 해준다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 해마다 agenda(아종다, 다이어리 수첩)를 만드는 시점에는 이런 사건들이 터진다 »고 하신다. 사탄의 방해공작이라며 중보기도를 요청해오신다(도둑을 맞은 다음날에는 고국에 있는 동생가족이 캠핑을 갔다가 방년 20 세의 새파란 조카가 물에 익사한 사고가 있었다). 도대체 무슨 다이어리이기에 사탄이 이다지도 크게 발악하며 방해를 한단 말인가? 집에 들어와서 아내가 오래 전에 받았던 다이어리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다이어리로 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다르다면, 매달 획을 적는 곳에 성경구절이 불어와 아랍어 그리고 이곳 방언으로 적혀 있었고 마지막 장에는 성경이 어떤 책인지 간단하게 소개하는 글이 있었다. 내게는 그리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아 보였다. « 사람들, 특히 교도들은 공짜로 주는 수첩이라서 성경구절이 적혀 있어도 별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요(연말 연시에 이곳 사람들은 달력과 수첩을 선물로 받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사실 우리도 과거에 그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매달 계획을 적고 중요한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 다이어리를 열때마다 거기 기록된 말씀을 자연스럽게 읽게 되지요. 그리고 그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 속에 들어가 일을 합니다. 사탄이 그래서 이 다이어리를 너무 싫어한답니다.» 선교사님의 말을 들으니 다이어리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가지 사실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바울이 더 큰 비전을 위해 고린도교회를 떠나갈 때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한 권면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2) 앞으로 닥칠 교회의 어려움을 예견한 바울은 여러 권면으로 리더들의 성실함을 촉구했지만 마지막에 그가 부탁한 것은 주와 그분의 말씀이었다. 역사하는 것은 말씀이다. 그리고 왜 2 천년 전 그 날에 사탄이 그렇게 미친 듯이 날뛰며 방해공작을 했는지도 실감할 수 있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시던 그 날, 세상은 말씀을 위해 허름한 여인숙의 차디찬 방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사탄은 헤롯을 충동질하여 말씀이 세상에서 역사하지 못하도록 죽이려 했다(마 2:16).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 속에서 살아 역사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이 설 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니 두려워한다. 어둠은 빛이 들어오는 순간 존재할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매일 내 안에 로고스오신 말씀이 레마의 말씀으로 살아가시도록 묵상하는 일에 난 얼마나 시간을 드리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형식에 젖어서 할 때가 많다. 벌써 내 안에 어둠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도둑이 말씀을 훔쳐가지 못하도록(마 13:4), 밤에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지 못하도록 마음에 파수꾼을 세워야겠다.

아내와 함께 라디오 방송국 허가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6시간을 달려 은자메나로 달려갔다. 그러나 도착해보니 라디오방송국(모나미FM) 허가는 또 연기되어 있었다. 정부 담당자가 일 주일 전 국회가 관련 법령을 개정하였다며 서류를 더 첨부하고 기다리라고 한다. 어찌나 허탈하고 낙심이 되던지. 아내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랜, 정말 오랜 침묵이 흐른 뒤 « 나에게 속은 기분이 들어서 나랑 말하기 싫다 »는 말을 끝으로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 대상이 다르지만 속은 기분이 들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1년을 달려왔다. 이제는 도저히 더 달려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도 내려오는 길에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다. 포기다. 이제껏 내 사전에 포기란 말은 없었지만 이제 이 단어를 써 넣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 도둑님들이(남긴 교훈이) 나를 일깨웠다. 사탄이 그토록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을 싫어하는데 회교정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허가서를 내주겠는가? 그것도 이미 복음을 받은 종족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방송이 아니라 복음을 듣지 못한 보로로족을 위한 선교방송이라면 더더욱 눈에 불을 켜고 방해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주께서 힘들다고 불평하는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렘 12:5)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는데 벌써 지치면 어떻게 완주할 수 있겠는가? 걷는 자와 경주하는 것도 힘들어 한다면 어떻게 말과 함께 경주할 수 있겠는가? 잠깐 나무 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는 것과 주저앉아 신발을 벗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신을 벗으려 했으나 주님께서는 내게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으로 삼으라 하신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의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향해 힘차게 선포되는 그날을 다시 꿈꾸며 신발끈을 더욱 단단히 동여맨다.

«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께서는 말씀으로 내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 (시 119:49)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사 40:6,8)

기도해주세요

잠시 짬을 내서 이틀 동안 전동용 다이어리작업이 시작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탄의 방해를 기도와 말씀의 능력으로 이기어 선교사님들이 다이어리 작업을 잘 진행하시도록, 또 다이어리를 통해 더욱 많은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1. 보로로족을 위한 ‘모나미 FM’ 라디오 방송국의 허가와 앞으로 진행될 말씀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잃어버린 영혼들 가운에 나타나도록

2. 6 주 동안(매주 2 회) 교회에서 성가대를 대상으로 예배와 찬양 세미나를 인도합니다. 함께 진행하는 아내와 저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여 변화가 있는 세미나가 되도록 중보해주세요. 아울러 신학교 선교학 강의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3.빛터가 카메룬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손길을 통해 부족한 학비를 채워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머지 기숙사비도 채워지도록, 언어를 바꿔 영어로 공부해야 하는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룸메이트와의 관계를 잘 맺어 갈 수 있도록 지혜와 넉넉한 마음을위해 기도해주세요.

4.두고 온 왈리아의 학교의 새 학기 학생모집이 9 월 1 일에 시작됩니다(유치부 60 명, 초등부 80 명). 이것을 위해, 교사들의 성실한 사역을 위해, 그리고 미래의 그곳을 책임질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5. Bororo 족을 위한 원 스토리를 전할 쏠라 MP3 가(홍콩에 있는 엘림교회 지원) 잘 도착하고 이곳에서도 세관의 아무런 문제없이 받을 수 있도록 강력한 중보 부탁합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살아계신 말씀으로 인해 더욱 주님을 닮기 원합니다. 샬롬!

함께 나누고 싶은 글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라겔르뢰프여사가 쓴 « 진홍가슴 새 »라는 동화가 있다.

옛날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과 동, 식물을 지으실 때였다. 저녁 무렵이 되어 하나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신 뒤 잿빛 털을 가진 조그만 새 한 마리를 만드셨다. 그리고는 그 새 이름을 ‘진홍가슴 새’라고 불로 주셨다. 이 새가 하나님께 여쭈었다. « 저는 온통 잿빛 털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진홍 가슴새라는 이름을 붙여주셨습니까? »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 네가 참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될때, 그 이름에 합당한 깃털을 가지게 될 것이다. »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진홍가슴 새’의 둥지 근처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졌다.

그리고는 어떤 사람이 그 십자가에 매달렸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진홍가슴 새’는 그 사람이 얼마나 불쌍하게 보이던지 그 십자가에 달린 사람에게로 날아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그 사람의 이마에 가시관이 씌워져 있는데, 그 가시가 박힌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이 새는 그 가엾은 사람의 이마로 날아가서 자신의 자그마한 부리로 그 사람의 이마에서 가시를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했다. 가시가 뽑힐 때마다 피가 솟아 나와서 이 작은 새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이 새는 지칠 때까지 그 가시들을 뽑다가 안타깝게 돌아오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 몸에 묻은 피가 도무지 깨끗이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목덜미와 가슴에는 핏자국이 남게 되었고,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새가 낳는 새끼들마다 모두 목덜미와 가슴에 선명한 진홍빛을 가진 털이 생기게 되었다. (김성곤 목사님의 건강한 교회 이야기에서)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갈 6:17)

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차드 조00 문00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