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회장 안희열)는 최근 서울 방배동 백석대학교(총장 하 원)에서 "구약성경과 선교"라는 주제로 '제54차 정기 논문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Tremper Longman III(미국)와 김성욱 교수(총신대)가 각각 "Reflections on the Old Testament Background to New Testament Missions"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교메시지"(The Missionary Messages in the Old Testament)란 주제로 발표했다. 다음은 김성욱 교수의 발표 전문.

I. 서론

21세기 한국교회의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 오늘의 상황은 어떠한가?  전세계적으로 오늘의 상황은 경제문제해결에 모든 우선권을 두고 있는 현실에서, 가시적으로는 더더욱 불신세계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어가고, 비기독교 종교들이 세력를 확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차제에 한국교회의 선교를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 성경에 귀를 기울여 선교의 참 뜻을 깨달아야할 필요성이 있다. 선교가 사람의 일인 양 일시적 유행으로 여기고, 교회의 외형적 장식이나 되는 듯이 겉치레용이라는 거품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거기에 현대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 사실이다.  선교가 몇몇 목사나 선교사의 몫으로만 여기고 실제 삶에서는 선교가 제자리를 매김하고 있지 않는 것이 실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전한 선교 이해를 하려면, 성경에 나타난 선교적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죄악된 세상에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주의 사자들을 파견하시는 선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애굽에서 노예생활로 고통당할 때, 모세를 불러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시고 출애굽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다(출3:10).  이러한 하나님의 파송선교는 구약성경에서 계속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다음 성경구절은 증거한다.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부지런히 보내었”다(렘7:25; 히1:1-3).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보내시는 선교의 절정으로서 그 모습을 증거한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4:4). 예수께서 십가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시고 인간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보내주심의 그 사명을 이루셨던 것이다.  그 후로 성령을 보내시고 강력한 교회의 선교활동을 가능케 하시고, 우리 성도들에게도 세상으로 보내시는 위임장을 제정하여 주셨다(마28:19-20; 행1:8).  이렇게 볼 때 역사상 최초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다.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아들과 성령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아들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보내심을 받은 것처럼 우리를 보내신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20:21; 참고,고후5:18-19).
  
오늘 이 시대에 진정한 선교가 계속되기 위하여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교 메시지를 깊이 묵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선교의 중차대한 사명을 가르치시고 맡기실 때도 성경을 가지시고 초대교회의 선교사들을 일깨우셨다(눅24:15-53).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24:26-27). 
  
사도들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24:32)고 나누면서, 그들이 성경말씀을 이해할 때, 온전한 선교사의 사역을 감당했던 것을 보아서, 성경을 배우고 그 안에서 선교의 진리를 찾는 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4-46).

초대교회의 선교의 부흥은 이러한 성경에 근거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수용과 체험, 그리고 헌신적인 증거로 말미암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확증하는 것은 선교란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성경을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셔서 선교의 일꾼으로 삼는 사역을 시작해야할 것이다.

II. 구약성경에도 선교가 있는가?

선교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 이유는 성경은 신자에게 있어 신학의 기초요 삶의 모범이요 모든 생활의 지혜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신구약이 전체로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증거한다. 
  
신구약성경은 상호간에 모순되지 아니하며 상호보완적인데, 곧 약속과 성취, 율법과 복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어거스틴은 “구약은 신약에서 밝히 드러나고 신약은 구약에서 감추어져 있다” (The Old Testament is patent in the New Testament and the New Testament is latent in the Old Testament)고 신구약의 연관성에 대해 분명히 설명했다.  성경은  B.C. 1500부터 A.D.100년에 걸쳐 약 1600년 동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약 50여명의 인간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교의 당위성을 말씀하실 때, 구약을 사용하셨다(눅24:25-44). 우리가 구약의 권위를 인정함은 예수께서 그것의 권위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선교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이처럼 신구약 성경전체에 걸쳐서 살펴보아야 함을 알 수 있다. Fuller 선교대학원 교수 Arthur Glasser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개인과 국가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해하게 해주는 구약
   성경의 기여 없이는 신약성경이 묘사하는 ‘이미’ 임하였으나 ‘아직’ 도래하지
   아니 하였고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는 완전히 파악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구약은 우리의 선교활동의 토대(土臺)이며, 구약이 없는 신약은 불가능한 것같이 선교에 있어서도 선교의 대사명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구약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선교론을 논할 때, 결코 구약을 무시할 수 없다.
  
칼빈신학교 교수 Richard R. De Ridder는 그의 저서“Discipling the Nations”에서 “구약의 선교를 생각하지 않고는 신약의 선교는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했으며, 개혁주의 선교신학자 J. H. Bavinck 역시 그의 “선교학개론”에서  “얼핏 보기에 구약에는 선교사상의 기초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약성경을 충분히 연구하면 이방나라의 장래가 중요한 관심사임이 분명해진다... 참으로 성경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성경은 온 세상을 그 대상으로 삼았으며,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온 세계에 미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고 언급하였다. 
  
20세기 초 독일 복음주의 선교학자 Gustav Warneck은 구약에 이스라엘이 갖는 특수성과 하나님의 구원의 범위에 있어서 세계성을 비교하면서, “만민을 위한 하나님”이라는 세계주의가 구약에서 앞선다고 주장했다.  선지서 기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방의 하나님도 되시며,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방 나라의 희망도 된다고 선포하였다.  “여호와는 처음부터 하늘의 하나님과 땅의 하나님이시며, 처음부터 아브라함의 축복은 이방을 위한 것으로 정하셨다”고 주장했다. Arthur Glasser는 참된 선교를 이해함에 있어서 구약성경의 공헌도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했다.

   인간의 과실과 하나님을 대항한 공개적인 반역의 비극적인 기록에도 불구하고,
   구약은 우리들로 하여금 역사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보이지
   않는 실재를 믿게 하며, 역사 안에서 보이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인식하고 믿게 하며, 역사를 넘어서서 종말에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키시는
   것에 대하여 믿게 하여 준다.

III. 창세기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선교신학의 기초이며, 교회의 최대 사명인 선교의 완전한 성취를 위하여 오늘도 우리가 상고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전체의 서론인 창세기의 말씀은 특히 모든 신학의 기초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우주창조와 인간의 타락, 그리고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언약의 기록인데, 곧,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원초적 복음(Proto Evangelism; 창3:15)메시지라 할 수 있다. 혹자는 구약은 율법이요, 신약은 은혜의 복음이라 구분하여 구약을 등한시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은 첫 부분부터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증거한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다른 부분보다 특히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 민족이나 국가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국의 하나님임을 말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만물의 근원이시며, 온 피조계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하나님의 우주창조는 구약전체 내용에서 매우 주요한 주제로 자리잡고 있다.(시99:1;시100:1; 시98:4; 시97:1; 시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주의 것이라”(시24:1). 창조기사는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며, 세상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하는 선교의 기초가 된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온 세상을 관심을 가지시고 통치하심은 오늘 우리에게 전세계에 대한 선교의식을 가진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World Christian)의 삶으로 인도한다. 
  
화란의 개혁주의 선교학자 J. H. Bavinck는 창1:1절이하의 하나님의 창조는 마28:19-20에 나타난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필연적인 기반이며, 또한 이것은 사도 바울의 선교적 메시지(행17:26-27) 속에 적용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다. 그는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6-27).
  
George Peters는 창세기 3장의 인간의 타락사건은 선교의 원인으로 해석하고 선교신학의 기초로 설명한다(고후11:3; 요8:44).  오늘날 인간의 모든 문제들도 타락사건의 결과로서 “죄와 고통과 사망”이 임하기 때문에, 타락한 인생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구원이다.”  인간타락의 결과는 인간의 개인적 고통과 사망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주적으로 공해, 경제 불의, 착취 등의 사회악과 환경문제에까지 확대하여 나타났다(롬8:22-23).  우리가 선교에 착심 하는 이유도  바로 인간의 실존이 죄에 매여 불행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창12장 이후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한 보다 확실한 언약을 아브라함과 세우시고 타락한 인간에게 구원의 놀라운 계획을 진행시켜 나감을 보여준다.  창:1-3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축복하신다. 그가 받은 축복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복이었다.  아브라함  언약의 특성은 아브라함 후손들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하여 특별한 권리와 함께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장차 이방 족속들이 구원을 얻게 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역할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구약에 나타난 첫 이방선교의 명령이라고 볼 수 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1)후손의 축복, (2)명예의 축복, (3)땅을 소유하는 축복, 그리고 (4)만민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이다.  여기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선교의 소명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아브라함의 선택은 자신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며, 그의 후손들의 행운을 위한 것도 아니며, 그의 원수들의 불행을 위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인간 역사에서 새 장을 시작하셨다. 아브라함은 세계 구속을 위한 도구이다.”
  
요약하면 아브라함의 선택의 참된 뜻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특권과 함께 봉사와 선교의 책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구로써 이방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위한 막중한 책임이 있음을 증거한다.

IV. 출애굽기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H. H. Rowley는 “모세는 우리가 아는 최초의 선교사”라고 소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에게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소식을 알림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사건을 가지고 구약의 선교적 메시지를 찾는다.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이방 민족에 대한 선교적 관심을 찾을 수 있다. 
  
출애굽기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수가 늘어나서 하나의 국가 형태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적인 의도를 보여준다.  특히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족속 사이에 시내산에서 언약을 수립하게 되고 이 언약은 이스라엘의 분명한 이 땅에서의 위치를 나타낸다. 
  
출19:5-6은 모세 계약의 핵심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특권과 책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출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이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께서 붙여 준 이름이 세 가지로 나타나 있다.  곧, “열국중에서 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그리고 “거룩한 백성” 등이다.  이 세 가지 이름들은 바로 이스라엘이 가지는 그들의 정체성과 함께 그들의 선교적인 책임을 부각시킨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열국중에서 나의 소유”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이 많은 민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존재임을 증거한다.  신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이유는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신7:7) 단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심을 인하여”(신7:8) 성민(聖民)으로 불러 주셨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은 “열국중에서” “하나님의 소유”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소유”라는 말은 히브리어 표기로 “세귤라”인데, 이것은 왕이 아끼는 보물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는 가장 소중한 사랑의 존재임을 나타내는 말이요,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그리고 그들은 이 땅에서 존귀함이 있는 이스라엘의 가치를 증거한다.  또한 그들은 열국중에서 하나님의 소유로서 열국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백성임을 여기서 살펴볼 수 있다.  오늘날 세속화되어 가는 한국 교계를 바라볼 때, 이 본문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선교적 소명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사용된 이스라엘의 이름은 “제사장 나라”이다.  하나님과 열국 백성 앞에서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갖는 이 표현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많은 과제와 역할을 부여하시는 표현이다.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이 일찍이 성경에 나타난 “만인제사장론”을 주장하였지만,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는 현실인데,  다시 성경에 주의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역할이 “제사장 나라”로서의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구약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백성들의 예배를 위해 봉사하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축복을 선포한다(민6:24-26).  아울러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사역을 감당한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열방 앞에 이러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위치에 있음을 말씀하신다. 이 표현 또한 이스라엘이 갖는 분명한 선교적 역할을 지적하고 있다. 
  
세 번째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구분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하나님의 소유로서,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제사장적인 사명을 가지고 이제 “구별된 백성”으로서 불러 주신다.  여기서 사용된 “거룩한”이란 말은 어떤 종교적, 도덕적 정결함보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백성이란 뜻이다.  곧,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쓰심을 위하여 구별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구별된 백성으로서 그들의 위치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약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 소유로서 선교적 사명을 가진 제사장나라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수행하기 위한 거룩한 백성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전세계를 구원코자 하는 하나님의 선교 의지에 온전히 자신을 구별하여 드려서, 하나님의 복음전파의 도구가 되자!.

V. 시편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지금까지 구약에 나타난 아브라함과 모세를 부르시는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선교적 메시지를 살펴보았는데,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은 하나님의 구별하신 목적을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제사장나라”로서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적 사명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거룩한 나라”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의 목적을 가지는 백성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열국 중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소유”로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소유(세귤라:Segullah)인데, 이러한 표현은 이스라엘이 지니는 가치를 표현하면서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특권을 받은 존재임을 나타낸다.  결국 이스라엘의 선택은 전세계에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위한 하나님의 수단이 되며, 하나님의 선교사역의 도구로서 그 역할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선택은 특권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봉사와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수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심은 우리에게는 무한한 축복이지만 아울러 하나님의 세계선교를 위한 그 뜻을 위해 선택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 선교적 책임을 다하여야 하리라(암3:2).
  
이러한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적 특권은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삶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모습은 구약의 시편에 잘 묘사되어 있다.  구약의 시편은 몇 가지 큰 주제로 구성되는데, 곧,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서, 그리고 온 세상을 말씀으로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그 엄위하심, 그리고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와 광야의 위험에서 구원하신 그 은혜와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시는 여호와의 구속주되심을 찬양하는 시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외에도 개인적인 경건을 위해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기도와 간구의 시편들, 어렵고 힘든 환란 날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구하는 시편들이 있다..
  
달라스신학교 George Peters는 이러한 시편은 아주 탁월한 선교적 설교라고 주장하였다:  “시편은 선교의 관점에서 보지 않아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책 중의 하나이다.  시편에서는 구원의 보편적인 내용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시는 선교 메시지요 도전이다.”
 
시편가운데, 온 세상을 구속하시는 메시야에 대한 시편들은, 예를 들면, 시2, 시118:22-23등은 시인이 바라보는 열국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노래함에서 인간구원의 선교메시지이며, 시67:2의 “주의 도를 땅위에 주의 구원을 만민중에 알리소서”라는 기도는 소위 “구약의 주기도문”으로 불리며 구약에서 선교가 가장 잘 나타난 본문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시67:3-5는 선교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노래한다.
  
시편에 나타난 광대하신 하나님과 온 땅을 다스리시는 창조주의 왕권을 노래하는 시편들은 하나님께 대한 영광을 돌림과 동시에 이방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시9:19-20에서 시인은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 하소서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뿐인 줄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또한 시96:4-5에서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라고, 그리고 시96:5에서는 분명한 목소리로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라고 담대하게 선포함은 오늘의 종교다원주의적인 환경에
둘러 쌓인 우리들에게도 선교의 주요한 메시지가 무엇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96:9-10에서 시인은,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 지로다”라고 외친다(시 99:1).  오늘 우리도 구약의 시인과 함께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외치자.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 지어다”(시47:1).

VI. 선지서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구약의 선지서는 우리가 가장 잘 읽지 않는 구약성경의 한 부분이지만, 예수께서 이 선지서를 그의 공생애 사역에서 애용하셨고,  구원의 역사를 우리에게 설명하시기 위해서 자주 인용하셨다(눅24:27, 44).  선지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선지서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현실의 어려운 상황속에서 어떻게 말씀사역을 감당하였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학자 W. VanGemenren은 구약의 선지서는 우리에게 실제로 오늘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떻게 복음전파의 사역을 보여주는 뛰어난 말씀으로 오늘도 생생히 우리의 삶의 현장에 적용되어야하는 메시지라고 주장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세계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증거했는데, 곧 그들은 오실 메시야와 관련된 예언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의 사상들을 분명하게 피력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새 언약과 그리스도”(렘31:31-34)로,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의 임함으로 나타날 구원과 심판의 내용을 통해서 선교적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다.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욜1:15).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말3:2).
  
구약의 역사서가 “이스라엘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the God who acts)을 증거한다면, 선지서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묘사한다(사50:4; 렘23:28; 암3:8).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암3:8).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선포함으로 그들의 역할을 감당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사역은 오늘 우리에게 선교사역의 중요한 모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특히 말씀의 사역에 있어서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9)라고 고백하였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제는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셔서 이방이 구원받을 것을 말함과 동시에 이스라엘은 특권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남은 자만 구원받을 것을 예고한다.
  
선지서에 나타난 주요한 세계 선교사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선지자들은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자요, 만민의 하나님이심을 통해서 선교의 메시지를 선포한다(사2:1-4, 민4:1-4, 렘3:17, 사25:6-9, 60장, 슥8:20). “그 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요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치 아니할 것이며”(렘3:17). 
  
둘째로, 선지서에 나타난 선교의 특징은 신약과 달리 구약에서는 이방인들이 자발적으로 구원을 사모하여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사실로 묘사한다. 때가 되면 이방인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성 시온에로 몰려올 것을 예언한다(Spontaneous Coming of Heathens)(사2:2, 55:5, 56:7, 60:3, 62:1-2, 66:18-21, 슥8:22, 학2:7, 렘3:17).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슥8:22).
  
셋째로, 선지서의 선교는 종말적 사건으로 묘사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백성이 만방에서부터 모이는 위대한 집합지가 되는 것은 마지막 날이라고 명시하였다(사66:1-4).  마지막으로, 선지서의 선교는 메시야의 고난을 통하여 성취될 사건으로 증거한다 (사52:13-15).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 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사52:15).  이처럼 구약의 선지서는 세계  이방선교가 그 핵심이라 할 만큼 선교내용이 풍성함을 볼 수 있다.  아울러  말씀의 사역자로서 선지자들의 다양하고 헌신된 삶은 오늘의 복음선교를 맡은 사역자들에게 많은 도전을 준다.

1. 이사야서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이사야서에 나타난 선교는 신구약 전체 성경가운데 그 어느 책보다도 방대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의 소명에 대한 기록은 오늘도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말씀으로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주의 목소리를 듣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라고 고백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헌신은 오늘의 선교를 위한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마땅히 헌신해야함을 보여주는 본문이라 할 수 있다.  어려운 시대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사역에 부름받았으나, 그는 그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다(사50:4-6).  구약학자 W. VanGemeren은 이사야를 특별히 구별하여 “복음적인 선지자”(Evangelical Prophet)로 구별하여 부르고 있다.
  
이사야의 예언은 포로 후기에 주된 역할을 하였는데, 이 책의 영역은 이사야의 시대를 넘어 또 포로 후기의 재건 시대를 넘어 새 하늘과 새 땅까지 걸쳐 있다. 이사야 예언전체에서 나타나는 복음의 본질은 “진실로 구원은 우리 주님께 속한다”는 것이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구원은 크게 두 가지로서, 첫째로 의로운 남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둘째로 불경건한 자들이 당하는 수치와 보복으로 나타난다.  선지자 이사야는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외치면서 복음주의 전도자로서 이사야는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전파됨을 선언한다.  곧, 사람의 배경이나 인종적 기원에 상관없이 그리스도안의 새 공동체는 여호와의 구원 약속에 포함됨을 전파했던 것이다.
  
이사야서에 있는 중요한 선교적 본문들은 다음과 같다.
사19:23-25에서는 과거에 원수되었던 주변의 이방나라들이 복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권속으로 나타남을 예언한다.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찌어다 하실 것임이니라”(참고:사2:2-3). 
  
사66:18-19에서 “때가 이르면 열방과 열국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내가 그들 중에 장로를 세워서 그들 중 도피한 자를 열방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 못하고 또 나의 명성을 듣지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성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열방에 전파하리라”라는 말씀은 구약선교의 최고 절정이라 불릴 만큼 장엄한 주님의 세계선교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여 준다.  여기서는 이사야 선지자는 이방인들의 구원에의 참여 및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백성들에게 전파하는 선교사들로서 나타날 것을 보여주었다.
  
사52:3에 나타난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라는 말씀은 18세기 위대한 선교사 William Carey가 영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선교메시지를 힘있게 설교했던 말씀, 곧, “하나님께로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1792)”고 증거했던 그 본문이다.
  
또한 사52:7은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할 때 인용했던 말씀으로(롬10:15),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와 선교사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에 대해서 밝히 묘사하는 말씀이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이사야 선지자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리에 한결같이 참여하기 위해 지음 받았으며 이것이 우리의 본분임을 분명하게 확증하는 선교메시지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라”(사43:21;참고: 벧전2:9).

2. 요나서에 나타난 선교 메시지

한 때 구약성경에도 선교사상이 존재하는가에 대하여 학자들의 주장이 맹렬할 때도 요나서에 나타난 선교만큼은 누구나 인정하는 매우 분명한 구약성경이다. 요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던 왜곡된 선민의식을 지적하고 앗시리아에도 은혜를 베푸시고 이스라엘을 심판함에 있어 하나님이 얼마나 자유하신지를 나타낸다. 
  
선지자 요나는 주전 8세기경 여로보암 2세(793-753 B.C.)때 활동했던 선지자였다(왕하14:25).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요나서의 역사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요나서의 정경의 역사성은 성경안에서 자증 되는 진리이다(마12:39-41).  요나는 구약시대에 이방으로 선교하러간 유대인 선지자였으며, 비록 그가 마지못해 행하기는 했어도 이것은 뚜렷한 선교의 실례이면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명령(마28:19-20)에 순종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롬10:14).
  
구약신학자 H. H. Rowley는 요나서는 복음선교의 사신의 필요성을 말해준다고 강조한다.(“If men were to be won to repentance and to be brought into the faith of Jehovah there must be messengers of His grace”). 남아공의 선교학자 David Bosch는 그의 “선교신학”에서 요나서는 “위대한 선교사 열전이라기보다 착각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자기소명을 인식케 하는 하나님의 뜻의 표현이요, 잃어버린 자를 포기치 아니하고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이 성경은 구약 이스라엘의 편협한 민족주의를 시정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설명한다.  구약 주석가 C. F. Keil도 요나의 사명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방 나라의 위치를 깨닫도록 하고 이방 나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이스라엘에게 준비된 구원에 장차 참여시킬 것을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요나서의 내용은 주로 8가지 장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1)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거절하는 요나의 모습(1:1-3), 2) 하나님의 보내신 강풍으로 요나의 도주에 응답하심 (1:4-16), 3) 큰 물고기를 준비하심 (1:17), 4) 요나의 구원에의 간구 (2:1-10),  5)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남이라”고 강조함 (3:1-4),  6) 니느웨 백성이 왕과 함께 전체적으로 회개함 (3:5-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3:10), 7) 선교 임무 수행 중 가장 큰 장애는 요나 자신임을 발견하는데 (4:1-4), 곧 선교사의 마음에 선교가 없는 선교사의 죄악을 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8) 하나님의 우둔한 선교사에게 주는 교훈 (4:5-11)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네가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이러한 요나서의 주요 메시지는 우주적이며 문화를 초월하는 성격을 띤다(롬3:29).  Roger Hedlund는 “요나서는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시며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를 원하심을 우리에게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결코 그를 가둘 수 없음을 보여주며,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에게 긍휼을 베푸는 일에 자유로우심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요나서의 의의는 여호와는 은혜롭고 자비하며, 심판과 긍휼에 자유하다는 그 메세지에 있다고 하겠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자신의 좁은 인식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언약공동체 밖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는 축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준다.  구약의  요나는 선택받은 자가 축복과 유익은 갈망하지만, 그 책임은 회피하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선교를 감당하려면 편견을 극복하고 기존의 이해관계와 자기중심적인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요나서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3. 포로시대 선지서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구약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성경책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사는 일찍이 성경학자들에 의하여 신구약 성경 전체를 꿰뚫는 시야를 제공한다.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포로기는 구약학자 W. VanGemeren의 주장대로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성전의 황폐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고 약속의 땅으로부터 백성들이 분리되는 시대인 동시에, 이 기간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위한 하나의 정화(Purification)와 회복(Restoration)의 시기였다. 포로기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경건한 자들에게 일체감을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선교활동을 계속하였음을 볼 수 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위기 상황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을 전달하고 그 포로시대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선포하였다. 에스겔과 다니엘은 실제로 고향을 떠나서 먼 이국 땅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방나라의 심장부에서 담대히 증거하였다.
  
먼저 다니엘은 이방나라의 세속적인 문화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인격적인 말씀으로 그들에게 조금도 굴함이 없이, 오히려 그의 동시대인들보다 단연 뛰어난 사역자로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실제적으로 그의 삶과 사역에서 선포하였다. 이방나라의 왕권앞에서 하늘의 하나님만이 우주의 주권을 가지신 왕이심을 증거하여, 이교도인 왕이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오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단2:47; 3:28-29)라고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다. 다니엘이 받은 메시지는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인간왕국은 덧없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수단일 뿐임을 나타내었으며, 오늘의 모든 하나님의 일꾼들은 다니엘의 경건한 소망, 곧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하나님 나라의 확립을 바라보아야 함을 제시한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들을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2:44). 이렇게 선지자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약 이십 년 전에 망명하여 바벨론이 몰락할 때까지 왕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증언하고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였으며 하나님의 왕국이 승리를 거두며 전진하는 것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  
  
이스라엘의 포로기에 활동한 선지자 에스겔은 구속사의 옛 시대와 새 시대에 사이에 서서 변화된 영광스러운 시대를 예고한 하나님의 대언자였다. 에스겔은 이방나라에서 아무 소망없는 자로서 지낼 뻔하였으나 그발강 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포로기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말씀사역을 힘있게 봉사했다. 에스겔은 절망적이라 할 수 있는 포로상태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환상을 보았다. 모세(출33:18; 34:29-35)나 이사야(사6:1-5)처럼, 역사상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위기의 현실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환상을 바라봄으로 흔들림이 없는 사역을 감당하였듯이 에스겔도 역사의 현장에서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영광된 보좌를 바라보고 담대히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역사의 곤혹스러운 시기에 이방나라에서 하나님의 선교적 관심을 대변하고 있다. 곧, 여호와 하나님은 성실하시므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며 그들을 축복하고 보호하는 위대하신 왕으로 열방에 전파되심을 증언한다.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36:23). “이와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겔38:23). 이처럼 에스겔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포로됨과 귀환의 약속 성취를 통한 나타난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통해서 주변 열방들에게 여호와의 영광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의 포로기에 이방나라의 심장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선지자들은 오늘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사역자들에게 훌륭한 모범과 확실한 도전으로 충분히 다가오리라 믿는다.

 4. 포로후기시대 선지서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구약역사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잊혀진 부분이 이스라엘이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 갔다가 돌아온 후에 관한 내용인데, 이것은 우리의 성경연구에 대한 무지와 구약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부족에서 온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포로 후에 일어난 사실에 대해서 선지자들에 의해서 분명히 기록되어 나타난다. 특히 여기서는 마지막 시대에 되어질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한 구체적인 선교적 메시지가 충만하다. 포로기 이후의 선지자들은 포로전기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는 새 시대를 열어갔다. 이스라엘에게 포로기는 정화의 과정으로서, 그 동안에 하나님은 부지런히 그를 찾으며 의와 정의와 사랑을 추구하는 모든 자들로 새 공동체를 구성케 하였다.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 나라의 실존의 모체로서 교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1:2)면서 자신들의 물질적 상태에만 몰두하고 그들의 집을 짓고 확장하는 일에만 분주하여 성전은 아직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 학개는 그들에게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paneled houses)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학1:4)라고 지적하면서, 새 공동체가 믿음에 담대하여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고 오직 여호와께 충성할 것을 촉구하였다.  선교는 교회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한다고 볼 때, 오늘 우리의 교회사랑은 어떤 가를 돌아보게 한다.
  
스가랴 선지자는 구약의 계시록이라 할 만큼 많은 묵시를 전파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로서 시온의 영광스러움을 전파했다. 스가랴는 학개 선지자와 함께 성전의 완공과 이스라엘의 영적 생활의 회복에 관심을 가지고 사역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의 축복을 경험하는 데 풍성할 뿐만 아니라 열국 백성가운데서 경건한 자들을 일으키실 것을 예언한다(슥8:22-23; 슥14:16-21).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슥8:22-23).
  
그리고 스가랴는 자신의 시대에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가시적인 진행의 역사가 비록 더디게 보일 지라도 회복은 분명히 이루어 질 것임을 증거하고, 보증으로 성령은 하나님의 전체 계획이 실행되기까지 쉬지 않고 역사할 것을 전파했다(슥4:6-7; 6:8).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슥4:6-7).
  
또한 스가랴는 우리가 전할 복음의 전부가 되시는 메시야의 오심에 대해서 그리고 땅끝까지 통치하심에 대해서 분명한 메시지를 선포한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 . 그가 이방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from sea to sea, and from the River to the ends of earth)”(슥9:9-10).
  
말라기 선지자는 긴장의 시기에서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서 받은 메시지가 온전히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고, 여전히 그들에게 혼합주의적인 삶으로 비참한 지경에 놓여있을 때, 말라기는 “인간의 실패와 하나님의 약속”을 제시하였다. 영적으로 근시안적인 삶으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에게 여전히 하나님은 영원하신 아버지와 진정한 왕이 되심을 증거한다. 아울러 여호와는 하늘과 땅의 모든 군대를 통솔하는 거룩한 왕으로 온 세계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알게 되는 선교적 조망을 우리에게 열어준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1:11).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 모든 땅에 주의 복음을 힘써 전하여야 하리라!”                

VII. 결론

주님이 주신 선교사명은 신약성경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에서부터 나타난다.  구약의 선교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구약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이야말로 선교학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혼탁한 현대신학의 흐름속에서 성경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선교신학을 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구약성경이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제대로 사용되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경륜과 선교적인 메시지가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구약 성경의 가슴과도 같은 모세오경에 나타난 아브라함언약과 모세언약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그리고 구약의 역사서와 시편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그리고 이사야와 요나 선지자를 중심으로 살펴본 선지서에 나타난 선교메시지를 통하여,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에게 주시는 선교적인 메시지로 이루어진 계시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세계선교의 축복의 통로가 되며, 모세언약을 통해 세계를 복음화하는 제사장나라로 부르셨음을 보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어서, 포로기 그리고 포로이후시대로 이어지면서 메시야를 바라보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교적인 메시지는  오늘도 신약성도들에게 강하게 메아리쳐 들린다.  그런 점에서 구약성경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선교사로서 정체성을 분명하게 제시하면서, 또한 성경적인 선교 사역을 보여준다.  구약성경은 온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죄로 인해 사망의 고통에 있는 인류를 구원코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선교적 메시지로 가득 넘쳐 나고 있다.

김성욱 교수 (총신대학교,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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