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기독교회관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오해와 이해'란 주제로 2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김은수 교수(전주대 선교신학대학원장/선교학)와 장윤재 교수(NCCK 신앙과 직제위원, 이화여대 기독교학부)가 각각 "에큐메니칼 선교와 로잔운동에 나타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사회 · 윤리적 조명 - 한국교회가 해야 할 과제를 중심으로"란 주제로 발표했다. 다음은 김은수 교수의 발표 전문.

kes.jpg1. 시작하는 말

현대선교의 흐름은 개신교 영역에서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에서 시작되어 국제선교협의회(IMC)와 세계교회협의회(WCC)로 발전되었고, 이 둘이 합쳐져서 오늘날 WCC 안의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를 중심으로 하는 에큐메니칼 선교다. 다른 하나는 세계 복음화 로잔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복음주의 선교운동이다. 로잔운동이라고 하는 이 선교는 세계교회협의회가 해석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비판한다. 그러나 이들도 하나님 중심의 선교를 지향하고 있어서 에큐메니칼 신학에서 해석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해석이 후켄다이크의 현재적 종말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며, 구속사적인 관점의 하나님의 선교에 관한 해석은 대체로 수용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신학적 흐름은 처음 하나님의 선교를 제시한 하르텐슈타인의 신학은 복음주의에서 강조하는 구속사적일 뿐 아니라 동시에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중시하는 종말론적임을 재발견한다면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신학적 접근의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실제 1960~70년대 양극화로 대변되는 두 흐름은 복음주의가 하나님의 선교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극복되고 있으며 오늘날 선교에서 ‘사회적 책임’은 전도와 함께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로잔운동에서 논의되어온 ‘사회적 책임’에 내용을 먼저 정리하고, 세계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선교적 공동의 의무를 실천하기 위한 신학적 차이와 전망을 간략히 살려볼 것이다.

2. 에큐메니칼 선교에 나타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

1) 1928년 예루살렘 국제선교협의회-선교과제로서 ‘사회적 책임’의 인식

1928년 3월 24일에서 4월 8일까지 부활절 기간에 예루살렘의 감람산에서 개최된 IMC총회는 실제적인 실무를 다루는 정기적인 대회로서 에딘버러 대회와는 달리 더 이상 개별적 선교회의 대표들이 아닌 국가적인 선교협의회나 교회협의회의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선교대회의 배경과 상황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에딘버러와 예루살렘사이에는 세계 제1차 대전(1914-18)과 러시아혁명(1917)이 있었고, 에딘버러에서의 승리를 확신하는 선교적 낙관주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서구교회가 비기독교 세계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었고 도리어 서구 기독교인들이 서구문명의 폐허 속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여 내느냐가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 대회는 세속사회에 대한 선교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은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다. 즉 세속주의(Secularism)가 선교적 과제로 인식되었고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무가 강조되었다. 즉 그리스도가 보여준 제사장적 직무인 봉사와 섬김과 희생이 그리스도인들의 주요 선교적 과제로 고백되었다. 이제 선교의 목표는 더 이상 개인의 영혼구령에만 머무를 수 없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예비적 실현으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선교사는 이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종이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많은 복음주의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대회는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사회적 관심은 이제 선교의 신학적 이해에서 한 보충적인 요소가 아니라 복음 그 자체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선교부의 사회선교적 차원 즉, 보건, 교육, 나눔의 사회복지는 단지 도움을 준다는 의미에서의 선교의 한 영역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될 선교 그 자체였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영적인 영역에서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반에 걸친 전인적 삶의 주님으로 고백되었다. 이러한 고백에 기초하여 사회복음(Social Gospel)은 결코 값싼 은혜로 선포되어서는 안 될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참된 결과이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되었다.

복음의 사회적 차원에 대한 인식은 그 당시 한국교회에 적어도 두 가지의 영역에서 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나는 예루살렘 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신흥우, 김활란, 정인과, 양주삼은 산업사회에서의 교회 선교를 촉진하게 되었고, 그해에 장로교 및 감리교의 총회가 각각 농촌부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 여파로 1929년 4월에 사흘간 성황리에 개최된 조선 예수교 연합공의회 대회의 제1분과에서는 ‘경제적 파산’을 당하고 있는 당시의 조선이 지적되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농촌사업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다루어 졌다. 또한 이 논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농촌부가 공의회에 1930년 상설되었다. 이것은 국제선교협의회가 세계적인 경제파탄으로 인해 제3세계의 농촌이 특별히 피폐해지고 있는 사실을 주시하면서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예루살렘대회의 한 영향으로 평가된다.

다른 하나는 한국적 신앙의 적극적 표현을 다짐한 신흥우의 ‘적극신앙단’을 비롯한 토착화의 시도이다. 신흥우는 1926년 YMCA 총무직에 있으면서 기독교 연구회라는 반 선교사적이고 반 보수적인 기치를 든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그가 1928년 예루살렘 대회를 참석하고 돌아온 뒤 더욱 구체화되었다. 즉 예루살렘에서 논의된 토착화를 한국교회와 연결시키기 위해 1932년 6월 장로교(8명) 및 감리교(10명)의 동지들과 함께 적극신앙단을 결성하고 5개의 신앙선언과 21개의 실천강령을 채택하였다. 적극신앙단은 1935년경 신흥우 자신의 과오 등으로 한국교계로부터 단죄를 받고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나 기독교 신앙을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상황에 토착화하려는 적극적인 하나의 시도로서 평가받고 있다.

선교사역과 관련하여 사회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를 하게 된 예루살렘회의는 인종차별주의와 산업화 등으로 인해 그 당시 세계 각처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자들의 문제들을 선교적 과제로 인식함으로서 선교의 통전적 이해를 갖게 되었다. 사회문제의 여러 분야 가운데 협의회는 특별히 인종간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이에 대한 다음의 성명서는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인종이나 피부색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어떠한 차별이나 이기적인 착취, 그리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어떠한 억압행위도 예수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 당시 세계의 곳곳에 인종차별이 상존하고 있었던 현실에서 교회와 협의회 앞에 이 문제를 선교적 과제로 당당히 제기한 공로는 다른 누구보다도 당시 총무였던 올담(J. H. Oldham)의 덕택이었다. 그는 인종차별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아프리카 식민 국가들과 관련하여 당면한 중점적인 선교적 과제로서 인종상의 관계를 검토할 것을 제안하였다.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 창립회의에서 그는 기독교적 가르침 안에서 인종상의 관계에 대한 특별연구를 해줄 것을 협의회로부터 위임받았고, 1934년에는 1937년에 개최되는 ‘교회, 사회와 국가에 대한 옥스퍼드 회의’를 위한 연구의장직에 선출되었다. 올담은 그의 저서에서 인종차별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다른 여러 현상들과 관련된 것으로서 결코 순수한 형태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인종간의 긴장과 원한은 이들 관계를 악화시키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의 종합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서구의 우월감과 무비판적인 식민주의적 음모가 깔려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기여로 예루살렘대회는 도처에 있는 모든 기독교 세력이 힘을 모아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과 인종차별을 근절하고 인권을 지키며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기회균등을 다함께 누릴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국제선교협의회가 해 줄 것을 촉구하는 문서를 채택하였다.

국제선교협의회는 창립초기부터 산업문제와 관련된 기독교 선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1927년 3월에는 국제선교협의회의 새로운 총무로 W. Paton이 선출되면서 예루살렘대회에서 산업문제를 다루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는 아프리카의 현실에 기초하여 ‘기독교와 산업주의의 성장(Christianity and the Growth of Industrialism)’이라는 소책자(brochure)를 출간하였다. 그의 소책자에는 국회의원이었던 C. P. Trevelyan과 편지를 교환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Trevelyan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혼돈속에서 억압받는 다수를 만족시킬만한 경제적 강령을 찾는데 종교가 헌신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다음시대에 공허해질 것은 명백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예수가 사회주의자였다는 데에 한치의 의심도 없다.” 이에 대해 Paton은 답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가 경제적 상황과 관련된 용어에서 말하는 사회주의자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의 원리는 사회주의가 제공하는 일종의 사회적 표현을 요청하고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었다”고 밝히고, 이와 관련된 기독교의 적절한 이해가 산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느낌을 피력하였다. 이러한 기여를 바탕으로 산업문제에 대해 예루살렘회의는 성명서를 작성하였고 산업문제의 유형을 다음의 4가지로 나누어 그들의 입장을 밝혔다. 1) 미개발지역에 있어서 자본투자: 공공개발대출은 채권국과 채무국 사이의 위험한 결합을 피하고 이를 위한 방패막이 있어야 한다. 인적인 투자는 투자를 받는 나라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하고 투자하는 나라의 특권을 위해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 경제적 자원의 개발은 공적인 다수를 위해 수행되어야 한다. 2) 미개발지역의 경제적 자원개발: 경제적 개발은 사회적 환경과 사람들의 사회적 행복을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 지역주민의 동의 없이 외국인에게 땅을 매각하는 일은 비난받아야 한다. 국가의 수입은 토착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교육과 건강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3)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보호: 강제적 노동은 즉각적으로 중지되어야 한다. 모든 노동계약에는 노동시간, 임금, 주거, 음식, 의복, 병원 및 위생시설을 만족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노동환경은 국제 노동기구의 원칙에 따라 입법되어야 한다. 사용자와 노동자를 위한 협의회와 기구조직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교육, 공중보건 및 주거와 같은 사회적 서비스의 개발과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조성에 힘써야 한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4) 경제적 팽창으로 인한 국가 간의 마찰해소: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경쟁 및 자원개발을 둘러싼 제국주의의 경쟁과 토착민과의 파괴적인 경쟁은 비난받아야 하며, 이를 조절하기 위한 국제기구의 활동은 지원되어야 한다.

2) ‘사회적 책임’ 신학의 기초-‘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20세기 후반이후 선교신학의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로서 하나님의 선교가 지난 반세기를 지배하여 왔다. 한국에서는 1969년 1월 27일 부터 29일까지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제2차 총회가 “오늘의 한국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선교”라는 전체적 주제 하에서 진행됨으로써 공교회의 협의체에 의해 정식으로 이 개념이 도입되었다.그러나 한국 교회의 ‘Missio Dei’의 이해는 중대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1976년 한국신학연구소의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대표적 신학자, 소위 ‘Missio Dei’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신학자와 비판적인 신학자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Missio Dei를 찬성하는 심일섭이 “하나님의 선교신학과 한국의 교회 문제”를, 그리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김명혁이 “하나님의 선교 이후의 선교신학의 동향”을 각각 발표하였다. 여기서 심일섭은 구체적이고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성찰을 통하는 Missio Dei를 소개하면서 매우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선교 즉, Missio Dei란 말이 세계교회가 공적으로 처음 사용한 때가 1952 윌링엔 협의회(Willingen Conference)부터인 것과 이때 특히 후켄다이크가 이 ‘하나님의 선교’를 강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김명혁도 그 동안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글을 발표해 온 신학자였으나 그 역시 “1952년 윌링엔에서 주장되었던 ‘Missio Dei’개념”이라고 단정 짓는다. 심일섭은 물론 김명혁 역시 이 발제에서 Missio Dei에 대한 건설적인 제안 가령, 김명혁은 “구속 중심”(Missio Christi)인 동시에 창조질서의 회복을 지향하는 Missio Dei의 선교 신학적 정립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면서도 이들은 Missio Dei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 Missio Dei라는 개념이 빌링엔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된 것으로 단정하고 있지만 빌링엔 대회 기간 중 어디에서건 단 한번이라도 Missio Dei란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이 있단 말인가? 빌링엔 대회의 공식보고서 '십자가 아래에서의 선교'에서 어디 단 한 번이라도 Missio Dei가 기록된 적이 있는가? Missio Dei라는 용어는  빌링엔 대회 기간 중이나 공식보고서 어디에도 사용된 적이 결코 없다. 물론 한국 상황에서 자료 수집의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지금까지 이와 같이 중대한 신학적 개념의 출처를 명확히 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위에 언급된 두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 용어를 사용하여온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Missio Dei의 기원을 정확히 밝히는 작업이 필요한 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학문이란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확한 기원이 밝혀지면 그것이 Missio Dei 개념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는 최우선의 일차적 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Missio Dei의 기원이 흔히 한국에 알려진 학자와 대회가 전부라면 그것은 단지 해석을 위한 참고 내지는 이차적 자료가 될 뿐인 것이다.

Missio Dei의 정확한 기원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감독 하르텐슈타인(Karl Hartenstein)이다. 그는 함부르크대학교의 발터 프라이탁(Walter Freytag) 교수가 편집한 '어제와 오늘 사이에 있는 선교'(Mission zwischen Gestern und Morgen)라는 빌링엔 대회에 관한 독일어 보고서 가운데 ‘신학적 각성’(Theologische Besinnung)이라는 글을 쓰면서 Missio Dei(특별히 라틴어 형태)를 처음 채택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글을 쓴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은 1952년 10월 1일 안타깝게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라틴어 형태의 이 용어에 대한 정확한 출처(source)는 하르텐슈타인 만이 밝혀 줄 수 있으나 그의 가까운 친구들은 물론 암호로 조차도 그가 그전에 사용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르텐슈타인은 ‘Missio Dei’를 말한 뒤 곧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에 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서 많은 차이를 가져왔다. ‘Missio Dei’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해석으로 이 개념을 널리 알리는데 공헌한 피체돔(Georg F.Vicedom)은 그의 저서 'Mission Dei'에서 하르텐슈타인의 ‘Missio Dei’를 구속사적 의미에서 해석하였다. “선교(Missio)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사이에 있는 높임 받은 주님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공동체의 회중 속에서 완전하신 분의 선포와 그의 나라의 알림을 통하여 구원사(die Heilsgeschichte)를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하는 과제를 가졌을 뿐이다.” 여기서 교회의 비중은 특별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높임 받은 주님은 세계의 주인일 뿐 아니라 교회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회는 땅위의 그리스도의 통치의 중심이자 세계역사의 중심”이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고 성령의 수행자(Tr?gerin)”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속한다는 하르텐슈타인의 구속사적 신학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하르텐슈타인에게 있어서 교회는 폐쇄된 성곽인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언제나 떠나야 하는 일시적인 장막으로서의 교회의 성격과 성육신의 연장으로서가 아니라 희생적인 사랑으로 세계와 연대하는 교회의 성격이 강하다.

하르텐슈타인 이후 ‘Missio Dei’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중심 되는 신학적 술어가 되었다. 이 신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 사람은 네덜란드의 신학자 후켄다이크(Jan C. Hoekendijk)이다. 그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전도부 초대 간사 및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국제선교협의회(IMC)의 협력위원회 간사(1949-1952년)로 일하면서 1951년 대륙선교협의회에서의 강연을 통해 지금까지의 교회 중심적인 선교를 맹렬히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교회 중심적인 모든 선교이론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어야 할 이 세계에 복음이 증거 되어야만 하고, 이때 하나님 나라와 이 세계와의 충돌은 사도직 안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성과 복음은 근본적으로 함께 속해 있어서 사도직 안에서 복음은 편만하게 된다(롬 15:19).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세상과 싸우시는 하나님은 이 사도적 사명의 근거가 되며, 이 사도직 안에서 교회는 비로소 선교적이 된다. 그가 말하는 사도직(Apostolate)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서 구체적으로 이해된다. 즉 교회 스스로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활동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살아 있는 손잡이로서 선교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기능 즉, ‘하나님 - 세계 - 교회’의 구조를 갖게 된다.

후켄다이크의 교회 중심적인 선교관에 대한 비판의 절정은 1963년 멕시코 세계선교와 복음화대회(CWME)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 내용은 위임한 교회의 선교적 구조에 대한 연구 보고서인 '구조 원리로서의 선교'와 웁살라 세계교회협의회의 선교분과(제2분과) 준비서인 '타자를 위한 교회'에서 보인다. 그는 역사를 선교의 결정적인 내용으로서 이해하며 이스라엘이 메시야에게 기대한 성서적 “샬롬”(schalom)을 이 땅에 수립하는데 선교의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샬롬은 개인적 구원의 이상의 것으로서 평화, 공동체, 정의, 구원, 용서, 기쁨 등이다(시편 85편). 그에 의하면 이 샬롬은 사회적 사건이며 인간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더불어 일어나는 사건이다. 즉 ‘평화를 만드는 것’(Schalomatisieren)이란 생명에 관계되며 그 안에 종사하고 있는 때 묻은 손들을 통해 세 가지 지평인 ‘생명과 정의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주위에 세우는 것을 말한다. 이 평화를 만들어 감으로써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이를 위해 교회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역사 이해는 다분히 현재적이며, 하나님 나라의 ‘벌써’(alredy)와 ‘아직 아니’(not yet)의 종말적 이해에서도 ‘벌써’에 강조점이 있다.

후켄다이크는 하르텐슈타인이 말한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사이에 서 있는 현재 중간시대의 결정적인 예표로서의 선교를 현재적 종말론적 시각에서 더욱 전개시켜 나갔다. 하르텐슈타인은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 통치의 ‘벌써’(schon)와 ‘아직 아니’(noch nicht)의 철저한 긴장 속에 서려고 했으나 그는 아직 숨어있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강조함으로서 ‘아직 아니’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비해 후켄다이크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숨어 계시는 활동과 실제 이 땅위에 펼쳐지고 있는 세계 역사의 진행과정을 적극적인 상관관계로 파악함으로써 ‘Missio Dei’를 철저히 종말론적 시각에서 이해하고 있다. 여기에는 피체돔처럼 아들의 파송이나 교회의 파송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파송이 강조되므로 세계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출애굽의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분리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관점을 통해 격변하는 세계와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강화되었고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에서 폭 넓은 선교의 영역과 과제를 획득할 수 있었으며, 그의 선교신학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세계교회협의회는 사회참여를 활발히 전개하였다.

3) 1968년 웁살라 세계교회협의회 - ‘사회적 책임’ 논쟁의 정점

웁살라총회가 열릴 당시 세계상황은 혁명적인 격변기로서 대회가 직면한 강력한 도전은 사회정의와 인간성회복의 필요성이었다. 그리하여 웁살라총회는 제2분과위원회에서 “선교의 갱신”(Renewal in Mission)을 주제로 다루면서 “인간화”(humanization)를 선교의 목표로 삼았다. 인간화를 선교의 목표로 주장함으로서 선교의 목표를 전통적으로 ‘복음화’라고 이해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고, 이것은 한국교회에서도 소위 ‘인간화’냐 ‘복음화’냐 라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선교의 목표를 인간화로 내걸었던 웁살라총회의 제2분과는 그 준비과정에서 부터 많은 도전과 비판에 직면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와 국제선교협의회가 1961년 인도의 뉴델리총회에서 통합되어 선교(IMC)와 교회(WCC)가 일치를 이룸으로서 선교는 교회의 존재이유이며 근거가 되었다. 그리하여 세계교회협의회는 교회전체로서의 선교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교회의 선교적 구조’(Die missionarische Struktur der Gemeinde)라는 연구 작업을 의뢰하였고 그 결과는 멕시코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에서 채택되었다. 이 연구서는 그 후 함부르크대학교의 선교학 교수였던 마굴(H. J. Margull)에 의해 편집되어 '구조 원리로서의 선교'(Mission als Strukturprinzip)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선교적 교회구조를 위한 이러한 노력은 서유럽교회와 북미교회에서 각각 계속 되어졌는데 서유럽에서는 '타자를 위한 교회'(Die Kirche f?r andere)라는 이름으로, 북미에서는 '세계를 위한 교회'(Die Kirche f?r die Welt)라는 이름으로 작업이 이루어 졌다. 그 두개의 연구결과는 곧 하나의 단행본으로 엮어져 최종적으로 '타자를 위한 교회'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어 웁살라대회의 선교분과의 신학적 근거로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타자를 위한 교회’라는 명제는 본회퍼(D. Bonhoeffer)의 교회론적 형식에서 비롯된다. 그에 의하면 “교회가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만이 진정한 교회이다”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1944년 8월 감옥에서 ‘작업초안’(Entwurf einer Arbeit)을 스케치하였는데 기독교의 존립근거를 조사하면서 얻었던 결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교회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모든 교회의 재산을 궁핍한 자에게 나누어주어야만(muß) 한다. 그리고 인간공동체 삶의 세계적 과제에 대해서 교회는 지배해서가 아니라 돕고 봉사하면서 참여하여야만(muß) 한다.” 그의 이러한 신학적 작업의 초안이 내포하는 뜻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활동(Gotteshandeln in unserer heutigen Welt)을 인식하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본회퍼의 이 같은 주장을 '타자를 위한 교회'에서는 샬롬(Schalom)이라는 성서적 개념으로 수용하였고, 이를 하나님의 선교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았다. 이 성서적 샬롬에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인간 삶의 모든 전망들이 포함된다. 그것은 정의, 진리, 공동체 그리고 평안, 화평 등등으로 불려진다. 가령 미가에서는 장차 나타날 메시야를 ‘평강’(Schalom)이 될 사람이라고 했으며(미가 5:5), 바울은 메시야를 ‘화평’(Schalom)이라고 부르며(엡2:14), 복음을 ‘평안’(Schalom)의 복음이라고 하였다(엡6:15). 메시야적 목표로서의 이 샬롬은 헬라어의 평화(eirene)가 내포하고 있는 마음속의 평안으로만 결코 해석될 수 없고 사회적인 사건으로 그리고 인간사이의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샬롬은 특정한 환경 속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Gottes Gabe)로서 발견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계획의 초점(Brennpunkt)은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 발견된다. 즉 하나님의 일차적인 관계는 세계이고 교회는 세계의 부분으로서 정의되어 진다. 바로 이와 관련하여 이 책은 전통적인 명제인 “하나님(Gott) - 교회(Kirche) - 세계(Welt)”의 순서가 “하나님 - 세계 - 교회”로 뒤바뀌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이해에 기초하여 웁살라총회 제2분과의 ‘선교의 갱신’이란 제목의 초안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교의 목표를 인간화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화를 선교의 목표(die Humanisierung als das Ziel der Mission)로서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 역사적 시점에서 메시야적 목표의 의미를 우리는 중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근본적인 질문은 진정한 인간(wahren Menschen)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선교적 공동체의 결정적인 관심은 선교의 목표로서 그리스도의 인간성(die Menschlichkeit Christi)을 드러내는데 있어야만 한다.”

논란이 거듭된 이 초안은 본회의 제1소분과에서 ‘선교적 위임’이라는 주제아래 새로운 초안이 마련되었다. 보다 완곡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인간성은 단지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다른 신앙을 가진 자나 종교가 없는 자들과의 만남은 우리를 불가피하게 대화(Dialog)로 이끈다... 그러나 대화는 선포가 아니다. 대화는 전체적 증언을 보충한다”

결론적으로 웁살라총회의 제2분과에서 다루어진 ‘선교의 갱신’에 대한 최종성명서의 가장 큰 약점은 선교에 관한 서로 다른 서술들이 긴장관계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한편으로는 선교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대한 복음을 아직도 듣지 못한 수억의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영원불변한 사명이라고 정의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교회자체가 복음을 들어야하는 선교의 영역이라고 말함으로써 선교란 전적으로 타자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으로 정의한 전자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말았다. 결국 테일러가 개인의 회심에 기초한 복음과 사회적 책임의 복음이 서로 대립된 채 두 개의 복음을 웁살라대회가 말하고 있다는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이것을 채택한 이유는, 그가 개인 회심에 기초한 전통적인 선교신학과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의와 평화 등의 문제까지도 무시하지 않는 사회 책임적인 선교신학을 서로 연결 지으려는 노력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를 위해 그는 웁살라를 비판하는 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들이 요구하는 전통적인 개인회심의 선교에 관한 문구들을 성명서에 삽입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웁살라총회의 전체적인 신학적 기조와는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어설프게 끼워 넣게 된 형태가 되어 도리어 최종성명서의 신학적 일관성을 잃고 말았다. 또 이것은 웁살라를 비판하는 자들의 복음화에 대한 요구를 제대로 수용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인간화에 대한 주장과 조화를 이루어 선교를 통전적으로 이해한 것도 아닌 애매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4) 1973년 방콕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 - ‘사회적 책임’의 선교 신학적 전개

1972년 12월 27일에서 1973년 1월 12일까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열린 이 대회는 선교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구원(Salvation)을 주제로 개최되면서 세계교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회의 공식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은 한국에서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한편으로 생물학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삶과 함께 영적이고 인격적인 삶이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지 어느 한편만을 말하는 것은 이미 그 안에 오류가 내포되어 있음을 밝혔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비크(A.Sovik)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완전히 정신적이며 내적이고 피안의 세계의 일로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은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부른 유명한 정의를 초래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종교가 분명히 위안은 되지만 좀 더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투쟁에서 효과적인 힘이 될 수 없다. 또 다른 경향, 즉 정신적이고 내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기독교의 사회, 윤리, 정치적인 국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교회를 정당 정도의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으며 정치 제도에 대하여 신적인 권위와 지지를 주장하게 되어 정치제도를 절대화하거나 우상화할 가능성이 있다.”

같은 의미에서 방콕대회의 제2분과는 다음과 같이 구원을 정의한다.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셨고 그 안에 우리가 참여하는 구원은 분열된 이 세계 속에서 통전적 삶을 우리에게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을 삶의 갱신과 신성의 충만함 속에서 참 인간성의 확장으로서 이해한다.(골 2:9) 그것은 영혼과 육체, 개인과 사회, 인간과 탄식하는 피조물의 구원을 말한다.(롬 8:19)” 따라서 이와 같은 통전적 시각에서 방콕대회의 주제였던 “오늘의 구원”은 “정체성, 인간화 그리고 해방”이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정체성(identity)으로서의 구원

구원된다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라고 소비크는 말한다. 그에 의하면 문화와 단절된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자기 정체성의 문제는 문화적인 정체성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방콕대회의 제1분과에서는 구원의 주제로서 “문화와 정체성”이라는 제목아래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정체성은 기독교적인 정체성 안에서 수용해야만 할 신적인 선물이고 인간적 획득물이다... 그리스도의 인간되심은 한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일어났다. 즉 유대인으로 나셨고 한 특정한 종족의 일원이셨다. 그럼에도 예수가 오시고 세상을 구원하신 일은 우주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기독교 공동체의 모든 겟토화는 하나의 반 문화적 시도로 이해된다. 더구나 기독교 신앙은 각자의 토착적 문화 안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물론 그리스도는 모든 문화를 포괄하며 변혁시키기 때문에 거기에는 언제나 긴장이 상존 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문화적 갈등과 변화의 문제로서 종교혼합(syncretism)의 부작용을 주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복음의 사신은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새로운 대답이 요구된다. 한 가지 구체적인 대답의 시도로서 방콕에서는 상황화된 흑인신학을 들고 있다.

과거 19세기의 기독교 선교는 서구적 문명화와, 그리고 구원은 서구적 문화와 자주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방콕대회는 다음과 같이 추천한다.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는 선교회들의 선교적 참여가 어떤 척도와 방법으로 문화적 제국주의를 반영하고 있거나 혹은 교회들이 그들의 문화와 구분하지 않고 그 연결성 속에서 강요하고 있는지를 가능한 비판적으로 평가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 교회와 문화사이의 관계를 명쾌하게 구분 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의 정체성 확보와 문화적 겟토화를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물론 우리들의 구원과 기독교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졌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은 정신, 영혼 그리고 세상저편의 영역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전체 삶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의 문화와도 단절됨이 없이 그 정체성을 확보 할 수 있어야 한다.

(2) 인간화(humanness)로서의 구원

성서적 이해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전권(Vollmacht)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산업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삶의 질의 향상이 구원으로 표시되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구원은 흔히 현대 산업국가의 세속화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그러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방콕대회의 준비를 위한 서구의 많은 보고서 및 논문들은 사회문제의 해결과 구원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의 구원은 인간행위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인간이 완전히 제외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고린도전서 3:9)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와 봉사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도록 부르신다. 그러므로 세계의 복음화와 인간화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속하며 보충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기독교 신앙의 이 두 가지 차원의 분리를 브라텐(C. E. Braaten)은 서구교회가 자주 저질러온 “이원론적인 시각”이라고 비판하였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동시에 새로운 인간성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새 인간(Neu Mensch)이 되셨다. 왜냐하면 “아담”은 히브리적 사고에서 개인으로서의 인간뿐 아니라 전체 인류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비크는 인간임(being human)의 문제를 인간됨(becoming human)의 문제로 보고 있다: “인간됨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화해, 용서받음 그리고 새로 태어남을 통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표시인 화해는 동시에 이웃과의 화해, 그 이웃과 형제로서 사는 능력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요한일서 4:29)

이러한 맥락에서 방콕대회는 선교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우리의 선교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으로서, 믿음과 그리스도의 인식 안에서 자라도록 돕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진정한 인간성(Humanitaet)을 보이고 나누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의 정체성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사명은 참된 의와 거룩함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새사람을 입는 것(에베소서 4:24)으로 이해된다.

(3) 해방(liberation)으로서의 구원

방콕대회의 제2분과에서는 “구원과 사회정의”라는 주제로 구원을 인간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개인적 비참함에서 해방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즉 포괄적인 하나님의 해방의 역사 속에서 경제적 정의, 정치적 자유 그리고 문화적 갱신을 위한 투쟁으로 이해하였다. 사회정의와 관련짓는 이 토론에서는 특정한 차원의 역사적 우선성에 강조를 두고 있어서 인간의 영적인 차원이 경시되고 있다.

한편 오늘날 우리의 선교와 복음화의 노력이 개인구원에만 집중할 때 이 또한 그 개인과 관련된 사회적 불의의 원인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선교의 신학과 방법도 육체와 영혼, 개인과 사회로 잘못된 이분화의 개념의 영향을 받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방콕회의에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인도의 토마스(M. M. Thomas)목사는 그의 주제 강연에서 국민들의 물질적 풍요에 대한 수평적인 기대가 하나님을 향한 영적이고 수직적인 차원의 시각과 분리되지 않는 전체적인 차원에서 구원을 파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몰트만은 “방콕에서의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의 전체적인 사고가 전통적으로 육체적 구원에서 영적인 구원, 공동체적인 구원에서 개인적 구원을 분리해온 유럽인들에게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평가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제2분과 보고서는 말하기를 “우리는 자유, 정의 그리고 은총에 대한 복음의 성서적 차원을 새로이 발견해야만 한다. 복음은 항상 전체성 안에서 인간을 향해 말한다. 그것은 억압의 세력에 맞서서 해방하는 힘이고 힘없는 자를 강하게 한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약함은 죽음과 고난을 이기는 그의 해방하는 힘과 밀접히 연결되어져야만 있다.”

한편 협의회는 치유하고 해방하는 모델로서 유효한 모든 세상으로부터의 일련의 행동보고서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것은 신앙의 이름으로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의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할 위험이 있다.

3. 로잔운동에 나타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

1) 1974년 로잔 세계복음화 대회

로잔대회의 공식명칭은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이며, 1974년 7월 16일에서 25일까지 148개국 2,473명의 개인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스위스의 로잔에서 개최되었다. 로잔대회는 방콕CWME대회의 복음에 사회적인 성격이 포함된 구원이해에 도전하기 위한 것으로 구원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죄의 용서와 성령을 통한 거듭남이며, 따라서 영혼구원이 가장 우선되며 사회정의와 억압과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은 그 이후에 자연적으로 따라와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지에서 빌리 그래함은 로잔대회의 목적중의 하나가 방콕대회에 대한 도전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회가 진행될수록 방콕대회가 도리어 로잔대회에 큰 도전이 되어 방콕에서 강조된 복음의 사회적 성격과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 대폭 반영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 흐름은 로잔대회의 신학적 작업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영국의 존 스토트(John R. W. Stott)목사로부터 먼저 왔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대위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1966년 베를린 대회 때와는 바뀌었음을 고백하는 것에서 더욱 확실하게 나타났다. 그는 대위임을 순전히 복음화의 관점에서 배타적으로 해석하였으나, 로잔 대회 후 그의 바뀐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나는 지금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대 위임령의 결과뿐만 아니라 대 위임령 그 자체도 복음화의 책임뿐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알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그의 “복음화의 성서적 기초”라는 로잔에서의 주제 강연에서 선교는 더 이상 전도만을 의미하지 않고 세상 속으로 아들의 파송으로부터의 내용 즉, 봉사가 포함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교도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섬김의 선교”가 되어야 하며,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은 모든 교회의 선교는 복음전파와 함께 사회적 행위가 포함된 사랑의 봉사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선교이해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선교이해에 이르게 되었다: “선교는 하나님의 속성으로부터 표출되는 하나님의 활동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파송하는 하나님이며 이것은 선교를 의미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보내셨고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의 아들은 사도들과 70인과 교회를 보내셨다. 그는 또한 교회에 성령을 보내셨고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을 보내고 계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로부터 발생되며 그것은 선교의 모델이 된다.”고 결론지으며 끝으로 그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또한 너희를 보낸다”(요한복음 20:21)는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스토트가 이해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모델에 따른 교회의 참여에 있다. 이것은 에큐메니칼 선교에서 발전된 사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의 이러한 신학은 복음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파송에 근거한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또한 남미에서 온 참가자들에 의해 강하게 뒷받침되었는데 먼저 에쿠아도르에서 온 파딜랴(Rene Padilla)는 복음선포와 사회정의 사이의 우선권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만약 그들이 굶주림으로 희생되고 있는 자들의 숫자를 셀 수 없다면, 매분 그리스도 없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도 가질 수 없다”고 하였고, 따라서 그는 선교가 인간의 영혼뿐 아니라 사회의 죄된 구조의 갱신을 위한 전 피조물을 포함한다고 하였다: “복음서에 선포된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방법으로 역사를 통해 실현하시는 모든 존재의 주님이시다.”

페루에서 온 에스코바(Samuel Escobar)도 이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며 복음주의자들의 전통적인 정치적 무관심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우리는 복음증거에 있어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잘못된 교리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증언의 사회적 환경과 복음의 사회적 연관성이 잘못되었다고 염려할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이 바로 그의 사회적 환경이 강조되는 복음의 포괄성이다.” 따라서 그는 경고하기를 “삶의 매일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관점 속에서의 따름이 없는 영성은 종교적일 수는 있으나 결코 기독교는 아니다”라고 하였다.

대회가 진행 중이던 어느 날 저녁 파딜랴와 에스코바 등이 주축이 되어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따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이 모임에서 토의된 내용을 “로잔으로부터 로잔에 답함”이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들은 이 성명서에서 때때로 인간의 전체성에 대한 성서적 이해가 무시되고 비성서적인 이원론이 수용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복된 소식의 전체적 차원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샬롬의 그의 왕국이 여기 그리고 지금 전 피조물 앞에 드러나고 그의 복된 소식이 눈에 보이게 알려지도록 하기 위해서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바로 이것이 해방과 회복과 전체성과 개인, 사회, 세계 및 우주적 구원의 진정한 복된 소식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끝으로 이를 위해 이 세대 안에 그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러한 로잔대회의 흐름은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선교신학에 있어서 사회적 윤리 확립의 필요성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은 그들이 채택한 15개항의 “로잔언약”에 반영되어졌다. 결국 방콕의 에큐메니칼 선교대회를 도전하기 위해 로잔 세계복음화 대회를 개최하였으나, 도리어 방콕대회로부터 큰 도전을 받고 복음주의 선교에 있어서 복음전도와 더불어 사회적 책임과 봉사가 한층 더 강화되는 복음주의 선교대회가 되었다.

로잔언약은 모두 15개항으로 이루어진 복음주의 선교의 핵심적 내용으로서 로잔 세계 복음화 대회에서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 이 로잔언약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 동안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에서 볼 수 없었던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많은 진전이 있었으며 로잔언약 제5항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다. 대회의 핵심적 토론주제가 되었던 전도와 사회적 연관성에 대해서 로잔언약은 먼저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압박에서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등한시하며 때때로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데 대하여 참회하고,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사회 행동이 곧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 및 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히고 있다(5항). 이는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따로 보거나 사회적 책임은 개인의 변화에 자연적으로 뒤따르는 결과로서만 보아오던 그 동안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제네바 WCC의 스텝이었던 호프만(G. Hoffmann)은 그의 로잔대회에 대한 보고서에서 “방콕과 로잔대회는 진리를 공동으로 추구하고 진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1974년 8월 11일에서 18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린 WCC의 중앙위원회에서는 로잔대회를 진지하게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특별히 모든 회원교회들에게 1975년 WCC 나이로비 총회를 위한 준비로서 로잔언약을 연구하여 적절한 평가를 할 수 있도록 추천하였다. WCC의 이와 같은 적극적인 수용움직임은 로잔대회가 그 어떤 복음주의대회보다도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정치적 책임에 대한 의식이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잔대회가 사회적 참여를 위한 복음주의자들의 한 전환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로잔언약의 제5항은 바로 이러한 점을 유감없이 잘 나타내주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의 모든 압박에서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뿐 아니라 이것을 방콕대회의 주제였던 구원(salvation)과도 관련하여 사회적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즉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종류의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5항)고 결론짓는다.

2) 1980년 파타야 세계복음화 로잔위원회와 그랜드 래피드즈 협의회

멜버른CWME대회가 끝난 몇 주일 후 1980년 6월 16일에서 27일까지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The Lausanne Committee on World Evangelization: LCWE)의 후원으로 “세계복음화대회”(The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가 태국 파타야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참석자 수는 회의 참가자, 고문, 신학적 참관인, 평신도 및 내빈을 합하여 850여명이었고, 이 가운데는 일부 사회주의 국가(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동독)의 참가자들도 있었으며, 참관인으로는 로마 가톨릭,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 및 미국교회협의회(NCC)의 해외선교분과에서 파견된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파타야 대회의 주제는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듣게 할 것인가?”(How Shall They Hear?)로 정하여졌고, 이 물음은 로마서 10장 14절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그들이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파타야 대회는 지금까지 복음이 미치지 않은 17개의 구체적인 그룹에 대한 선교전략을 세우는데 집중하였다. 이 작업은 전 세계적으로 연구 분과가 조직되면서 파타야 대회 준비과정의 주요골격을 이루었고, 이를 토대로 회의는 어떻게 ‘인간집단들’(people groups)에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가 구체적으로 연구하였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20억 혹은 그 이상의 비기독교인들에 대한 영적인 굶주림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대회가 마무리될 무렵에 실제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한편으로 멜버른 대회에 참석한 복음주의자들의 집중적인 토론의 결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파타야 대회의 참석자 가운데 200여명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로 별도의 모임을 갖고 로잔위원회가 해야 할 가장 긴급한 과제로서 사회정의를 진지하게 다루어 달라는 공개편지의 요청에 대한 하나의 응답의 결과였다.

이 별도의 모임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은 파타야 대회 직전 윤리와 사회에 대한 World Evangelical Fellowship(WEF)위원회가 런던 근교 하이 레이(High Leigh)에서 열린 두 차례의 회의의 영향이었다. 첫 번째는 발전에 대하여, 두 번째는 삶의 스타일에 관한 것이었는데 여기에서 제 3세계 대표들의 강한 주장이 반영되었다. 두 번째 회의에 대해 쉐러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런던 회의의 실제적인 내용은 단순한 삶, 청지기 또는 자선을 훨씬 넘어 정확하게 가난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편애, 억압들에 대한 신적인 심판,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들과 동일시하신 방식, 그리스도를 위한 고통의 감수 그리고 정치적인 구조들의 변화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지원을 언급했다. 이러한 주제들이 복음주의 진영에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었다.”

이러한 반성은 파타야에서 별도의 모임을 갖은 이들 200명에게 이어졌고, 이들은 “지구 도처에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가 복음 선포의 큰 장애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문제를 파타야 대회는 진지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또한 공개편지는 로잔위원회가 복음주의자들이 어떻게 억압과 차별을 지지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지를 묻고 회개를 촉구하며 성서적 진리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였다. 남아프리카에서 온 한 참석자는 이 편지 속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전하여 주었다: “우리는 신앙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는 남아프리카 내외에 있는 복음주의자들이 도리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인종차별을 지원하고 있는 이 사실을 슬픔과 눈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러한 결과로 로잔복음화위원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공개편지에 서명했던 대표자들로부터 이들이 제기했던 질문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들의 요청을 검토하기 위해 회합을 가졌다. 그리하여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계를 논의하기 위한 “신학 협의회”가 계획되었고, 이 협의회는 LCWE와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의 공동 후원 아래 1982년 6월 19일부터 25일까지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드즈에서 전 세계 27개국에서 온 50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모여 위에서 제기된 기본적인 기독교적 의무들 간의 관계를 토의하였다. 이 모임은 1974년 채택된 로잔언약 가운데 제 4항(복음전도의 본질)과 제 5항(기독교적 사회적 책임)에 명시된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내용을 지지하면서 토론을 진행하였다. 이 그랜드 래피드즈 협의회의 결과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Evangelism and social Responsibility: An Evangelical Commitment)”이라는 표제로 출간되었다. 이 보고서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이…연합되는 보다 기본적인 한 방법, 즉 복음에 도달”하였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는 “복음은 뿌리이며,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그 열매들”이기 때문이며, 이 복음은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마 4:23, 막 1:14,15, 눅 4:43)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하였다.(38쪽)

그랜드 래피드즈 보고서는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장은 간략하게 예배와 감사에 대한 요구를 말하고(19쪽), 곧 이어서(제 2장) 세계 복음화에 대한 현재적 필요성과 요구를 다루고 있다(20-23쪽). 즉 1974년 로잔 세계복음화대회가 개최되었을 때 27억 이상이 복음화 되지 않았으나 8년이 지난 1982년 현재에는 도리어 그 숫자가 늘어나서 30억을 헤아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가장 긴급한 과제로서 세계 복음화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계속해서 말하기를(제 3장) 세계의 약 8억의 사람들 혹은 전 인류의 5분의 1이 절대빈곤 인구이며, 이들은 대부분 기본 생필품이 부족하여 하루에도 수천 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는 현실도 결코 외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24-27쪽).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으며 그 필요성이 절실함을 역설하였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제 4장)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그 어느 것 하나도 기독교인의 포기할 수 없는 기본적인 의무임을 밝히고 있다(28-37쪽). 그리고 이 보고서는(제 5장)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하나로 연합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서 복음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이 복음은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고 말한다.(38-46쪽) 또한 이와 관련하여 역사와 종말론(제 6장)을 취급하고 하나님 나라와의 연관성을 말하고 있다(47-54쪽). 끝으로 행동을 위한 지침을 제시하면서 보고서를 마치고 있다(제 7장).

래피드즈 신학위원회는 사회에 대한 선교적 의무를 분명하게 인식함으로서 멜버른 회의에서 강조되었던 가난한 자를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다. 보고서는 천국에서 그들이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라면(계7:16), 우리는 오늘 주린 자들을 먹여야 하지 않는가? 라고 묻고,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특히 가난한 자들에게 선포되어야만 한다(눅 4:18-19, 7:22)고 주장하였다(52,42쪽). 이에 관한 성서적 근거로서 보고서는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들과 동일화한 마태복음 25장의 심판의 날에 관한 비유를 들고 있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 환영을 받은 “양” 또는 “의인”들은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 헐벗고 병든 자들, 나그네들과 옥에 갇힌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섬겼던 자들이기 때문에 이 비유의 주요 메시지는 교회의 사회참여를 제공하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것이다(50쪽).

또한 선교의 두 가지 과제로 인식한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가장 잘 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고 본 래피드즈 신학위원회는 이 복음이 예수에 의해 가난한 자에게 우선적으로 선포(누가 6:20)되었음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이는 파타야 대회를 결론짓는 “태국선언”(Thailand- Erkl?rung)에서도 이미 언급됨으로서 예상된 것이기도 하다. 태국선언은 “굶주리고 억압받는 자들을 섬겨야 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위한 도움과 정의를 추구해야 하며”(제 3항)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들의 어려운 처지에서 동일화”(제 4항)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래피드즈 신학위원회는 모든 복음주의자들에게 “선한 일에 열심을 내도록”(딤 2:13,14)하고 “고난 속에서 용기를 갖도록(딤후 4:6-8, 계 2:25)” 권면하게 되었고, 주님의 “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르게 되었다(54쪽). 이와 같은 사회적 참여에 대한 요청은 하나님 나라를 장차 기대해야할 미래로만 이해하지 않고 현재적으로 해석함으로서 예수를 통해 획득된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차원을 세계의 각 상황 속에서 실천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4. 끝맺는 말 : 신학적 차이와 전망

에큐메니칼 선교와 로잔운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많은 접근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차이는 여전히 있다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