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조선 입국 이후 1866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기 직전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와 순교자, 신자들의 증언을 기록하였다.
▲프랑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조선 입국 이후 1866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기 직전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와 순교자, 신자들의 증언을 기록하였다. ⓒ박신호 박사 제공
◇1845년, 김대건·페레올·다블뤼의 조선 입국

귀츨라프가 원산도를 방문한 지 13년 뒤인 1845년에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마련됐다.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은 뒤, 조선대목구장 페레올(Ferréol) 주교와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다블뤼(Marie-Nicolas-Antoine Daveluy) 신부 등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같은 해 10월 조선에 입국했다.

조선에 입국한 다블뤼는 이후 약 20년 동안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사목 활동을 펼치는 한편, 조선 천주교회의 역사와 순교자, 교우들의 증언을 지속적으로 수집·정리하여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고했다. 이러한 자료는 훗날 한국 천주교사를 집대성하는 핵심 사료가 됐다.

◇1866년, 다블뤼의 비망기와 순교

다블뤼는 조선에서 활동하는 동안 한국 천주교회의 형성과 박해, 순교자들의 삶, 그리고 교우들의 증언을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그의 연구 성과는 「조선 순교사 비망기(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를 비롯한 여러 역사 자료로 남았으며, 이들 문헌에는 1832년 칼 귀츨라프의 원산도 방문과 활동에 관한 증언과 기록도 포함돼 있다. 이는 귀츨라프와 린지가 남긴 영문 기록과는 별개의 천주교 사료로서, 1832년 원산도에서 이루어진 귀츨라프의 활동을 교차 검증하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된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다블뤼는 체포되어 충청남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했다. 그러나 그가 생전에 수집·정리하여 프랑스로 보낸 방대한 자료는 보존됐고, 훗날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가톨릭 사제이자 교회사학자인 샤를 달레(Claude-Charles Dallet)가 이를 토대로 1874년 『조선천주교회사(Histoire de l'Église de Corée)』를 편찬함으로써 한국 천주교사는 물론 한국 기독교사 연구의 가장 중요한 기초 사료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프랑스 가톨릭 사제이자 교회사학자인 샤를 달레가 1874년 출간한 『조선천주교회사』. 1832년 원산도를 방문한 칼 귀츨라프와 조선 천주교인들의 접촉 사실을 소개하였다.
▲프랑스 가톨릭 사제이자 교회사학자인 샤를 달레가 1874년 출간한 『조선천주교회사』. 1832년 원산도를 방문한 칼 귀츨라프와 조선 천주교인들의 접촉 사실을 소개하였다. ⓒ박신호 박사 제공
◇1874년, 달레가 프랑스어로 원산도를 세계에 알리다

1866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다블뤼(Marie-Nicolas-Antoine Daveluy) 주교가 생전에 수집·정리해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로 보낸 방대한 역사 자료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가톨릭 사제이자 교회사학자인 샤를 달레(Claude-Charles Dallet)에 의해 체계적으로 편집돼, 1874년 『조선천주교회사(Histoire de l'Église de Corée)』로 출판됐다.

달레는 이 책에서 프랑스어로 “Île appelée Ouen-san”(원산이라 불리는 섬)​이라고 기록하면서, 1832년 칼 귀츨라프가 원산도에서 활동하던 당시 조선 천주교인들과 접촉했던 사실을 소개했다. 또한 “presque à l'entrée de la baie formée par la côte Ouest de la province de Tsiong-tsieng”(충청도 서해안이 형성하는 만의 입구 가까이)​라는 지리적 설명을 덧붙여 원산도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이 기록은 귀츨라프와 린지가 남긴 영문 항해 기록에서 원산도를 “deep bay”(깊은 만)​와 “safe anchorage”(안전한 정박지)​를 갖춘 곳으로 묘사한 내용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프랑스어 천주교 사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귀츨라프의 원산도 활동이 개신교 측의 영문 기록뿐 아니라 프랑스 천주교 사료를 통해서도 교차 검증된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이는 원산도가 19세기 초 개신교와 천주교가 공통으로 기억하고 기록한 한국 기독교사의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었음을 보여주는 핵심 문헌으로 평가된다.

결국 귀츨라프와 린지의 영문 기록,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 그리고 이를 토대로 편찬된 달레의 프랑스어 『조선천주교회사』는 서로 다른 국가와 언어, 교단에서 작성되었음에도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증언하는 상호보완적 사료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사료적 축적은 훗날 1927년 백낙준 박사의 예일대학교 박사학위논문과 2026년 박신호 박사의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경영학 박사학위논문으로 이어지며, 원산도를 한국 기독교사와 한글문화사, 그리고 역사학·선교학·경영학이 융합되는 학제 간 연구의 중요한 역사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학문적 토대가 됐다. <계속>

박신호 박사(미국 캐롤라인대학교 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