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
성경
고린도후서 2장 14절–3장 5절
중심말씀
고린도후서 2장 15절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서론
어려움 속에서 나온 감사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바울이 어떤 상황에서 이 말씀을 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모든 일이 잘되어서 “항상 우리를 이기게 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복음을 전해 세운 고린도교회에 여러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 안에 분쟁이 있었고, 바울을 비판하며 그의 사도권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바울과 고린도교회의 관계가 상당히 어려워진 것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고린도교회에 엄중한 편지를 보냈고, 디도를 보내 교회의 상황을 살피게 했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성도들이 내 편지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회개하고 돌이켰을까?” “교회가 다시 하나가 되었을까?”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로아에 도착했을 때 만나기를 기대했던 디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앞 13절에서 바울은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복음을 전할 문이 열려 있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대한 걱정과 디도를 만나지 못한 염려가 바울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다음 1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여러분, 이 고백이 중요합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한 고백이 아닙니다.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어서 한 고백도 아닙니다. 마음은 편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신뢰했고, 상황은 어려웠지만 그리스도의 승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4절을 다시 보십시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의 이 표현은 당시 로마의 개선 행렬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개선 행렬을 이끌고 들어올 때 향이 피워졌고 그 향기가 거리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승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닙니다. 승리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행렬에 참여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어려워도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승리입니다. 상처받아도 미움의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승리입니다. 실패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 승리입니다. 형편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다스리시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냄새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냄새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 줍니다. 음식점 앞을 지나가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납니다. 간판을 보지 않아도 “여기 고깃집이 있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빵집 앞에서는 갓 구운 빵 냄새가 납니다. 커피숍에 들어가면 커피 향이 납니다. 병원에 들어가면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납니다. 우리는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냄새를 통해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도 이와 같습니다. 나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은 무엇인가 다르구나.” 상처받고도 용서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저렇게 용서할 수 있을까?”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이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 그렇게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사람들이 나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그리스도의 향기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전해집니다
향수 냄새는 멀리 있는 사람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먼저 맡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정말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사람인지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가족입니다. 배우자가 압니다. 자녀가 압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압니다. 매일 나를 만나는 사람이 압니다.
교회에서는 얼마든지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면 진짜 모습이 나타납니다. 교회에서는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가정에서는 짜증을 내고, 교회에서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직장에서는 불평하고, 교회에서는 “용서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누군가를 오래 미워한다면 그 향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2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무는 열매로 압니다. 신앙도 삶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예수님을 믿었다면 삶에 변화의 흔적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전보다 조금 더 온유해지고, 조금 더 기다려 주고,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감사하고, 조금 더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삶에 변화의 흔적은 있어야 합니다. 그 변화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향기는 말보다 삶에서 먼저 납니다
복음은 말로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우리의 삶이 따라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어지는 고린도후서 3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여러분, 편지에는 여러 가지 소식이 담깁니다. 어떤 편지에는 기쁜 소식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편지에는 슬픈 소식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편지에는 사랑과 감사가 담겨 있고, 어떤 편지에는 위로와 격려가 담겨 있습니다. 편지를 받으면 우리는 그 안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를 읽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놀랍게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합니다. “너희가 편지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나라는 편지를 읽을 때 무엇을 읽고 있을까요? 사랑을 읽을까요, 미움을 읽을까요? 감사를 읽을까요, 불평을 읽을까요? 용서를 읽을까요, 원망을 읽을까요? 겸손을 읽을까요, 교만을 읽을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라는 편지를 읽으면서 예수님을 읽을 수 있는가?”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도 우리의 삶은 읽습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도 우리의 말과 행동은 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봅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편지의 한 줄이 되고, 우리의 행동 하나가 또 한 줄의 문장이 됩니다.
그래서 3절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우리는 누구의 편지입니까?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라는 편지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쓰여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용서가 쓰여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이 쓰여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라는 편지를 읽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을 보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조금 알 것 같다.”
앞에서는 바울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합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가리키는 방향은 같습니다.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알려지는 것입니다. 내게서 나는 향기를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내 삶이라는 편지를 읽으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7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복음에 합당하게 산다는 것은 내가 믿는 복음과 내가 살아가는 삶이 서로 어울리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 그것이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향기는 사랑에서 납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가장 강하게 풍겼던 향기가 무엇이었습니까?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피하던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던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먼저 말을 걸어 주셨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정죄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살아갈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과 35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많이 알면 내 제자인 줄 알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직분이 높으면 알 것이다”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 알 것이다”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결국 사랑의 향기입니다. 누군가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는 것, 외로운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 실수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이런 삶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납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향기는 낮아지는 데서 나타납니다
세상은 높아지라고 합니다. 더 인정받으라고 합니다. 더 많이 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로 사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고 8절은 말씀합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높아지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낮아지셨습니다. 섬김을 받으실 분이셨지만 섬기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0절은 말씀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는 내가 얼마나 높아졌는가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높여 주었는가에서 납니다. 내가 얼마나 인정받았는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섬겼는가에서 납니다.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높여 주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향기는 깨진 자리에서 더 진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깨어질 때가 있습니다. 계획했던 일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을 때가 있습니다. 건강 때문에 힘들 때도 있고, 사업이나 직장의 어려움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깨어진 후 내 안에서 무엇이 나오느냐가 중요합니다. 원망이 나옵니까, 감사가 나옵니까? 미움이 나옵니까, 용서가 나옵니까? 절망이 나옵니까, 믿음이 나옵니까?
마가복음 14장에 한 여인이 매우 값진 나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옵니다. 그리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습니다. 이 사건의 중심은 그 여인이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주님께 드린 헌신입니다. 그러나 설교적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옥합이 열리자 그 안에 있던 향기가 퍼졌습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깨어짐의 시간을 통과합니다. 그때 믿음의 사람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깨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에게서는 특별한 향기가 납니다.
“저런 일을 당하고도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 “저렇게 힘든데도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 바로 그때 세상은 그 사람 안에 있는 보배를 보게 됩니다. 나의 깨어짐보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더 크게 드러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여섯째, 그리스도의 향기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향기는 자기 자신이 맡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으로 퍼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야 합니다. 내가 받은 위로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흘러가야 합니다. 내가 받은 물질은 어려운 사람을 섬기는 데 사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사는 교회를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베드로전서 4장 10절도 말씀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우리는 은혜의 소유자가 아니라 은혜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나만을 위해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사람입니다. 은혜는 쌓아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가 흘러갈 때 그리스도의 향기도 함께 퍼져 나갑니다.
일곱째, 결국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젠가 우리의 인생도 끝납니다. 그때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그 사람 때문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분의 말 한마디가 나를 살렸습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그 사람이 내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서 예수님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아름다운 인생의 흔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울은 17절에서 말씀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였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억지로 향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고, 말씀 앞에서 순전하게 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같은 향기인데 왜 반응은 다를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15절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그리고 16절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왜 같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누구에게는 생명이 되고 누구에게는 사망이 됩니까? 향기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같은 향기에 대한 반응이 다른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입니다. 복음도 하나입니다. 예수님도 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십자가는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셨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같은 복음을 듣고도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살아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향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나를 통해 예수님이 보이는 사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동안 우리는 ‘변화된 삶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고,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달라지고, 물질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고, 감정을 다루는 것이 달라지고, 습관이 달라지고, 사명을 바라보는 것이 달라지고, 가정과 교회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변화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은 말씀합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신앙의 목표는 단순히 교회를 오래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을 받는 것도 최종 목표가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만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자신에게 두 가지를 물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은 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리고 또 하나입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향기가 느껴지는가?” 가족이 나를 만나면서 예수님의 향기를 느끼고 있습니까? 직장 동료가 나를 보면서 예수님의 향기를 느끼고 있습니까? 교회 성도들이 나와 함께하면서 예수님의 향기를 느끼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나라는 편지를 읽으면서 예수님을 읽을 수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것이 변화된 삶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고 나서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을 보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조금 알 것 같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삶입니다.
내가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통해 예수님이 보이는 사람. 내게서 나는 향기를 통해 예수님을 알게 하고, 내 삶이라는 편지를 통해 예수님을 읽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삶의 모든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향기가 아름답게 퍼져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고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하여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사랑의 향기를 전하게 하시고, 상처받아도 용서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낮아져 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사람들이 우리라는 편지를 읽을 때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옵소서. 내가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통해 예수님이 보이는 사람, 어디에 있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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