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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결혼할 때는 남녀 모두 같은 종교여야 하며, 개신교인의 경우 반드시 교회에서 목사에게 혼인을 신고하고, 결혼 예식을 통해 결혼 확인증을 받아야 법적으로 혼인이 인정됩니다. 종교가 없다면 사실상 법적인 결혼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각 종교의 주요 절기와 기념일은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성탄절만 공휴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성탄절은 물론 성금요일과 부활절과 예수승천일도 공휴일로 지킵니다. 이슬람에서는 르바란, 이둘 아드하(희생제), 마울리드(예언자 탄생일), 이슬람 새해, 그리고 이스라 미라지(성지순례 출발 기념일)가 공휴일입니다. 나머지 종교 절기와 국가 기념일까지 합하면 대략 25일을 쉬게 됩니다.
3월 21일부터 24일까지는 인도네시아 최대 명절이자 이슬람의 최대 절기인 르바란(Lebaran)이 있었습니다. 약 한 달간의 라마단 금식 기간이 끝난 후 이둘피트리(Idul Fitri)를 축하하는 기간으로, 수백만 명이 고향을 찾아 가족, 친지들과 음식을 나누며 용서를 구하는 화해와 감사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슬람 신자가 전체 인구의 약 90%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절기가 되면 도시 전체가 분주해집니다. 올해는 화인들의 최대 명절인 춘절 기간에 라마단 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금식하며, 그 시간 동안에는 물도 마시지 못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라마단 기간에는 오히려 음식 소비량이 2~3배가량 증가합니다. 낮 동안 금식을 했기 때문에 저녁 식사를 풍성하게 먹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금식은 자신을 절제하고, 신께 더 가까이 나가는 시간을 의미하는데, 라마단은 이러한 영적 의미와 함께 가족과 이웃이 함께 식사를 나누는 공동체적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저녁 가족, 친구들과 만나 식사를 나눕니다. 밤이 되면 길거리와 식당가는 사람들로 가득 차고, 도로는 교통이 마비될 정도입니다. 수요일 저녁 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데 평소에는 30분이면 충분한데, 이 기간에는 교통체증으로 1시간이 걸릴 때가 많습니다.
이른 저녁에 식당에 가보면 이미 자리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음식이 없는 빈 테이블에 모두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사이렌이 울리면 갑자기 각 테이블에 준비된 음식이 일제히 나옵니다. 이 사이렌은 금식이 해제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식당에서 펼쳐지는 진귀한 풍경입니다.
한번은 우리 집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아 청소업체를 불렀습니다. 작업을 마친 뒤 직원들에게 시원한 물을 건네며 무슬림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물을 마셔도 괜찮겠냐고 묻자, 이렇게 더운 날 일하면서 안 마실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물을 숨어서 먹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또 한번은 점심에 식당에 갔는데, 무슬림들이 식사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라마단 기간 중 이러한 무슬림들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대부분이 형식적인 종교인임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기본적인 종교적 형식과 행위는 있지만, 그 안에 진정한 신앙심이 있는 무슬림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는 이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신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도 비슷합니다.
제가 화인교회에서 사역하며 교인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형식적인 종교인입니다. 부모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자녀들도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모 역시 신앙심이 있어서 다니는 교인들도 사실 적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불교인데, 자녀는 교회에 나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화인들은 대부분 불교인 경우가 많아서, 이슬람이 아닌 불교의 종교를 가진 가족들을 전도하는데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일부 목회자들 역시 믿음이나 소명이 아닌, 직업으로 여기며 사역하는 때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인도네시아의 헌법 이념인 ‘판차실라(Pancasila, 다섯 가지 원칙)’가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념은 종교의 존재를 인정하고 보호하기 때문에 종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 안에는 혼합주의적 종교가 많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토착 신앙과 이슬람 혹은 힌두교가 결합하여 독특한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메단에서 가장 큰 가톨릭 성당을 방문했을 때, 성당 곳곳에서 힌두교적 양식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교회나 기독교 시설에서 청소와 관리, 경비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모두 무슬림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화인 연회 본부의 청소 담당자들도 무슬림입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곳은 인구의 90%가 무슬림으로, 일할 사람을 구하면 자연스럽게 무슬림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유연해서 한국교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개신교와 이슬람이 적대적인 경우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기에 큰 충돌이나 갈등 없이 지냅니다.
그런데 이처럼 종교 간의 경계가 느슨한 환경에서 신앙의 정체성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다가 종교 혼합주의에 쉽게 빠질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물론 무슬림이나 다른 종교인들을 배척해서는 안 되지만,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신앙 정체성이 굳게 세워져야 혼합주의적 요소들을 지혜롭게 분별하고 그 함정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종교 혼합주의에 대한 개념이나 이해 자체가 거의 없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선교사인 저는 무슬림을 비롯한 다른 종교인들을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이곳의 화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전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행위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복음을 받아들이고 개종하는 것은 사회적 구조와 분위기상 매우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다른 종교, 특히 이슬람과 힌두교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따라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쉽고, 교회는 영적으로 성장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한다면 교회는 결국 쇠퇴할 수밖에 없으며, 서로 돕고 나누는 화인 공동체 정도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안타깝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과 이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저는 할 수 없지만 선교하는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아브라함처럼, 제가 있는 자리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그 자리에서 함께 이 땅을 위해 기도하는 예배자들을 세우실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저희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올해는 사순절(2월 18일∼4월 2일)과 라마단 기간(2월 19일∼3월 20일)이 겹쳐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화인교회에서는 사순절을 따로 지키지는 않고 성금요일과 부활절에만 예배가 있습니다. 오히려 사순절보다 라마단과 르바란이 이들에게 더 큰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르바란 연휴에는 교인들 대부분이 여행을 갑니다. 이번에는 주일이 연휴에 끼어 있어서 여행으로 인해 주일예배를 빠진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사순절이 시작될 때 예수님 십자가의 고난을 함께 묵상하며 기도하고, 이 땅과 무슬림들을 위해 중보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했지만 이러한 모임은 없었습니다. 저 혼자라도 모임을 하려고 애썼지만, 설교 준비와 여러 모임과 행사를 핑계로 저 역시 하지 못했으며 더불어 우리 가족 모두 한 달 내내 감기가 낫지 않아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습니다.
곧 다가올 고난주간과 성금요일 예배 그리고 부활절 예배를 통해 우리 가정뿐만 아니라 화인교회 성도들 모두가 우리 죄를 위해 기꺼이 하나님께 버림받으시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새롭게 경험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로 동역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고난주간과 부활절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일형 MDC 화교감리교회 협력목사·인도네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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