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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립현충원은 국가에 대한 정체성과 애국심을 강화시켜 준다. 약 43만 평의 양지쪽에 20만여 분의 묘비가 줄지어 있으며, 이 중에서 10만 3천여 분은 시신조차 찾지 못한 전몰 무명용사로 현충탑 지하 벽면에 검은색 위패로 모셔져 있다. 국가안보가 무너지면 경제도, 민생도, 국민의 인권과 행복도 다 사라진다.
저희 한국보훈선교단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이 누워계신 유적지와 전적지의 가슴 뜨거운 충혼과 애절한 사연을 국민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오늘의 번영과 안정이 이분들의 값진 희생의 결과임을 지역 별로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념하기를 바란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오늘의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정확하고 진실한 이해와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최대의 비극이었던 6.25 한국전쟁의 배경과 원인과 전쟁 결과와 교훈들을 올바로 이해하고 잊지 않는 것이 한반도의 전쟁을 억제하고,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는 국민통합을 이루어서 민족의 통일을 이루는 길이다. 역사의 진실을 가슴에 인식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모든 국민의 책무이다.
조선말의 시대적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 독립운동을 시작으로, 광복군과 국군의 탄생, 기습적으로 당한 6.25 전쟁에서의 충성스러운 호국 용사들의 충정의 세계로 여러분을 정중히 초청한다.
◇일본의 침략과 한민족의 독립운동
한반도는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서구열강과 청나라, 일본 등의 압력을 받으면서 국제적인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러한 외세에 대항하여 조선왕조는 한동안 쇄국정책을 고수하였지만, 국제 정세의 조류를 더 이상 막아내지 못하고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이후로 1882년에는 미국, 1883년에는 영국 및 독일, 1884년에는 러시아 및 이탈리아와 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강대국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문호 개방에 대해 집요하게 관심을 가졌던 나라는 청국과 일본, 러시아였다. 한반도와 인접해 있던 이들 국가는 한국 문제가 자국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한반도에서의 독점적 우세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다.
이들 세 나라의 대립은 마침내 전쟁으로 발전하며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이 발발하였는데, 두 차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 미국, 영국 등의 강대국들과 일종의 협약을 통해서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교활하고 악랄한 일제 침략 일지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다.
1895년 8월 20일 참혹한 을미사변이다. 일제가 조직적으로 미우라 일본 공사의 지휘 아래 일본 군인과 경찰, 일본 낭인들과 조선인 일부가 경복궁에 무력으로 침입해서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시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기름을 붓고 불태워서 소각한 끔찍한 사건이다. 또한 강제적으로 단발령을 내리자 전국에서 일본군을 몰아내자는 의병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다. 이 조약으로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고, 여기에 찬성한 학부 이완용, 군부 이근택, 내무 이지용, 외무 박제순, 농상공부 권중현 등 나라를 판 이들을 을사오적이라고 한다.
1907년 7월 24일 한일신협약을 정미7조약이라 하며,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를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통치권을 장악했으며 8월 1일에는 대한민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분개하여 시위대 제1연대, 1대대장 박승환 참령이 자결하자, 이 일을 계기로 해산된 군인들이 서울, 원주, 강화 등지에서 무장하고 각지의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1909년 7월 12일 기유각서는 대한제국의 사법권을 일본에 넘겨준 조약이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강제 병합. 경술국치는 대한민국이 일본에 병합된 사건으로 일본제국과 친일파가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사건이다.
우리나라가 이와 같이 자주성을 잃고 나라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전국 각지의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국권의 수호를 위한 각종 투쟁을 전개하였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독립군이 일본에 대한 항쟁을 국내외적으로 펼쳐나갔다.
이러한 항쟁은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장한 민족 자결주의에 희망을 갖고,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범희 목사(㈔한국보훈선교단 이사장, 6.25역사기억연대 역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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