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젊은 작가들의 창작 세계를 응원하는 전시를 이어온 새문안교회(이상학 담임목사)의 새문안아트갤러리가 이승호 작가의 작품전 ‘몽실 살랑 안식’을 10월 11일부터 11월 4일까지 진행 중이다.
새문안아트갤러리는 청년 작가 지원 공모전을 매해 열어 청년들의 가능성과 상상력을 담아내는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기린’이라는 독창적인 모티브로 현대인의 일상과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 이승호 작가의 작품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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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아트갤러리에서 이승호 작가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새문안아트갤러리 |
대학에서 조소, 대학원에서 공공미술을 연구한 이 작가는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하며 작업의 영역과 깊이를 확장해 왔다. 2016년 한국구상조각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KT&G 상상마당 기획전, 일본 미야자키 국제 현대조형 공항전 등 국내외 70여 회의 전시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이 작가의 여덟 번째 개인전으로, 관객들에게 예술과 마주하는 새로운 시선을 선사하고 있다.
이승호 작가는 현대인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작품 속 기린의 형상을 통해 현대인의 피로와 유약함, 그 너머의 위로를 이야기하려 했다. 작가에게 기린은 동물적 상징을 넘어 자화상이자 분열된 자아의 은유이며, 동시에 사회적 타자의 시선과 개인적 무력감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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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작가의 작품 속 기린은 두 가지 상반된 자세로 등장한다. 이는사회적 강요와 내적 소진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드러낸다. ⓒ새문안아트갤러리 |
작품 속에서 기린은 ‘올곧은 기린’과 ‘누운 기린’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자세로 등장한다. ‘올곧은 기린’은 사회적 규범과 타인의 기준을 내면화한 자아의 형상이며, 축 늘어진 ‘누운 기린’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은 개인의 내밀한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새문안아트갤러리는 “이 둘의 병치는 오늘날 개인이 경험하는 불균형한 자아 상태, 즉 사회적 강요와 내적 소진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드러낸다”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대비가 교훈적이거나 비극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오히려 해학적이고 담담한 어조 속에서 표현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선택한 기린의 이미지에는 문화적 이중성도 스며 있다. 일본과 한국의 서로 다른 문화적 토양에서 체득한 작가의 감각은 기린을 단순한 상징이 아닌, 경계적 존재로 만들었다. 주최 측은 “기린은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로서의 가능성을 담고 있으며, 긴 목은 인간의 욕망과 상승 지향의 은유처럼 보이면서도 오히려 늘어져 무기력하게 드리워져 있다”며 “이 긴장과 이탈이야말로 작가가 포착한 현대인의 실존적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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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아트갤러리에서 이승호 작가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새문안아트갤러리 |
작품에 등장하는 몽실한 구름, 살랑이는 나뭇잎은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한 조각의 위로, 삶의 곁에 스며든 미세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기린은 바로 그 속에 누워 매개체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관객은 기린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쉼’의 상태에 접속하고, 그 과정에서 작품은 풍경을 넘어 안식의 장소로 변모한다.
새문안아트갤러리는 “이번 전시는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한 제안”이라며 “사회의 무게에 눌린 개인이 잠시 몸을 내려놓을 수 있는 상상적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희망을 발견하는 가능성, 전시가 남기는 울림은 그 은근하고 미묘한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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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체험 프로그램 ‘나의 작은 산, 나의 안식처’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의 작품 ⓒ새문안아트갤러리 |
전시 기간에는 초등학생들이 직접 ‘쉼’, ‘안식’의 순간을 창작으로 표현하는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 ‘나의 작은 산, 나의 안식처’가 진행된다. 어린이들은 먼저 자신이 느끼는 가장 편안한 순간을 서로 나누고, ‘나에게 휴식이란 무엇인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 산 모양 스티로폼 위에 아이클레이를 붙여 작은 산을 만들고, 슈링클스(압축필름)에 몽실한 구름을 그려 하늘을 장식한다. 마지막에는 아이클레이로 자신의 모습을 제작해 산 위에 누운 모습으로 배치하면서, 나만의 작은 풍경을 완성하는 것이다.
주최 측은 “이는 각자의 내면이 담긴 작은 안식처이자 자화상으로서, 작품을 서로 감상하며 자신이 느끼는 편안함을 공유하고 타인의 쉼의 방식에도 공감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또한 “경쟁과 성취 중심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쉬는 것의 가치’를 새롭게 생각하게 만드는 경험이며, 어린이들이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이라며 “예술 활동이 곧 마음을 쉬게 하는 ‘안식처’가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