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목사
▲김종필 목사
1987년 인류 역사의 전기를 이루게 한 선언이 있습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베를린 장벽 옆에서 동서 장벽의 종언을 고하는 말 “이 장벽을 무너뜨리라(Tear down this wall)”라는 말이었고, 그의 말은 역사상 1989년 11월 9일 현실이 되었습니다.

1969년 달 표면에 도착한 우주인 중 한 명인 닐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입니다.(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와 맞물린 인물이며 성경에도 나오는 율리어스 시저는 주전 49년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말합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The die is cast.)”

우리는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날들을 매일 겪고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수많은 날의 일상일 수 있으나, 어떤 역사적 전기를 마련하는 사람에게는 그날이 수많은 날 중 하나가 아니라 매우 특별한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읽고 배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어떤 행동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를 쓰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는 대단한 뉴스가 천국에서는 그저 수많은 일상 중 하나가 될 수 있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보질 못한 우리의 행위가 천국에서는 기억하고 칭찬받는 상급일 수도 있습니다.

2010년 유럽과 터키, 중국, 남아공, 한국을 돌아 잠시 필리핀을 방문했던 그날, 저는 그날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은 그저 지나가는 수많은 날 중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밤을 새우며 뜬 눈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저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지구가 흔들리는 두려움으로 홀연히 잠에서 깼습니다. 그리고 이미 기도하고 있던 아내의 손을 잡고 깊은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 순간, 그 두려움이 몰려올 정도로 엄위하신 주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세계교회가 서구와 한국만을 바라보겠느냐? 아시아 교회로 하여금 아시아 대륙을 복음화하도록 하라!’

‘수많은 사람이 나의 부름을 받고 헌신하였지만, 저들은 신학교에 가서는 점점 믿음이 식어지고, 그리고 학교 문턱을 벗어나는 날 믿음을 저버리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순교자를 양성하는 학교를 세우라!’

아내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시간 주셨던 주님의 엄위하신 명령 앞에 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준엄하게 그 말씀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 명령을 준행하지 않으면 마치 지옥의 가장 큰 불구덩이에 떨어져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 온 하늘을 덮듯이 저의 영혼에 전율이 되어 노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14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첫 번째 명령을 따라, 아시아 교회로 하여금 아시아 대륙을 복음화하기 위한 마닐라국제선교대회는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개최되었으며, 올해 8회 대회가 되었습니다. 그 흔적들을 돌아볼 때마다 눈물과 희생과 헌신과 금식의 행렬이 줄을 이었지만,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적이었으며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수천 아니 만여 명 이상이 선교에 헌신하였고, 선교대회 이후에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교회와 목회 자체에 주는 엄청난 부흥의 파장이 있었다는 고백들이 지금까지도 잦아들지 않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두 번째 명령을 따라, 후원자도 없이 교사들 급여, 교수들 급여, 교직원 급여 및 학교 운영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재정의 공급 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 같은 고통의 순간들 속에서 수백 명의 졸업자가 유치원, 초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대학원을 통해 배출되었습니다. 이제 이 학교는 의과대학, 교육대학, 기술대학, 공과대학 등을 갖춘 종합대학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옛날 같았으면 할 수 있는데 지금은 형편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어요.” “잘나갈 때에는 돈도 잘 벌고 해서 가능하지만 이제는 빈털터리가 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럼 우리가 잘나갈 때 무엇을 했을까요? 그 물질과 재능을 가지고 마음껏 주님께 충성했을 것 같지만 돌이켜 보면 도리어 후회와 회한이 남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정언명령에 대하여 많은 이유와 구실을 대고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칸트에 따르면 선을 위한 도덕적 명령을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라고 합니다. 이에 반하는 가언명령(조건부 명령)이 기술적인 숙련의 규칙이거나 실용적인 영리함을 따르는 명령이라면, 정언명령은 필연적으로 해야 할 윤리적이며 도덕적 합법성을 지닌 명령입니다. 하물며 죄에서 구원을 받은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은 정언명령을 초월하는 절대적 진리이며 또한 의무적 권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복음을 전하는 대위임령(Great Commission)은 정언명령을 능가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임무는 선교사들에게 위임했다고 핑계를 댑니다. 너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찰스 스터드(Charles Studd) 같은 특별하고도 위대한 인물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치부하고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 믿는 자 모두에게 주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해당하는 대위임령을 무시하거나 두려움과 떨림으로 받지 않습니다. <계속>

김종필 목사
미국 파토스 재단 대표
필리핀 한 알의 밀알교회 개척 및 위임 목사
미국 보스턴 소재 임마누엘 가스펠 센터 바이탈리티 소장 역임
미국 시티 임팩트 라운드테이블(City Impact Roundtable) 집행위원 역임
필리핀 그레인 오브 휘트(Grain of Wheat) 대학·대학원 설립자 및 초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