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일본 도쿄에서 순교자 김관주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난 김 목사는 11세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홀로 38선을 넘어 월남했으며, 1961년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도미해 훼이스신학교,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예일대학교 신학원, 아퀴나스신학원, 풀러신학교 선교신학원을 졸업했다. 탁월한 역사신학자이자 어거스틴 연구에 관한 권위자인 그는 총신대 역사신학과 선교신학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및 총장을 역임했다.
김명혁 목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목회, 교수 사역, 국내외 선교 및 순회 목회 등 한국교회와 한국복음주의를 대표하는 목회자이자 한국교계의 존경 받는 어른으로 큰 사명을 감당해 왔다. 1974년부터 1978년까지 후암교회 교육목사로 섬긴 후 영안교회 담임목사를 거쳐 1979년 강변교회를 설립, 2008년까지 28년간 목회한 후 은퇴하여 원로·선교 목사로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신앙과 현실’(성광문화사), ‘복음과 세상’(성광문화사), ‘통일과 선교’(성광문화사), ‘기도의 인물’(성광문화사), ‘성경으로 공부하는 신앙생활의 ABC’(성광문화사), ‘빌립보서 성경공부’(엠마오), ‘초대교회의 형성’(성광문화사), ‘한국교회 쟁점진단-한국교회와 신학적 주제들’(규장문화사), ‘사랑의 편지’(카도쉬북) 등이 있다.
김봉화 사모 사이에 난 아들 김철원은 뇌수종으로 투병하다 4살 때 천국으로 떠났고, 딸 김혜원, 김혜진 씨가 있다. 김혜원 선교사(사위 이승일 선교사) 부부는 필리핀 선교를 떠나 17년간 사역하고 있다.
김명혁 목사는 18일 춘천의 한 교회에 오전 11시 주일예배에 설교하러 가는 길에 단독 사고의 여파로 소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9호실이며, 입관예배는 합신 총회 주관으로 21일 오전 11시, 발인예배는 강변교회에서 22일 오전 6시 30분 드려진다. 장지는 용인 나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