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제목별, 주제별, 출판사나 기관별, 이름별로 정리된 대학 도서관 논문 색인대 앞에서 논문을 찾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새롭게 오픈한 구글 검색은 필리핀에서 10여 년 선교 사역을 하면서 인터넷 연결은 달나라 얘기인 것으로 알고 살아온 저에게는 신세계였습니다. 60년대 출간된 월간 문학, 월간 소년, 삼중당에서 출간한 월간지 ‘소년 소녀 만세’와 또 다른 잡지 ‘새벗’은 제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인쇄되었던 종이의 질이 시멘트 종이보다 조금 나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삽화나 간단한 제목만 보고서도 얼마나 설레던지요! 그 글들이 저의 꿈을 나르게 해주었고, 언제나 상상의 나래를 나르는 지경만큼 사색의 지평을 넓히고, 생각하는 만큼 가능한 이성의 한계도 보았고, 능력도 보게 만들었습니다. 개인이 구입하기 쉽지 않지만 학교와 공공 도서관에 늘 비치되어 있던 민음사, 창작과 비평사, 현대문학사, 생활사에서 나오는 각종 잡지와 서적들은 지금도 저의 영혼의 서가 안에 비치된 가보처럼 남아 있습니다.
인간이 받은 감흥이 자연과 우주와 생명체를 통해서도 크게 남아 있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책을 통해 받은 그 감흥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비록 가난해도 저의 사색의 폭은 제한받지 않았으며, 성적순이 아닌 읽은 만큼 알려주고, 생각하는 만큼 깊어지고, 느끼는 만큼 감성도 풍요로워지고,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접하는 만큼 학문과 주제와 철학적 명제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곧 책은 적어도 저에게는 만능 키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보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만, 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때 가는 수학여행을 자발적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3~4일 동안 수학여행을 떠나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당시 저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홀로 크나큰 도서관에 남아 마음껏 책을 읽으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새로운 자각에 인간은 결코 교만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체득한 것 같습니다. 책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심리학책을 읽다가 초심리학, 심령술, 당시에 새롭게 등장했던 것 같은 마인드 컨트롤, 그리고 최면술은 물론 인지과학, 행동과학, 발달 심리학, 심리 치료학, 교육 심리학, 신경과학(당시에는 뇌과학에 관한 책을 많이 접할 수 없었음) 등으로 저의 책의 영역은 깊어지고 넓어졌습니다.
40~50년 전의 일이지만 책을 읽고 행복해하고, 신문 배달을 하면서도 읽었던 책을 되새김질할 때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지성적 포만감에 미래의 꿈을 꿨던 소년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러던 제가 대학에 들어가니 아마추어에서 비로소 프로의 세계로 들어간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60년대, 70년대 대부분의 책이 외국 서적을 번역한 것이었다면, 제가 대학에 들어가서 접한 것은 영어로 된 책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영어책의 바다에 그냥 다이빙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리학, 지구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통계학, 사회학, 종교 사회학, 철학사, 도서관학, 의학 일반, 심리학, 상담학, 간호학, 보건학, 과학철학 등 학교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인 그 책들을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매일 밤을 꼬박 세며 읽었습니다. 모처럼 길거리를 걷다가도 슈퍼마켓에 진열된 물품들이 책으로 보여 무심코 들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저는 책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계속>
김종필 목사
미국 파토스 재단 대표
필리핀 한 알의 밀알교회 개척 및 위임 목사
미국 보스턴 소재 임마누엘 가스펠 센터 바이탈리티 소장 역임
미국 시티 임팩트 라운드테이블 집행위원 역임
필리핀 그레인 오브 휘트(Grain of Wheat) 대학·대학원 설립자 및 초대 총장
영국 버밍엄 대학 철학박사(P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