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 문제는 스포츠뿐 아니라 대인 관계, 선거에서도 발생
오심과 편파 판정 있으면 절대 안 되는 일은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관은 완전히 공의롭고 지혜롭고 선하신 예수님
그러므로 우리는 오심에 대한 걱정 없이 믿음의 삶 영위
다만 신앙의 경주에서 우리만 반칙하지 않으면 되는 것
2022년 2월 7일, 한반도가 부글부글 끓는 일이 발생했다. 날씨가 뜨거워서 끓은 것도 아니고 어디서 용암이 흘러나온 것도 아니고 전 국민의 마음속에 아쉬움을 넘어 분노의 파도가 일어난 것이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000미터 경기에서 대한민국의 황대현 선수는 조 1위를 하고도 반칙을 했다는 이유로 실격되었고, 이준서 선수 역시 조 2위를 하고도 실격으로 처리되었다. 현지에서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크게 아쉬움을 표했고, 국내의 여러 전문가와 국민이 당시의 영상을 돌리고 또 돌려보았지만 결코 반칙이 아니었는데 심판관이 대한민국 선수에게 페널티를 준 것에 억울하고 화가 나서 당장 보따리 싸서 돌아오라고 소리칠 지경이었다.
우리 선수가 반칙하기는커녕 오히려 중국 선수들이 잡고 미는 것이 영상에 분명히 드러나 있음에도 중국 선수 옆에 바람만 스쳐도 페널티를 받는 것을 보면서 네티즌들은 이는 올림픽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체전일 뿐이라고 조롱하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동북공정의 하나로 중국이 김치의 종주국이라고 우기더니 급기야 올림픽 입장식에 한복과 꽹과리, 상모돌리기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넣으므로 우리 국민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는데 기름을 퍼부은 것이다.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억울한 반칙패를 당한 것은 비단 대한민국 선수만이 아니다.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1위로 골인하고도 실격을 당해 중국에 금메달을 내준 헝가리에서도 격앙된 반응이 나왔으며 일본 역시 7일 스키점프 혼성 단체전에 나섰던 일본의 간판선수 다카나시 사라가 유니폼 규정 위반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실격 처리돼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그런 편파 판정의 억울함을 겪고도 쇼트트랙 남자 1500m 경기에서는 황대헌, 이준서, 박장혁 등 세 명의 선수가 모두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결국 황대헌 선수가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됨으로 그 억울함을 모두 이겨낸 것이다. 판정과 빙질, 텃세 등 그 무엇도 우리의 황대헌을 막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의 편파 판정과 오심 문제는 어제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는 피겨의 퀸 김연아 선수가 완벽한 연기를 하고도 억울한 편파 판정으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내어준 일이 있었다. 이처럼 기계로 점수를 측정하지 않고 사람이 주관적으로 판정하는 곳에는 늘 오심 논란이 따라다닌다.
오심 판정이 발생하기 쉬운 경기 가운데 하나는 구기 종목이다. 대표적으로 축구는 22명의 선수가 넓은 운동장에서 뛰어다니기에 심판이 미처 다 못 볼 수도 있고 워낙 빠르고 격렬한 스포츠여서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못 보고 오판을 할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은 각종 구기 종목에 비디오 판정 제도가 도입되어 오심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선서에서 선관위 종사자들보다 더 중요한 심판관은 사실 유권자들이다. 유권자들은 선거운동을 지켜보면서 누가 더 좋은 후보이며 누가 더 나쁜 후보인지 가려내고 그날 심판한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가 꼭 한 달 남은 시점에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후보를 잘 지켜보고 제발 오심 없이 바른 판단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심과 편파 판정이 생겨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최후의 심판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것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죽은 후에 우리 영혼이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 가운데 누가 어디로 갈 것인지 원칙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원칙을 무시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바라서도 안 되겠지만, 이미 제시된 원칙에 따라 살았음에도 오심과 편파 판정을 받는 일이 발생한다면 정말로 큰일이며 영원히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최후의 심판에서의 심판관은 절대로 오심을 하지 않을 완전히 공의롭고 완전히 지혜롭고 완전히 선하신 우리 주 예수님이다. 그분은 지상에 계실 때 소크라테스의 재판보다 더 억울한 재판을 받은 경험이 있다. 본디오 빌라도는 세 번이나 이 사람에게는 죽일 죄가 없다고 선언하고서도 예수님을 죽이라고 내어주었으니, 요즘 같으면 탄핵당하고 감옥에 갈 불의한 재판관이다.
그런 재판을 받으신 예수님이기에 최후의 심판에서는 더욱 오심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심(誤審)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믿음의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릴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신앙의 경주에서 우리만 반칙하지 않으면 된다. 할렐루야.
최광희 목사
신학박사(Th.D. 설교학), 행복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