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며 현재의 것들을 미래와 연결하여 영원한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며 현재의 것들을 미래와 연결하여 영원한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해야 한다.
셋째, ‘영광이 당신에게 있사옵나이다’.

주기도문의 첫째 청원에서 ‘이름이 거룩하게 하옵시며’라는 간구는 송영에서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찬양과 관련이 있다. 그 영광은 영원히 높임을 받으시고 영원히 경배를 받으시는 그분께만 돌려 드리는 것이다.

① 하나님께 관한 영광은 그의 신적 속성과 완전함을 나타내거나 임재의 영광을 나타낸다.(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시 19:1)
② 영광은 영원한 것이며 성도들에게 예정된 것이다.(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21/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벧전 5:1)
③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났다.(…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요 1:14)
④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나타났다.(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출 15:6)
⑤ 하나님의 영광은 성도의 순교에서 나타난다.(스데반이…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서신 것을 보고, 행 7:55)
⑥ 하나님의 교회에도 그의 영광이 임재한다.(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시 102:16)
⑦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다시 살아난다.(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 3:20)
⑧ 표적과 이적을 주시므로 그 영광을 드러내신다.(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요 2:11)

하나님께서는 영화로운 영광 중에 스스로 거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이야말로 하나님의 모든 역사의 장엄한 목표이며,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항상 간수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자신만이 기도의 응답자라는 영광을 소유하셨다. 그분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우리의 송영은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지어다’(시 72:19)라고 했다. 인생들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생의 삶의 목적과 이유를 한 마디로 가르친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에게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하였다. 그리고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서신을 보낼 때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의 이유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세세에 그에게 있으리로다’(롬 11:36)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우리 인생들의 삶은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하며, 우리의 말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데에 그 초점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제자의 삶이라고 하셨다.(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요 15:8)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의로운 삶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광 돌리며 살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 1:11)고 하였다. 나무의 목적이 결실이라면, 결실 없는 나무가 주인을 기쁘게 할 수 없음과 같이 의의 열매 없는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과 세상의 영광을 위한 현세의 영광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① 일시적이다.(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벧전 1:24)
② 현세의 영광은 마귀의 유혹의 원인이 된다.(마귀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 4:8)
③ 수치로 변하는 것이다.(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호 4:7)
④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려 할 때 부끄러움으로 변한다.(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마 6:2/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9)
⑤ 인간의 영광은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다.(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시 49:17)
⑥ 인간의 영광은 자랑할 것이 없는 지혜, 부함, 권세이다.(…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렘 9:23/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9/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 5:26)

지상에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위해 만든 많은 인위적이고 인본주의적 영광이 많다. 인류의 번영과 발전을 위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개인에게도 영광이지만 역사에 유익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의 이름을 인정해 주는 정도의 가치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숙한 것을 가지고도 훈장을 만들고, 기념패를 만들고, 학위를 달아주고, 박수 치고 떠들썩한다. 개인적으로 기쁨과 격려가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인위적이고 인본적인 영광일 때 문자 그대로 ‘녹슨 영광’이 되고 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오셨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사셨다(요 1:1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영광된 삶으로 전생을 드리셨다. 그분의 삶을 닮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을 드렸던 인물들을 보라. 그들은 역사의 주인공들로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은 역사를 그들의 손에 맡기셨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찬양을 담은 헨델(Handel)의 오라토리오 중 「메시야」에 나오는 「할렐루야」의 합창을 들으면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림에 감격하게 된다. 헨델 자신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시를 느껴 눈물을 흘리면서 작곡했다고 한다. 영국 황제(George Ⅱ세)가 참석한 가운데 1743년 4월 13일 런던시에서 이 곡이 연주되었을 때 왕은 그 감격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다 같이 기립할 수 있는 삶을 이 주기도문 송영을 통해 드릴 수 있어야겠다. 종교 개혁자들의 신앙은 「오직」이란 특색 지은 강령으로 일관한다.

우리의 구원의 길은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Sola Gratia, Sola Fide)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근거를 위해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고 했으며 우리의 신앙의 대상(Object of Faith)은 「오직 그리스도」(Sola Christo)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의 목적(Object of Life)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a Deo Gloria)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고백했다.

교회를 건축하는 일터에 석공 세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에게 “왜 일하느냐”고 질문을 하자, 그는 “죽지 못해 일한다”라고 대답했다. 또 한 사람에게 물었더니 “돈을 벌어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한다”고 하였다. 셋째 사람에게 물었더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세 번째 사람은 생의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까지 끌어 올려 인생을 산 사람이다.

인류 최대의 목적이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주기도문의 송영 속에서 우리의 신앙과 삶의 목적이 어디에 있든지 현주소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그 어떤 것과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과 대치될 수 없다. 사생관(死生觀)도, 우주관도 그분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때로는 칠흑 같은 인생의 암흑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을 몽땅 던져야 한다.

사도 바울의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주기도문의 송영에서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찬양을 드릴 수 있다.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My Lord), 나의 하나님(My God)으로 영접한 이후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Do all to the glory of God)는 문구를 좋아하여 사무실이나 기도실이나 책상 앞에 써 붙여 놓곤 했다. 이 글을 볼 때마다 다시 한번 나의 자세를 살펴보며 말씀 안에서 바른 삶의 자세를 가지려 노력한다. 그러는 동안에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의 두 가지 자세를 배우게 해 주셨다.

한 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기도의 자세이다. 구약 성경 시편에서 성도의 간구의 말씀(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시 86:3/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시편 86:6)에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고 열심으로 부르짖고 간구할 때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간구를 들으시고 ‘은총의 표징’(시 86:17)을 내게 보여 주시는 것을 체험한다. 그러면서 날마다 그 귀하신 축복 속에 주기도문의 송영을 드리는 것은 서슴없는 나의 믿음의 고백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찬양의 자세를 배우게 하셨다. 시편 119편 164절의 말씀처럼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Seven times a day, I praise you)하려고 노력하며 실천했다. 나의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시작한다. 온몸과 정성을 다해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부터 드리는 찬양은 내 기도의 문을 활짝 열게 해 주시는 은총으로 이어지고, 회개와 감사, 간구(교회, 전 세계의 영혼들에 이르기까지)가 계속되게 한다.

넷째,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지금까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라는 송영의 종목을 다루어 보았는데, 이제 송영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원히’ 드려진다는 의미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주기도문 강해를 처음 시작할 때 서론 부분에서 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전반부의 모든 본문은 송영에서 ‘아버지’를 찬양함과 연관 관계를 가지게 한다. 이 어휘에서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하며 하나님께 영광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도의 근원과 능력과 시작과 결론과 응답과 해결이 다만 하나님 아버지께만 있음을 확인시킨다.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라는 이 간구는 얼마나 우리에게 큰 격려가 되는 간구인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곁에 계신다는 것과 아버지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는 귀한 기도이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피의 공로로 구속하시고,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롬 8:15, 갈 4:6)라 부를 수 있는 양자의 영을 허락하셨음을 찬양해야 한다.

아바 아버지로서 그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다 나누어 주신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과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시 103:13)라고 하셨다. 우리가 자녀들을 키운 경험에 비추어 우리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무조건 달라고만 하는 자식은 주면서도 서운하고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존경하면서 달라고 할 때 서운함이나 마음 아파함이 없이 기쁨으로 준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여 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마음에 기뻐하시도록 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높여 드리며, 존경해 드리며, 기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찬양하는 그의 자녀들로서 간구해야 함을 송영의 이 어휘에서 볼 수 있다.

2) 주기도문의 모든 본문은 송영의 마지막 어휘인 ‘영원히’라는 찬양과 함께 영광을 가진다. ‘영원히’란 말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권세와 영광은 영원하시다’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며 기도의 완전성과 명확성, 영원성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벵겔(Bengel)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의 아들의 전수가 그들 신앙의 편력의 종점에 다다랐을 때 하늘에서 순수한 송영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것이며, 나라는 임하였으며, 뜻이 이루어졌으며, 우리의 죄를 사하셨으며, 시험을 그쳤고, 우리는 악에서 구함을 받았나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그의 것이니이다. 그리고 아멘”이라고 하여 뒷받침해주고 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영광스러운 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시 90:2)이시다.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기도의 총결산이요, 모범적인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

‘영원히’라는 이 어휘는 얼마나 장엄하고, 우주적이고 소망을 주고 있는가! ‘영원히’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주 사용했는데, 영원한 미래의 세대를 부인하는 이단에 대항하여 사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땅 위에 피조물들의 세계에는 영원한 것이 없고 세속적인 모든 부귀, 영화 등은 쇠퇴하고 사라진 것을 본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화려하고, 장엄하고 우아한 어떤 예술품과 문학 작품, 과학과 지식 등 모든 것이 결코 영원한 것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사랑도, 우정도 진실되고 영원한 것이 없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영원의 형상을 심어 주셨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창 1:26~27). 우리는 하나님만이 영원하시며, 여호와 하나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어떤 변화도 받지 않고 감소되지도 않으며 끝을 모르는 영원하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무엇인가? 새 하늘과 새 땅(계 20:1)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그 놀라운 실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과 천군 천사들의 찬양을 영원토록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모범적인 기도인 주기도문을 바로 이해하며 송영으로 기도를 마무리 할 때, 시간의 세계를 넘어선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며 현재의 것들을 미래와 연결하여 영원한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해야 하겠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0~21) <계속>

김석원 목사
국제기도공동체(GPS, Global Prayer Society)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
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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