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미얀마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안 보이고 장기전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도 4월 초 미얀마에서 나오기 전까진 억압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에 외출했다가는 언제 총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낮에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격하게 시위한 흔적을 보게 되면 불안과 공포를 느꼈어요. 초기엔 군부가 물대포, 최루탄, 고무탄을 쐈다면, 3월 중순부터는 기동병력이 바로 출동해서 총으로 대응했거든요. 시위대들도 이전처럼 대규모 시위는 못 하지만, 생명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저항 운동을 하고 있었어요.”

H선교사는 지난 4월 초 미얀마를 나올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군부는 쿠데타 이후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을 제한했다. 이를 어기면 언제든 군부의 총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극도로 불안하고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 무선 인터넷과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도 완전히 차단되고, 위성 안테나도 단속하며 철거하기도 했다. 폭력적 진압을 세상 밖에 알리길 원치 않는 군부는 인터넷, SNS 차단과 함께 군부를 반대하는 민영 신문사, 방송사를 폐지하고, 오직 군부 TV와 신문만 운영하면서 언론을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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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11년째 사역하다 한국에 일시 귀국한 H선교사(좌)와 사모 C선교사(우)를 만나 인터뷰했다. ⓒ이지희 기자

미얀마에서 11년째 사역하다 일시 귀국한 H선교사는 “계엄령 지역에는 학교나 큰 절 같은 곳에 군인이 주둔하면서 시위주동자, 적극가담자 명단을 확보해 밤에 마을을 돌아다니며 색출하는 일을 했다”며 “미얀마를 나오기 전에 사역지가 있는 흘라잉따야 지역에 가 봤더니 지역주민의 70%가 이미 고향으로 피신한 상태였다”고 했다.

“군부는 시위 주동자뿐 아니라 이유 없이 젊은 사람들을 잡아가기도 했고, 그들과 오해나 잘못 시비가 붙으면 누구든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한 교인은 너무 신변의 위협을 크게 느낀 나머지 집 부근 들판에 구덩이를 깊이 파서 밤에 군인이 오는 것을 대비했습니다. 제가 ‘플래시를 비추면 다 보이는 곳인데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 교인은 ‘위협과 공포가 너무 심해 조금이라도 안전한 구덩이라도 파서 잠시 피신하려고 한다’고 말하더군요.”

시위 사진을 핸드폰으로 남기는 것도 위험했다. 군인들이 불시 검문을 하여 핸드폰에서 시위 사진이 나오면 핸드폰을 뺏기거나 연행되기 때문이다. 식료품은 큰 마트에서 살 수 있었지만, 시내나 시외 상가의 70~80%는 문을 닫았다. 간혹 군인이 다니며 가게를 약탈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두려워하는 이유도 있지만, 대다수는 군부의 정책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시민불복종운동에 동참한 것이었다. 대부분 은행원도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해 그가 있을 당시 은행 업무도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졌다. 군부는 하루 혹은 일주일에 한 번만 출금 한도를 대폭 낮춰 ATM 기기로만 현금을 인출하도록 했는데,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3~4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사진이 이루어졌다. “ATM 기기에서 돈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점심 도시락을 싸 와서 길거리나 건물바닥에 앉아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기기에서 돈이 떨어지면 모두 한숨을 쉬며 돌아가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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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이후 빈곤층에게 쌀과 식용유, 양파, 감자, 옷 등을 나눠주며 구제사역을 했다. ⓒH선교사

H선교사는 코로나를 거치며 경제가 어려워진데다가 쿠데타 상황까지 겹치면서 미얀마에 빈곤층이 더 늘어나는 상황을 우려했다. 유엔개발계획은 내년 미얀마의 위기가 인구의 절반을 빈곤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도 지난 4월, 6개월 내 340만 명이 식량부족 위기에 놓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민주화 10년 동안 미얀마는 연평균 6% 이상 성장했는데 세계은행은 올해 미얀마 GDP가 10%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았다”며 “이는 저개발국가로서는 심각한 경제적 타격”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의 전망에 대해 H선교사는 “국민통합정부가 시민방위군을 조직해 소수민족군을 아우르는 군대를 만들고 있다. 미얀마 군인은 40만 명, 경찰은 10만 명 이상인데, 제가 보기에 시민방위군과 소수민족군들을 합치면 10만 명 내외로, 병력과 장비 면에서 절대열세”라고 했다. 하지만 군부보다는 시민방위군이 장기전에 더 강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국제 사회에서 시민방위군은 소수민족군을 아우르고 국제 여론을 긍정적으로 조성하면서 힘을 키워 군부와 싸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얀마 국민의 민주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심지어 군대가 주둔한 한 도시에서도 아웅산 수지 당이 2015년 총선보다 작년 11월 총선에서 더 많은 표를 얻어 승리하니, 군부 여당이 상당히 당황해했어요. 군부는 힘은 있지만 여론이 쏠리지 않아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저항은 계속되지, 경제는 붕괴될 상황이지, 여러 면에서 계획과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니 딜레마에 빠진 것이지요. 반면에 민주세력 측은 힘은 적고 유엔과 국제 사회가 도와주지 않고 있지만... 국민적 지지가 높아 이를 바탕으로 계속 저항하며 투쟁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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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은 펌프질로 물을 끌어 올리는 방식인데, 햇빛과 비를 차단할 수 있는 지붕도 만들어주고, 전기가 있는 지역은 전기로 펌프를 돌려 물을 끌어올리도록 했다. ⓒH선교사
“예배사역 길 막히니 구제사역, 우물 파기, 사랑의 집 사역 길 열려”

한편, H선교사는 “작년 아웅산 수지 정부에서는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이동을 제한하고, 예배도 제한하여 주일에도 거의 사역지에 나가지 못했다”며 “군부의 억압이라는 큰 이슈 때문에 코로나 방역이 느슨해진 요즘엔 오히려 예배와 다른 사역들이 다시 일어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기존 예배사역, 심방사역이 위축되면서 H선교사는 작년부터 늘어난 빈곤층을 대상으로 구제사역을 시작했다. 현지 사역자들과 더불어 형편이 힘든 교인들을 관리하고, 빈곤층에게 쌀과 식용유, 양파, 감자, 한국에서 수입한 재활용 옷 등을 나눠주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반찬이 별로 없어 밥을 식용유에 비벼 먹기도 하고, 요리할 때 기름을 많이 사용한다”며 “쌀집에 가면 항상 쌀과 식용유는 기본으로 구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세탁, 샤워 등에 필요한 생활용수가 부족한 지역을 위해 작년 초부터 최근까지 13개의 우물을 파주는 사역을 했다. “주민이 직접 판 우물은 물에 흙이 섞여 누렇습니다. 그 물을 마시지는 않지만 생활용수로 사용하거나, 간혹 항아리에 담아 이물질이 가라앉으면 위의 맑은 물을 마시기도 해요. 이들이 깨끗한 생활용수를 얻고, 또 수질이 좋은 지역에서는 식수를 얻을 수 있도록 비용이 더 들더라도 우물을 더 깊이 파서 좋은 물이 나오도록 했습니다.” 펌프질로 물을 끌어 올리는 방식인데, 햇빛과 비를 차단할 수 있는 지붕도 만들어주고, 전기가 있는 지역은 전기로 펌프를 돌려 물을 끌어올리도록 했다. 이렇게 판 우물은 한 곳당 3~12가정까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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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한 곳당 3~12가정까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사역을 통해 마을에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기도 했다. ⓒH선교사
우물을 파준다고 현지인이 모두 교회에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셔서 들판에 있는 한 마을에는 작은 교회 공동체가 생기기도 했다. “현지 사역자가 전도하는데, 들판에 있는 한 집에서 자기 집에 우물을 파주면 10가정이 같이 사용하겠다고 했어요. 다른 곳보다 두 배는 더 깊이 파야 하는 곳이라 비용이 두 배 더 들었지만, 우물을 파주었더니 우물을 요청한 가정과 다른 가정까지 두 가정이 모여 현지 사역자와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또 이 지역의 아이들 20여 명도 교회에 나오게 되어, 현재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H선교사는 ‘사랑의 집’ 사역도 시작했다. “약간의 땅에 대나무로 집을 짓고 사는 현지 교인들의 집을 심방하였는데, 집이 너무 남루했습니다. 벽은 합판, 바닥은 나무로 번듯하게 집을 지어주었더니 온 가족이 너무 기뻐하고 행복해했습니다.” 다른 지역에도 네 채의 사랑의 집을 세워 주었다. “그 계기가, 하루는 심방을 갔는데 60세가 넘은 과부 할머니가 비스듬히 기울어진 대나무집에 살면서 너무 힘들어 하고 심란해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대나무집 자재와 목수 인건비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가족들이 힘을 합쳐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새집이 너무 좋다며 인근에 사는 딸 내외와 아들 내외까지 들어와서 같이 살게 되었어요. 가족이 많아져 너무 복잡해지자 교회에 나오는 딸 내외를 위해서도 집을 따로 지어주었어요. 인근의 전도대상자와 허물어져 가는 교인 가정의 집도 새로 지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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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사역으로 지어준 집. 사랑의 집을 지어줄 때는 현지 사역자와 상의하여 교회와 다른 교인에게 부작용이 없을지 물어보고, 전체 형편과 사정에 맞는 집을 지어준다. ⓒH선교사
집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은 합판과 목재로 제대로 지은 곳은 200만 원, 나머지 대나무로 지은 네 곳은 각각 20여만 원이 들었다. 또 지역마다 다른 방식과 형태로 집을 지었다. H선교사는 “미얀마인 월급이 약 15만 원, 공장에 다니면 20만 원인데, 사랑의 집을 지어줄 때는 현지 사역자와 반드시 상의하여 교회와 다른 교인에게 부작용이 없을지 물어보고, 전체 형편과 사정에 맞는 적절한 집을 지어주려고 신경 쓴다”고 말했다. “코로나와 쿠데타로 예배는 많은 억압을 받았지만, 구제사역과 우물사역, 사랑의 집 사역으로 풍성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펼칠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평상시보다 더 바쁘게 보냈는데 은혜와 보람이 있었습니다.”

“미얀마의 민주화, 미래 세대, 현지인 사역자 위해 기도 부탁”

이날 H선교사와 동행한 사모 C선교사는 작년 7월에 한국에 나왔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는 그는 “이번 사태로 미얀마를 위해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의식이 깨어있고 아까운 지식인과 청년들이 많이 죽어 나갔다”며 “미얀마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희생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속히 민주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로, 쿠데타로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들을 잃고 유가족이 된 미얀마인들이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하고 우울해한다”며 “희망과 소망이 없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회복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같이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C선교사는 현지인 사역자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요청했다. “미얀마 선교 역사는 200년이 넘었지만 기독교 비율이 6%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래도 현지인 사역자들, 목회자들, 신학교들이 있어 이번에 의식이 더욱 깨어나고, 물질적인 부분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애타게 부르짖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깨어 있는 주의 종들과 사역자들이 더 많아져 미얀마 선교의 방향과 비전이 새롭게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얀마 현지에 남이 있는 400여 명의 한국인 선교사, 사모 선교사,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H선교사도 미얀마를 위해 기도제목을 나눴다. “미얀마 사태가 안정되어 군정이 종식되고 민주화를 회복할 수 있도록, 국제 사회와 유엔이 미얀마를 도울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미얀마 경제가 상당히 악화되어 실업자와 빈곤층이 급속히 늘고 있는데 그들에게 식량이 공급되고 일자리가 생길 수 있도록, 현재 상황이 내전으로 치닫거나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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