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서 40여 년간 빈민굴에서, 가난과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소외된 지역에서 생명 바쳐 일하던 김영화 선교사가 코로나19로 숨졌다. 그는 GMS 선교사로 가장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일하던 선교사였으므로 더욱 안타깝다. 그보다 1주일 전에 고정옥 사모도 코로나로 양쪽 폐가 다 망가져서 목숨을 잃었다.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죽는 것이 영광이라지만, 그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선교는 순교할 각오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선교는 곧 순교라고 말해도 좋을 듯싶다.
나는 전 세계에 수많은 제자들이 선교사로 나가있음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것 또한 하나님 앞에 감사한 일이다. 첫 번 선교사인 사도 바울처럼 언어와 풍속과 문화가 다른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한 거대한 영적 전사로 최전선에 서 있는 셈이다.
나는 50년 전에 금세기의 탁월한 선교학자들 밑에서 공부해 봤지만, 선교사로서의 소명은 없었기에 선교사들을 키우고 양육하면서 선교사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일을 해 왔다. 그래서 나는 오대양 육대주에 여러 선교지를 직접 방문하고 선교사들을 위로 격려를 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아르헨티나의 김영화 선교사의 선교지를 두 차례나 방문하고 현지 교회에 집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영화 선교사는 좀 특이한 분이었다. 그는 일찍이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했고, 교육을 받았음으로 제대로 신학공부를 해서 카톨릭 국가인 아르헨티나에서 선교 사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1980년에는 나는 총신대 학장(총장)이었고, 미국 L.A에 있는 미주대회신학대학에서 공부하던 김영화를 만났다. 그때 나는 그에게 말하기를 “여기서 공부하지 말고, 귀국해서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으로 오면 장학금을 주겠다”고 하여 총신으로 불러내었다.
김영화는 참으로 탈렌트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목사가 되어 선교지 아르헨티나로 파송 되었다. 그는 스페인어에 자신이 있었고, 특히 그의 주특기인 카우보이 모자를 둘러쓰고 통키타를 연주하면서 부르는 스페인의 전통가요와 찬양은 듣는 이들의 혼을 빼버린다. 그뿐 아니라, 그는 대광고등학교에서 배운 실력, 한양대학교 시절에 연극 반에서 활동하던 것을 십분 발휘해서 선교현지에서나 한국에 일시 귀국했을 때 그는 천상 대중을 사로잡는 복음 전도자였다.
나는 김영화 선교사의 선교 현지를 보면서 너무너무 놀랐다. 그는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엄청 멀리 떨어진 가장 취약하고 가난하고 알콜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들이 우글거리는 인간 쓰레기장 같은 곳에 선교지를 선택했다. 거기는 해충과 독사가 우글거리고, 말을 타고 다녀야 할 그곳에 복음의 닻을 내렸다. 그는 선교센터를 지어 아무도 시도하지 못한 FM 스페인어 방송국을 만들어 가시권 1,000만 명에 100만 명이 청취하는 방송국으로 그 주변을 찬양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했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는 말할 것도 없고, 알콜에 찌들고 폭력과 도적질에 길들여진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교도소 전도와 그 나라 사람들은 꿈도 못 꾸는 재활치료 전도를 하고 있었다.
김영화 선교사는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선교사이다. 그는 2년에 한 번 정도는 꼭 한국을 방문하였다. 한국 방문을 앞두고는 그는 반드시 내게 전화를 했고, 도착하면 제일먼저 내게 와서 선교 보고를 하고 기도를 받고 갔다. 김영화 선교사는 사실 변변한 선교 후원 교회도 없었으나, 홀로 사신 어머님이 전 재산을 아들의 선교사역을 위해 온전히 바친 셈이다. 그래서 여러해 전에 나는 그를 연세대학교에서 수여하는 언더우드 상을 받는데 적극 추천을 했었고, 수상하는 날 나는 친히 가서 축하도 해 주었다.
김영화 선교사는 멋진 선교사이다. 그는 방송선교에서나 현지인들을 가르칠 때도 늘 칼빈주의 사상을 교육시켜 로마 카톨릭 주의를 교정하려고 애썼다. 늘 그의 외침은 이렇다. “비바 알르젠틴! 비바 코리아! 비바 크리스토스!”
그는 어떤 단체장을 만나든지 사무실에 입장을 할 때마다 미친 사람처럼 “알르젠틴 만세! 코리아 만세! 그리스도 만세!”를 외쳤다. 그래서 그는 그 도시에서 주는 자랑스런 시민 상을 받았고 대통령의 초대까지 받았다.
그리운 김영화 선교사, 영화 같은 사나이, 영화 같은 선교사, 영화같이 복음을 위해 살다간 김영화 선교사가 그립다.
선교는 순교니까....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