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 선교사, 故 고종옥 선교사
▲지난 2013년 제13회 ‘언더우드 선교상’ 수상을 위해 방한해 기념사진을 촬영한 당시 김영화 선교사(좌)와 고종옥 선교사(우). ⓒ연세대학교
아르헨티나에서 39년째 도시 빈민과 농촌 오지 선교 등에 앞장서 온 김영화 선교사(GMS)의 사모 고종옥 선교사가 11일 오전(현지시각) 코로나19로 소천했다.

지난 4일 김영화 선교사의 온 가족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긴급기도제목이 SNS에 공유된 지 일주일 만에 사모 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당시 김영화 선교사는 눈과 허리에 심각한 통증으로 고통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고, 사모 고종옥 선교사는 폐 두 개가 모두 망가져 혼수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으며, 아들은 폐 하나가 망가져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로 치료 중으로 알려졌다. 딸도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김영화 선교사와 고종옥 선교사는 1970년 일찍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김 선교사는 현지에서 신학을 마치고 1983년 예장합동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한인 동포로는 처음으로 GMS 선교사로 임명됐다. 선교사 부부는 첫 사역지로서 메소티소 종족 원주민을 위해 ‘자누라교회’를 개척해 복음을 전했다. 사역지에 들어가려면 말을 타야 했고 독충과 독사, 맹수의 공격을 받는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회가 성장하여 6개월 만에 130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김영화 선교사 부부는 신학교육을 통한 현지인 목회자 양성에도 힘썼으며, 원주민을 대상으로 계몽사역과 아르헨티나식 새마을운동도 벌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북쪽에 위치한 위성도시 라 마딴사 시에서는 사재를 털어 빈민가에 ‘엘 브엔 빠스똘 선교센터’를 세워 마약, 알코올 중독자, 에이즈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무료 급식소 사역과 자활센터를 운영했다. 김 선교사 부부는 교도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재소자 출소 후 자립을 위한 기술교육도 병행하여 실시했다.

1990년에는 스페인어로 진행하는 FM 라디오 방송국 ‘MISSION 2000’을 개국, 가청권 1,000만 명, 고정 청취자 100만 명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 라디오 방송은 수십 개 지역교회 목회자가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며, 2011년에는 방송 사역을 확장하여 인터넷 방송국도 개국했다.

이에 김 선교사는 2005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서 최초로 한국인이자 개신교 선교사로서 라 마딴사 시의 ‘자랑스런 시민상’을 받았다. 2013년에는 연세대 설립자 언더우드의 정신을 기념하여 국내외 오지에서 헌신적으로 사역하는 선교사에 수여하는 ‘언더우드 선교상’을 수상했다.

김영화 선교사의 인생의 동반자이자 선교 동반자로서 한 길을 걸어 온 고(故) 고종옥 선교사의 안타까운 소천 소식이 알려지자 동료 선교사들은 “천국의 소망 가운데 고 고종옥 선교사님 유족에게 위로와 평안을 빕니다” “펜데믹 시대, 가장 아끼시는 분들을 천국으로 부르시다니 안타깝고 애통합니다.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이 저들에게 고통을 이길 힘을 주옵소서. 모든 장례 절차 속에도 함께해 주세요” “우리도 천국에 가기 전 부지런히 사명에 충성하겠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당하고 계시는 모든 선교사님을 치료하여 주옵소서”라며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