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 사이는 혈연과 사랑이라는 끈끈한 사이로 맺어져 있어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이이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부모의 뜻만 따르기를 강요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상하관계가 될 수 있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삶에 필요한 것을 제공 받아야 하므로 부모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 아동 학대 사건의 가장 많은 가해자가 친부모라는 통계의 결과가 말해주듯이 양육을 하는 부모의 양육 태도에 따라서 자녀는 천국에서도, 지옥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훈육이라고 착각하며 던지는 언어들이 자녀의 가슴을 후벼 파는 언어폭력으로, 자녀의 신체에 가하는 체벌들이 되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상처들로 남아서 다음에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자신이 낳았다는 이유로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녀의 인생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하려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삶의 방향을 결정해버리고 따라와 주기를 바란다. 자녀 편에서 보면 벽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답답한 삶이 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청소년예배를 드리는 청소년들을 살펴보면 부모님들이 교회에 다니는 청소년들로 대부분 구성되어있다. 이는 믿지 않는 청소년의 전도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며, 다른 말로는 청소년들이 친구를 교회로 인도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기독교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교회는 더는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시켜서, 부모님이 강요해서 교회에 출석해왔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교회 출석이 자발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말씀 안에서 바로 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자녀들이 어릴 적부터 가정에서 예배의 훈련을 쌓아야 한다. 또 자녀들 앞에서 신앙에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바닷가에 게처럼 자신은 옆으로 걸으면서 자녀에게 반듯이 걸으라면 걸을 수 있겠는가? 밖에서 보이는 신앙인으로서의 부모의 모습과 가정 안에서 자녀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일치할 때 비로소 자녀들이 참된 신앙인으로 성장 되는 것이다.
노은영 작가(사회복지학 석사, 청소년 코칭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