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개념 적용을 위한 일터 교회, 일터 사역
일터 교회와 일터 사역의 현장은 비교적 성경의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는 과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에서는 사무실이나 직장 안에서의 믿음의 활동을 일터의 모임이며, 그에 따른 공동체의 활동으로 보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과 일터 사이를 분리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며 신앙의 목적을 위하여 모임을 갖는 것이 ‘일터 교회’ ‘일터 사역’의 개념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연유로 예전의 직업관이나 노동-일에 대한 관념을 재도입하여 본래의 성경이 말하는 개념을 확인하면서, 일-노동에 있어서 종종 간과되었던 일터 영성 성숙의 사역적 중요성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현장 경험을 통해서 얻는 일의 신학
일터에서의 영성 성숙을 연구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배경은 일터 신학은 상아탑에서의 학문적인 노력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리젠트칼리지에서 ‘장터 신학’(Theology of Marketplace)과 ‘리더십’(Leadership) 분야의 교수를 역임한 바 있는 폴 스티븐스(R. Paul Stevens)는 자신의 일의 현장에서의 경험에 신학을 응용하여 일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일의 신학’은 근대적 신학 개념으로서 서방으로부터 소개되기 시작했다.(R. Paul Stevens, Work Matters: Lessons from Scripture, 주성현 역, ‘일의 신학’, (서울: 도서출판 CUP, 2014), 13-15.)
스티븐스 박사는 워싱턴주 시애틀의 바켄대학교와 싱가포르의 비블리컬신학대학원의 교수이기도 하다. 철강회사 CEO이던 부친 밑에서 잡역부부터 건설 분야, 회계, 사무직 등을 경험했다. 이런 경험으로 예배당 안에 갇힌 신학이 아닌 삶의 현장을 신학의 무대로 ‘생활 신학’을 터득하게 된 것 같다. 저서로는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 ‘일 삶 구원’ 등 30여 권이 있다.
스티븐스 교수가 ‘삼위일체 신학’ ‘창조 신학’ ‘성령 신학’ ‘하나님 나라 신학’ 등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논리는 일에 대하여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인 체험을 통하여 신학적 주제로 풀어가야 함을 말한다.(Stevens, Work Matters, 16-17.) 앞으로 한국교회에서 필요한 일의 신학은 일터에서 형성된 믿음의 공동체와 신자들의 일터 경험들을 주된 관찰 대상으로 삼아 이러한 현장을 위한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그리고 실천신학이 함께 하는 구조여야 할 것이다.
제도적 노동은 일터 사역을 일으키는 수단
빌 하이벨스는 ‘노동-일’은 그 어떤 만족을 제공하는 통로라고 한다. 많은 사람은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이후로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거의 느낄 수 없거나 느끼기 힘들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도적 그룹인 직장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업무를 마치면 그 대가로 짧지만 만족감을 갖는 것에 대한 표현을 이렇게 한다.
“일하는 사람들은 복잡한 서류에 사인을 하고 상당한 액수의 거래를 마친 영업사원, 논문의 마지막 페이지를 끝낸 학생, 막내 아이를 잠자리에 재운 엄마,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한 의사, 추수를 끝마친 농부, 앙코르 연주까지 마친 음악가, 청소를 다 마친 일용 잡역부, ‘수업 끝!’하고 말하는 선생님, 마지막 벽돌을 쌓은 벽돌공 등 이 모든 사람은 일생 노동-일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는 행복한 순간을 수없이 맞이했을 것이다.”(Bill Hybels, A Christian at work, 독고엔 역, ‘직장 속의 그리스도’, (서울: 도서출판 한세, 1994), 21-22.)
빌 하이벨스 목사는 미국 일리노이 주의 남 베링턴에 소재한 윌로우크릭교회(Willow Creek Community Church)의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으며 유명한 설교가이자 작가이며, 상담가이다. 여러 저서가 있으며, 늘 수많은 성도와 직장 속의 그리스도인들을 상담하며 치유하고 있다.
하이벨스의 이러한 진단은 본 논문의 관심사인 일터에서의 영성 성숙을 통한 만족감과 연결된다. ‘노동-일’을 통한 그 성취감 그대로 행복을 쟁취하는 것(시 128:2, 살전 4:11~12)이라고 성경은 증거한다. 성취감을 쟁취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부여된 일을 하여 그 대가로 외부 사회에서 궁핍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직장)에서 성취감과 행복을 얻고 있는가? 그리스도인 그룹은 집단적 공동 목적으로 노동-일을 어떤 형식으로 추구하고 있는가? 한 인간으로서 이런 일-노동의 수단을 통해 그들이 사회적인 요구에 응하면서 일터 교회와 사역을 위한 공동체를 꿈꿀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필자는 이러한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들을 수집하며 이에 대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평가를 나누려 한다.
일터 사역 공동체 교회의 필연적 수용
“일터에서 일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적법한 형태의 교회라는 새로운 개념은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혁명적 발상이다”라고 와그너가 피력한 것을 보면(Peter Wagner, The Church in the Workplace, 이건호 역, ‘일터교회가 오고 있다’, (과천: WLI KOREA, 2014), 18.) 일터 교회에 대한 발상과 도입은 전통교회 위에서 이천 년 동안 굳어온 상황에서 매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된다. 그러나 와그너는 어차피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늘의 상황이 일터 교회라는 새로운 이슈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상황에 놓여 있음을 직시했다.
새로운 일터교회의 주체는 지역교회와 이미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된 그리스도인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궁극적으로 사회변혁을 이루어가야 하는 ‘대위임령’(Great Mandate)이 주어졌다. 그러나 직장 안에서 일터의 신앙공동체에 대한 지역교회의 부담감은 그 필요만큼 비례하며 드러나고 있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삶의 현장에서 거룩한 ‘일터 교회’라는 적응이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국내 기독교계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장에서의 일터 교회 공동체들이 설립되어 각자의 일을 통하여 아모스 5장 24절의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흘려보내며 사회변혁의 주축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기존의 지역교회와의 대립이나 분리가 아니라, 일터 교회와 지역교회가 협력하는 비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