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씨티교회
▲수도권 교회의 대면예배가 금지되면서 서울시티교회는 4개월 만인 지난 23일 교회 주차장에서 드라이브인 예배를 드렸다. ⓒ서울씨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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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서 서울씨티교회 목사는 “신앙생활은 낭만이 아니라 전투이며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라며 “고난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세상 탓, 권력과 권세 잡은 자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씨티교회
서울씨티교회 주일 드라이브인 예배 설교

제목: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본문: 시편 11편 1~3절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다윗은 시편 11편 1절에서 고백합니다. 나는 주 안에 있다. ‘인 더 로드(in the Lord)’라고 쓰여 있어요. 좀 더 자세히 해석하면 나는 주 안에 피난해 와 있다 라는 말씀입니다. 문장 구조로 보게 되면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최악의 위기 속에 있는 겁니다. 사울 왕으로부터 지금 쫓김을 당하고 있습니다. 언제 잡혀서 죽임을 당할지 모릅니다.

사무엘상 16장 2절을 보면 사울 왕은 3천 명의 사람들을 동원해서 다윗을 잡아 죽이려 다닙니다. 다윗의 측근인 부하들이 말합니다. 새가 날아서 산으로 가듯이 빨리 달아나라고 요청을 하는 장면이 11편 1절에 있습니다.

시 11:1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절에서 다윗에게 최악의 위기를 알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 11: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그러면서 시 11편 3절에서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여기서 터라고 하는 말씀은 근간을 이야기합니다. 파운데이션입니다. 기초입니다. 기간을 말합니다. 근간이 되는 기간이 되는 아주 중요한 것들이 무너졌다는 거죠. 삶의 기초이며 상식도 무너졌습니다. 도덕, 의, 법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졌어요. 염치도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덕도 없습니다. 잔인하고 서로가 죽이고 거짓말만 해대는 윤리 없는 세상입니다. 법은 사라졌습니다. 억지와 궤변과 그리고 큰소리들만이 세상의 힘이 되었고 법이 되는 그런 사회, 그것이 바로 터가 무너진 사회입니다.

다윗은 이런 형편과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찬양을 합니다. 4절에서

시 11: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시 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시 11: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시 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시편은 전체가 150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체는 여러 가지 장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탄원시도 있고 찬양시도 있습니다. 여러 장르 중에서 가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오늘 이 11편은 탄원시가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기원 간구가 있어야 탄원시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시편 11편은 기원하는 것, 간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탄원시로 분류를 안 합니다. 구약학자 궁켈은 말하기를, 신뢰의 시라고 분류를 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계 온 세상이 시끄럽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많은 정치인들은 서로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자기 정치 이익을 위해서 간교한 계교들을 부리고 이용들을 하고 있습니다. 뉴스 텔레비전만 켜면 교회와 목사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옵니다. 어떤 순진한 목사님은 자기를 목사라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창피하답니다. 목사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무시당하는 것을 감당 못 하겠다고 하는 말씀을 하시는 목사님을 계신 것을 제가 봤습니다.

저는 이분을 순진한 목사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교회사를 공부 안 하신 것 같았다. 영적인 세계를 경험 안 한 것 같은 목사님입니다. 아주 순진하고 착한 분이시죠.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은 낭만이 아닙니다. 예수님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6절에서는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8~19절에 이런 말씀이 있죠.

요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5장 25절에서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진짜 신앙, 올바른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창세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계속, 하나님의 성회는,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공격이 있었습니다.

진짜 교회와 진짜 교인들에게는 마귀가 무너뜨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요. 그래서 죄가 문 앞에 서 있다고 창세기에 기록돼 있습니다. 마귀가 잠시 예수를 떠났더라고 마가복음 1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마귀는 계속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거죠.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1절에서도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에서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예수님이 분명히 시험에 들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 여러 군데 성경에 기록돼 있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신앙생활 낭만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전투입니다. 신앙생활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입니다. 지면 지옥 갈 수밖에 없어요. 미혹되고 타락돼서 같이 쓰러져 버리면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정말 엄청난 영적 싸움입니다. 성경을 깊이 공부 안 하고 교회사와 세계사를 깊이 공부 안 하면 교회에 대해서 오해합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찬사를 받는 곳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이상할 정도로 한국전쟁 이후에 큰 평안의 기간을 가졌습니다. 이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멋모르고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산으로 배가 가는 형국이 돼버렸어요. 마귀는 교회와 성도들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무너뜨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룻기에서도 다니엘서에서도 많은 예언서들이 이야기합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성경 전체가 이야기 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교회는 끊임없이 침노를 당하고 있고 마귀의 공격을 당하고 있어요.

우리가 현대사를 공부하더라도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공산 치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까. 교회가 폐쇄를 당했습니까. 목사들이 성직자들이 얼마나 많이 투옥됐는지 모릅니다. 캄보디아에서도 공산 치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는지 모릅니다. 북한에서도 공산주의 치하에서 수많은 목사와 그리스도인들이 학살을 당했고 교회들은 폐쇄됐습니다. 히틀러 치하에서도 극우세력들이, 또 얼마나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유린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죠.

벧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우리는 너무나도 평안한 시대를 살았었기 때문에 이것이 당연한 줄 알지만 교회사를 보면 하나님의 교회는 끊임없이 공격을 당했고 무참하게 많은 수치와 모욕과 아골 골짝 같은 그러한 깊은 죽음의 경지까지 교회가 간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서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그랬어요. 14절에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라고 분명히 치욕과 수치와 모욕과 죽음을 방불케 하는 어려운 일들이 초대교회에도 있었고 지난 역사 속에서도 있었으며 또 지금도 세상이 교회를 엄청나게 난타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당연히 교회가 가는 길이에요. 이것을 이상히 여기면 안 됩니다. 평안했던 것이 이상했던 거지 고난당하고 교회가 세상에서 욕먹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닙니다. 베드로전서의 배경은 무서운 로마시대의 핍박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서기 306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즉위하기 전까지는 지난 1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처참하게 유린당했고 순교당했습니다.

오늘 시편 11편의 배경은 사무엘상 22장부터 24장까지 기록되어 있어요. 사무엘상 22장부터 23장, 24장까지에는 다윗이 혹독한 고난의 시절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지어진 시가 시편 11편, 57편, 142편 등등입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울 왕을 피해가면서도 다윗에게 우리가 배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형제들과 가족들을 모압땅에 피신을 시키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리더십이에요. 자기만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조상 할머니가 룻이었기 때문에 룻은 모압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자기 가족들을 모압 지방에다가 피신시킬 정도로 다윗에게는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400여 명의 추종자들이 따라다녔어요. 이 사람들을 전부다 먹였고 안전을 지켜주었습니다. 사무엘상 23장 13절에 보게 되면, 600여 명의 사람들로 늘어난 장면을 봅니다. 400명의 사람들이 아둘람 공동체에 있었었죠. 그러나 23장에 가서는 600명으로 숫자가 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어요. 사무엘상 22장 1절부터 2절에

삼상 22: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시편 11편에서 다윗의 상황은 아주 위중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이 자기 손안에 갇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 환경적으로, 육신의 안목으로 분명히 사울 왕의 손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안에 있다고,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이라는 이 말씀으로 고백하는 장면을 우리는 시편 11편에서 배웁니다.

다윗의 고백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정치인들로부터 시작해서 이단사이비들까지 다 날뜁니다. 교회는 공공의 적이 됐습니다. 모두가 미친 듯이 철길에서 마주치는 기차들과 같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켜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유대력으로 지난 금요일부터 5780년 마지막 달이 시작됐습니다. 9월 18일이 5781년 새해가 시작됩니다. 우리 한국의 계절로는 9월 가을의 계절,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맞이합니다. 히브리인들은 마지막 달에 대속죄제를 하는 달로 정합니다. 마지막 달을 엘룰월이라고 합니다. 엘룰월을 아가서 6장 3절을 히브리인들은 묵상을 합니다.

아가서 6장 3절에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하나 됨을 얘기해요. 하나님과 하나 됨을 에카드라고 말합니다. 에카드가 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다른 사람 탓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원망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뉴스를 보더라도 공정하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공정하지 않아요. 편파적입니다. 아주 심히 교회에 대해서 편파적으로 공공의 적을 만들면서 공격해오는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내가 먼저 회개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 탓하거나 세상 탓하거나 어떤 권력, 권세 잡은 자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회개하는 거예요. 내가 회개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놀랍게 저 깊은 웅덩이에서 우리를 핀셋으로 건져주시듯이, 설탕 알맹이 하나하나 소금 알맹이 하나하나가 얼마나 작습니까. 그러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핀셋으로 하나하나 건질 수 있듯이, 잡을 수 있듯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이 험한 세상에서 이 깊은 웅덩이에서 우리를 핀셋같이 우리를 잡으셔서 저 높은 곳으로 우뚝 세워 올려주실 날이 오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장 37절에서,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하고 싶은 말 많이 있지만, 비판하지 마세요. 내 영혼이 더러워지고 내 온몸에 수백 가지 호르몬들이 밸런스가 맞지 않아서 언밸런스로 인하여 내가 먼저 쓰러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돼요.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렇게 주님은 말씀하세요. 하늘의 평화를 우리가 얻어야 됩니다. 주님으로부터 주신 그 평안을, 이 험한 세상 가운데서 경험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는 다윗과 같이 시편 11편 첫 고백과 같이 내가 주 안에 있다고, 내가 주 안에 피난해 있다고 담담하게 그리고 평안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이, 주의 성령이 우리를 덮으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다윗과 같이 주 안에 있는 것을 경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무엘상 23장 14절에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고 그랬어요.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산골에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사울 왕이 전권을 가지고 있어요. 왕이 잡아 죽인다고 하면 소망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그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자유케 하지 않아요. 권세를 가진 사람이, 그 누가 우리를 자유케 하지 않아요.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주 안에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겁니다.

시편 11편의 고백이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창문을 열고 손을 번쩍 드세요. 하나님 나를 살려달라고 1분간 기도합시다. 대속죄일을 맞이하여 주 앞에 회개합니다! 내 죄입니다. 우리는 언론 탓하지 않겠습니다. 정치인 특정교회 탓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내 죄를 회개합니다. 이 나라를 축복해주시고 함께해주세요. 내가 바로 서면 주님이 나를 올려주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할 때 놀라운 진보가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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