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할 수 없는 경쟁력의 원천이자 자산
기업은 적정 신뢰 수준 결정하는 지혜 필요
신뢰 회복하려면 진정성과 인내가 중요
신뢰의 구성요소
◈투명성
투명성은 ‘하나님 앞에서처럼 사람과 이해관계자에 대해 어떤 것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장차 심판대 앞에서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다(딤후 5:25)’는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시대이다. 인터넷으로 인해 열린 세상은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싶다. 만일 당신 회사가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알아낼 것이다’고 말한다. 기업이 고객 또는 종업원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그것을 찾아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 제품이 건강상 허용하는 기준을 제대로 지켰는지, 환경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용 정책과 근무 환경은 어떤지를 모두 밝혀낸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드러나는 세상이니까 어쩔 수 없이 투명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기독경영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라고 믿는다.
구체적으로는 투명성을 위해서는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 사항, 회계정보들을 이해관계자들에게 제대로 공개’해야 한다. 단지 공개하는 것뿐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이 원한다면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투명성은 회계 정보 등 주로 법적인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면 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경영인이라면 이런 소극적인 것을 훨씬 뛰어넘는 투명성을 갖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업의 의사결정, 행동 하나하나는 직원, 고객, 협력업체, 주주, 지역사회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기독경영인은 법적인 요구를 소극적으로 지키는 것을 넘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투명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투명한 경영정보, 품질내역, 업무처리 프로세스는 기업의 이해관계자를 우호적인 지지자로 만든다. 유한양행은 창업 이후 단 한 차례의 노사분규도 겪지 않았다고 한다. 경영진과 종업원 간에 기업 경영에 대한 정보 공유와 참여라는 열린 경영을 실천한 덕분이다. 세계적 일류기업인 P&G는 여러 번 공장 문을 닫고, 직원을 구조조정하고, 지역사회에 어려움을 끼친 일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관련 정보를 미리, 진정성 있게 공개했다. 이로 인해 고객과 지역사회, 직원들이 오히려 지지자들이 되어 주면서 수많은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
기업이 투명성을 가져야 한다고 할 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너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면 기업비밀이 외부에 알려질 위험이 있고 괜한 오해를 살 만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다른 기업이 노하우나 기술을 모방해서 정보를 공개하는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투명성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투명성은 기업전략이나 노하우를 모두 외부에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회사의 의사결정이나 경영정보 등이 이해관계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면 그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관계자를 위해 관련 정보를 적절한 수준에서, 진정성 있게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일관성
일관성은 ‘이해관계자를 대함에 있어서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동일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히 13:8)’이고, 그분의 제자인 우리에게도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라(히 6:11)’고 말씀하신다.
일관성이 있는 기업은 회사경영이 좋을 때든지 어려울 때든지 관계없이 항상 올바른 길을 간다. 회사가 순조로울 때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올바른 길을 가기가 비교적 쉽다. 올바른 길을 가다가 손해를 보아도 감당할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울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금만 방심해도 회사가 휘청거릴 수 있는 상황에서는 약간의 손해도 허용하기가 쉽지 않다. ‘정도를 지키다가 손해를 보아야 한다면 손해 보고 말지!’라는 말을 쉽게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어려움 속에서 일관성을 유지하여 성공한 세계 일류 장수기업도 있다. 바로 존슨앤존슨이다. 1982년 타이레놀 복용으로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전국에 있는 약을 모두 수거했다. 고객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경영 신조인 크레도(credo)를 일관되게 지키기 위해서였다.
반대로 75년간이나 명문기업으로 이름을 날린 일본 최고의 우유회사 유키지루시(雪印)는 일관성에 실패한 전형이다. 하얀 눈송이 모양의 상표는 청결과 건강을 상징했고,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국민 브랜드였다. 일본인의 식생활을 서구화시킨 공로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고객이 우유를 먹고 식중독을 일으켰는데 그 사실을 은폐하고, 거짓말을 하고, 계속 말을 바꾸면서 책임회피를 하였다. 청결과 건강이라는 핵심가치를 회사가 어려울 때는 지키지 않는 일관되지 못한 행동으로 결국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고 회사는 파산하고 말았다.
일관성은 경영자가 제시하는 경영이념이 직원들의 업무수행, 성과평가, 고객 관계 속에 일관되게 녹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기업은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것을 경영이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경영이념이 일선 직원에게까지 일관성 있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 직원들의 고객에 대한 태도가 문제이기도 하지만 상당한 경우 제도나 시스템에서 일관성을 잃은 것이 원인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경영자는 고객만족을 강조하지만 성과평가는 철저하게 이익만 따진다. 고객 불만으로 상품을 교체해 주면 그만큼 회사에 비용을 발생시키므로 직원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결국 위에서 말하는 것 따로, 현장에서 행동하는 것 따로 일수밖에 없다. 일관성을 위해서는 경영자부터 일선 직원까지 한마음이어야 하고 그것을 보장할 수 있는 평가와 업무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신뢰 경영을 위하여
신뢰는 ‘사회적 협력을 촉진하는 공유가치 또는 규범’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 낸다. 사회적 자본은 인적자본, 물적자본과 함께 기업경영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돈과 설비,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어도 직원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면, 즉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면 그 회사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사회적 자본이 형성된, 즉 신뢰도가 높은 회사는 에너지가 넘치고 어떠한 역경도 극복한다. 회사와 상사에 대한 직원 만족도가 높다. 서로를 믿기 때문에 자기 노하우,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공유한다. 협력을 잘 하기 때문에 상호 간에 시너지를 일으켜서 더 나은 성과를 창출한다. 이런 회사는 좋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고객들도 만족하고 더 큰 수익을 창출한다. 그 결과 기업의 명성은 높아져 헌신적인 직원, 고객, 공급자, 투자자들이 기업에 모여드는 선순환이 구축된다.
신뢰 경영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염두에 둘 것이 있다. 첫째, 신뢰를 위해서는 진실성, 투명성, 일관성 하나하나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세 가지 요소를 함께 갖추어야 한다. 신뢰를 이루는 진실성, 투명성, 일관성은 곱하기의 관계이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면 신뢰는 상실된다. 예를 들어, 진정한 목적과 가치를 지향하고(진실성), 경영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더라도(투명성), 상황이 어렵다고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신뢰받기 힘들다. 그만큼이나 신뢰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높은 신뢰 수준은 남들이 결코 모방할 수 없는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둘째, 적정한 신뢰 수준을 결정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때 어디까지 공개할지를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은밀하게 해야 할 M&A, 구조조정 계획을 투명성을 지킨다고 사전에 직원이나 이해관계자에게 알릴 경우 시장가치에 악영향을 주어 일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그동안 회사와 종업원, 또는 이해관계자 간에 신뢰가 쌓여 있는 수준을 정확히 파악해서 투명하게 밝히는 정도를 결정해야 한다. 충분한 신뢰 관계이면 많은 것을 밝혀도 된다. 그렇지 못하면 너무 공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회사의 의사결정에 대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진정성 있게 이해시키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셋째, 신뢰가 경쟁력의 원천이지만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신뢰의 밑바탕에는 손해와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도 믿어 보겠다는 취약성(vulnerability)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신뢰를 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는 신뢰를 보내다가 속고, 어려움을 당할 가능성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신뢰를 이야기해도 정작 제대로 된 신뢰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손해를 볼 각오로, 때로는 실제 손해를 보더라도 신뢰를 끝까지 보이는 사람은 정말 희소하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신뢰가 경쟁력의 원천, 소중한 자산이 된다. 이런 점에서 기독경영인은 세상에서 신뢰라는 희소한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니엘 세 친구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고백처럼 실제 내가 손해를 볼지라도 신뢰 경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뢰는 시간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신뢰를 경영원칙이나 핵심가치로 내세우는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신뢰받는 기업이 많지는 않다. 신뢰의 문제가 터질 때마다 회사들은 무슨 운동이나 캠페인을 벌이면서 신뢰를 회복하려고 하지만 신뢰는 그런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뢰는 ‘서로 믿어보자. 신뢰를 회복하자’는 구호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신뢰 수준은 서로에 대한 지난날의 오랜 경험과 역사성을 통해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믿지 못함의 간극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해묵은 문제라는 뜻이다.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그 간극을 만들어낸 시간만큼이나 많은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신뢰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진정성과 지속적인 인내만이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끝)
류지성 박사(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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