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는 기업과 사회
작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2011년 옥시싹싹이라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5년간 총 14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옥시 측은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고, 그 와중에 책임 회피를 위해 사명을 변경하고 법인을 고의로 청산하고, 심지어 해당 이슈에 대한 연구보고서 조작과 은폐를 시도한 의혹을 샀다. 이슈가 커지자 5년 만에 옥시의 외국인 대표이사가 공개 사과를 하였지만 진정성 있게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아 더욱 공분을 사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정부, 국회, 로펌, 대학연구팀, 유통업체 등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옥시 사태 속에서 가해자는 없고 희생자만 있는 한국 사회의 일면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옥시 사례는 우리 사회와 기업에 만연되어 있는 책임의식 및 윤리의식의 부재를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스파이더맨을 보면 스파이더맨이 갑자기 초능력을 얻은 뒤 자신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인식하고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즉 권한과 능력에는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다. 실제 영화에서도 보면 엄청난 힘을 가진 슈퍼 히어로들이 잘 나가다가 중간에 변절하거나 책임을 저버리게 되는 경우 엄청난 재앙과 결과가 닥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시대에 최고의 힘과 권력을 가진 존재는 과연 누구인가? 아마도 그중에 하나가 기업일 것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한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많은 중소기업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만약 기업이 자신이 가진 힘과 권력을 잘 인식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를 지니지 않는다면 위의 사례들과 같이 엄청난 재앙과 피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기업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책임은 기업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개인에게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의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장점은 개인과 기업에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책임을 다하는 개인과 기업들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만 진정한 자유도 누릴 수 있다.
책임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것
기업이 책임 다함으로써 권한과 범위 더 확대할 수 있어
책임은 왜 어려운가?
한국의 한 취업포털(미주)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상과 관련해서 한국 기업 432개사가 뽑은 ‘핵심인재의 최우선 조건’ 1위는 바로 ‘책임감이 강한 인재(41.9%)’였다. 능력과 실력은 뛰어나지만 자신이 맡은 업무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는 직원들을 기업은 선호하지 않는다. 한 아르바이트 포털(미주)에서도 대학생들이 꼽은 ‘어른’을 떠올렸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 1위가 ‘책임감 있는(25.1%)’이였다. 한국사회에서 성인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책임감 있는 성숙한 모습인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매우 당연한 결과이다. 사회의 리더와 주체들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회는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책임지는 사람과 기업을 원하고 있다.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처럼 한국은 책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무기력한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책임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반사적 이익이 그만큼 크고 달콤하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써 얻게 되는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과 사회적 유익이 크거나 당장의 불이익과 힘든 상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결국 책임을 지는 것보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에게 유리하다는 계산적 판단이 고려된 것이다. 특히 기업은 규모가 커지고 조직이 확대됨으로써 점점 더 큰 경제적 이익을 가질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더욱 큰 책임회피의 유혹에 놓일 수밖에 없다. 기업은 경제적 책임 외에도 법적, 사회적 책임 등 다양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회피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며, 특히 치열한 생존경쟁의 기업세계에서 남들이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데 책임을 다하는 것이 최선의 길은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책임의 진정한 의미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 행동하지만, 결과가 늘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종종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그런데 자신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자신의 행위에 의해 발생한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이 일차적인 부담을 져야 할 책임이 있다. 즉 책임의 일차적인 의미는 바로 자신의 행위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결과를 자신이 부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책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라고 정의되어 있다. ‘맡겨진 것’이 아니라 ‘맡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책임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책임이 자신에게 억지로 맡겨진 것이 되면 결과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지만, 내가 맡아서 하는 것이 되면 동기부여가 되고 그 일에 능률이 오르고 자신감이 붙을 수 있다. 특히 기업은 책임을 부정하고 회피할 것이 아니라 책임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능동적으로 바꿈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질 권한과 범위를 더욱 확대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독교윤리학의 대가인 리처드 니버는 ‘책임적 자아(The Responsible Self)’라는 저서에서 책임을 응답성과 관계성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책임은 사회 속에서 인간이 정해놓은 규칙과 압력에 대해 인간이 반응하는 것이며, 이는 자신의 반응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보다 적극적인 행위이며,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유대감 속에서 관계성과 상호작용성을 바탕으로 이러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니버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이 곧 책임지는 삶이라고 하면서 이는 기독교적인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지적하였다.
믿는 자에게 재산과 기업은 하나님이 잠시 맡기신 것
요셉처럼 성실한 청지기로서 주인의 것을 잘 관리해야
성경 속의 책임의 원리: 청지기 정신(Stewardship)
창세기 1장에 보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온 세상 만물을 만드셨고, 특히 인간을 창조하신 후 복을 주시면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다. 즉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지속할 지상 대리인의 책임을 부여받았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명을 잘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누가복음 12장 42절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에서도 보면 결국 성경적 의미의 청지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관리자로 이해할 수 있다.
청지기 정신(Stewardship)은 맡은 자를 의미하는 영어 ‘steward’에서 유래되며, 헬라어로는 ‘오이코노미아’(집을 의미하는 ‘오이코스’와 관리하다의 ‘노메오’의 합성어)로 집을 관리하고 다스린다는 경제적 의미가 있다. 즉 청지기는 신구약 성경에서 의무와 권한을 위임받은 관리인을 의미한다. 즉 청지기란 소유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다. 기독교인에게는 자기의 재산이나 기업이 자기 것이 아니고 주인이신 하나님이 잠시 맡기신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주인의 것을 자신이 맡아서 때를 따라 하나님의 분부대로 양식을 나눠주거나 사회봉사적 삶을 사는 자가 바로 청지기적 삶이다.
청지기 정신의 실천원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성경의 구절은 바로 마태복음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마 25:14~30)이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면 주인으로부터 5달란트와 2달란트를 위탁받은 청지기는 최선을 다하여 그 두 배를 남겼다. 그 결과 주인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반면에 1달란트 받은 종은 그대로 가져와 주인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꾸짖음을 들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책임의 원리는 이와 같이 자신에게 맡긴 일(사업)에 최선을 다해 이윤을 남기고 이를 주인에게 정직하게 보고하는 것이다.
요셉의 축복의 근원은 책임
성경에 나오는 요셉은 누구를 섬기든지 최선을 다하여 맡은 임무를 수행한 대표적인 청지기였다. 그는 형들의 안부를 알아 오라는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성실히 수행하다가 애굽으로 팔려갔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종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만큼 성실한 청지기였다. 그것 때문에 요셉은 다시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을 겪었다. 바로에게 발탁되어 총리가 된 후에도 요셉은 지혜로운 국정 관리를 수행한 왕국의 청지기였으며, 결국 요셉은 이스라엘이 위대한 민족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요셉처럼 우리도 기업을 책임 있게 경영하다 보면 오해를 사고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맡은 바 기업을 끝까지 책임 있게 경영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큰 은혜를 내려주실 것이다. 위대한 민족을 만들었던 요셉처럼 위대한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오늘날의 경영자들에게 주님이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바로 책임이다.(계속)
정연승(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기독경영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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