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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자치, 자립, 자전의 삼자원리 위에 부흥했지만, 해외 선교현장에서는 삼자원리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문화와 사회 상황을 고려한 신학적 자주성, 즉 ‘자신학화’도 요청되고 있다. 자신학화의 문제는 비단 선교현장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에 한국선교연구원(KRIM)은 자신학화를 선교학적으로 정리하고, 국내외 사역현장에서 자신학화를 준비하기 위한 한국선교학포럼을 23일 남서울교회 비전센터 2층 교육관에서 개최했다.

문상철 KRIM 원장은 이날 “신학을 서구에서 배워 국내 사역이나 선교현장에서 번역, 적용하는데 만족한다면 의존심의 표현”이라며 “우리는 신학적으로 의존적(dependent)이어서도, 독립적(independent)이서도 안되며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곧 자신학화는 다른 교회들과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자주적인 신학을 하는 것”이라며 “글로벌 교회와 교류하면서도 로컬한 상황에 충실한 신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학화를 이루기 위해 세계화의 흐름과 동향을 반영하면서도 한국 혹은 선교현장의 상황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문 원장은 한국교회의 자신학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신학계의 주도권을 잡은 서구 유학세대들이 자신학화에까지 눈뜨지 못한 것이 한 이유일 것”이라며 “그 이전에는 완성도는 높지 못했을지라도 오히려 신학 지도자들의 자생신학에 대한 목소리와 자신학화에 대한 의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선교현장에서의 자신학화 과정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역할에 대해 그는 “현지 지도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선교사는 돕는 입장이어야 할 것”이라며 “현지 지도자들의 신학적 지식이 약하고, 현지교회의 신학적 독립이 당장 어렵다 할지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제한 안점식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와 최형근 서울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는 “모든 신학이 선교를 위해 존재하고 신학 주체인 교회도 선교를 위해 존재하는 만큼, 자신학화도 그 문화와 사회에서 선교의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j1.jpg자신학화, 가치체계·세계관 차원까지 고려해야

이날 안점식 교수(사진)는 ‘한국교회 자신학화(self-theolozing)의 방향 모색’을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한국교회에서 자신학화의 작업은 주로 1960~70년대 이후 감리교신학대학교 중심의 토착화 신학과 한국신학대학교 중심의 민중신학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며 “이러한 시도들은 주로 자유주의 진영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1999년 10월 브라질 이과수 대회를 계기로 2010년 제5차 NCOWE 대회에서 ‘한국형 선교’를, 2012년 KWMA 주관으로 복음주의선교신학회와 한국선교신학회 공동학술대회에서 ‘자신학화으로서의 한국선교신학’을 논의하고 2012년 6차 설악포럼 등에서 자신학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안 교수는 건강한 자신학화를 위해 상황화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복음주의에서의 상황화는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복음의 수용도를 높이기 위해 문화, 사회 상황을 고려하고, 이를 보다 성경적으로 변혁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문화는 눈에 보이는 행동양식뿐 아니라 가치체계, 세계관 차원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학화를 논의할 때도 행동양식의 배후에 의식, 무의식적으로 전제된 세계관, 신학을 통찰해내고 외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경적으로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물론 필요하다.

또 그는 새로운 문화, 사회 상황이 성경에 대한 해석학적 렌즈에 영향을 미친다 할지라도, 어느 시대에도 공유되는 보편적 신학(universal theology), 범세계적 신학(global theology)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학화가 복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학화를 시도하는 이유도 복음을 더욱 잘 전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라며 “한국사회의 복음의 수용도가 떨어지고, 개인, 공동체적 차원에서 기독교가 실패하고 있다면 문화, 사회, 시대 상황에 의해 복음이 왜곡되거나 잘못 이해하고 전했을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한국교회의 문제는 축소된 복음, 곧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지나치게 기울어진 내세적 복음으로 이해하고 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명령(창1:27~28), 주기도문(마6:9~13) 등에서도 볼 수 있듯 죽어서 가는 장소적, 내세적 개념의 하늘나라, 천국이 아니라 이 땅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도 필요한 것이다. 데이빗 보쉬는 복음의 내세화 현상이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에 기독교 역사 안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손을 잡고 기독교 황제는 땅의 문제를, 교회는 하늘나라는 책임지는 것으로 양분화되면서 교회가 내세지향적이 됐다는 주장이다. 안 교수는 “내세성과 현세성의 양자 사이에 균형을 잡고 죄 사함의 복음, 죄성에 관련된 복음, 죄세력에 대한 복음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교적 토양에서의 자신학화

안 교수는 감리교 신학자들에 의해 토착화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한국교회의 자신학화의 예로 윤성범의 성(誠) 신학, 류동식의 풍류 신학, 이정용의 음양 및 역의 신학, 박종천의 상생 신학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현대 한국인에게도 여전히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가치 중 자신학화의 개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으로 ‘효’(孝)와 ‘의리’(義理)를 들었다. 유교로부터 온 효의 가치와 조선시대 성리학에서 온 의리의 가치는 성경적 가치와도 겹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조선왕조 몰락으로 유교가 통치이념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면서 관계충성적 의미의 의리 개념만 강하게 남았지만, 원래 유교에서의 의리 개념은 진리충성과 관계충성의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점식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실수를 지적하기도 했다. 유학적 토양에서는 현세적 삶에 대한 건전한 안목, 역사성, 실천성이 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지만, 한국 기독교는 역사의식의 결여, 내세적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복음, 왜곡되고 과도한 이데올로기 지향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또 해방 이후 기독교는 상황화가 결여되면서 반민족, 반민주, 반민족문화적 외래종교로 인식되는 길을 걸었다고 지적했다. 구한말, 일제강점기에는 애국자의 종교, 계몽가, 교육자, 독립투사의 종교로 좋은 사회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신사참배로부터 출발해 해방 후 냉전시대 친일파와 정치적 손을 잡은 것, 보수 지도자들이 교회의 선지자적 사명을 망각하고 쿠데타, 독재를 정당화해준 것, 조상숭배와 제사를 반대한 것, 단군의 신화화 등이 반민족, 반민주, 반민족문화적 측면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개신교가 조상숭배와 제사를 반대한 것은 올바른 대응이지만, 때로는 육신의 조상 공경이 생명과 권위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에 맛 닿는다”며 “폴 히버트의 지적처럼 성경적으로 건강한 조상신학, 곧 조상숭배 의식은 행하지 않지만 조상을 공경하고 조상의 가치를 아는 종교로 인식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한국교회의 단군 거부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단군 신화화 주장에 동조하는 태도로 간주됐다며 “단군 신격화, 우상화는 물론 반대하지만, 단군 신화화도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신학적 차원에서 단군과 고조선을 창세기 10장에 70민족 중 하나가 세운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으며, 노아의 홍수를 믿는다면 한민족도 노아의 후손, 셈, 함, 야벳의 후손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며 “이는 단군에 대한 자신학화, 일종의 단군신학”이라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우리 조상 단군은 노아의 후손이라는 성경적으로 건강한 단군신학을 제시했더라면, 기독교가 외래종교로 인식되지 않았을 것이고, 단군 자체를 거부하는 것보다 복음 수용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훨씬 높은 수준의 대응책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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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머니즘, 불교의 토양에서의 자신학화

그는 “자연을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로 보는 샤머니즘 토양에서는 생명 개념이 종종 중요성을 띤다”며 “생명은 성경적 개념 중에서도 핵심 개념으로(요14:6, 고후3:6, 요6:63 등) 복음주의적 생명신학, 환경신학, 생태신학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불교의 토양에서 무집착을 표현하는 한 형태인 무소유를 성경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불교의 무집착을 위한 고행, 금욕 차원이 아니라, 성경적 무소유는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한 청지기 사상이며,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빌4:12) 자유와 관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불교가 추구하는 절대 자유, 절대 평안이 우리 복음 안에 있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능력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황화는 영성과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다”며 “불교 토양에서는 승려보다 더 큰 자유와 평안을 기독교 사역자와 기독교인이 누리는 능력으로 상황화돼야 할는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또 “우리가 자신학화를 시도하는 곳은 종교다원주의 사회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며 “기독교 신학이 타종교의 영성보다 더 탁월한 영성을 형성해낼 수 있을 때에만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과 예수의 유일성은 호소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회를 섬기고 선교를 위한 자신학화

그는 한국의 초기교회에서 자신학화의 예를 찾을 수 있다며 초기교회 목사들의 설교문, 에세이를 적극 발굴할 것을 제안했다. 또 1920~30년대 서구에서 유학하고 서구신학을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데 주력한 박형룡, 박윤선 등 한국의 1세대 신학자와 서구신학을 더욱 잘 이해한 김세윤 등 2세대 신학자는 자신학화에 대한 의식이 결여돼 있었지만, 그들의 신학 안에서 한국적인 요소가 발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마지막으로 “자신학화 역시 예배와 선교를 본질로 하는 교회를 섬기기 위한 신학으로, 선교를 증진시키기 위한 ‘선교적 신학’이 되지 않으면 지적유희로 끝날 것”이라며 “자신학화는 건강한 선교신학의 결과인 동시에 건강한 선교신학을 생산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j2ed.jpg한편, 이날 최형근 교수는 ‘세계화와 자신학화: 신학의 글로컬화에 대한 소고’에서 세계화와 지역화의 흐름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적합한 글로컬 신학의 의미를 다뤘다. 그는 “자신학화는 지역교회들이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과 해석학적 순환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변하는 문화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살아낼 것인가의 문제”라며 “이를 위해 성경 기록 당시의 문화에 대한 분석과 다양한 신학전통에 대한 이해, 신학 주체인 교회와 신학자의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회심 등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한국교회가 삼자원리의 적용과 성공사례, 선교현장에의 적용 차원을 넘어 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라는 성숙한 단계에 도달했는가를 비판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며 “교회가 복음을 해석하는 것은 다른 이에게 전하는 목적에 앞서 교회가 회심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게 될 때 교회는 세상에서 전할 말과 보여줄 삶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희 기자 jsowue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