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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 혁명의 물결이 중동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가면서 오랫동안 백성들을 학대해 왔던 튀니지의 벤알리 대통령,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 리비아의 가다피 대통령 등 독재자들이 차례로 물러가고 이제는 중동에도 인권이 보장되는 자유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와는 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즉 소위 자스민 혁명은 가난과 독재와 부패에 분노한 백성들의 변화를 요구하는 함성이지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독재자를 몰아내고 자유를 원하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니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위대들의 구호가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더 위대하다)’ 혹은 ‘라 일라 일랄라(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다)’라는 전형적인 이슬람의 구호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슬람 교리에 철저히 헌신된 원리주의자들이 자살 폭탄테러를 할 때마다 외치는 구호이며 무함마드가 이웃 마을을 침략하여 죽이고 약탈할 때 무슬림 병사들과 함께 외치던 구호였다. 이는 민주주의를 포함한 모든 사상과 이념과 체제를 거부하며 기독교 유대교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종교체제를 규탄하는 상징적인 구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알라가 더 위대하다는 부르짖음이나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외침은 바로 삼위일체를 부인하며 기독교를 정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던 구절이다.

이슬람의 교리 중에서 인류가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쉬르크(shirk)라고 한다. 쉬르크란 알라 외에 다른 존재를 알라와 동일한 위치에 올려놓는 것을 말하는데 기독교인들은 이싸(예수)를 알라와 동일한 자리에 올려놓는 삼위일체 교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쉬르크를 범하고 있다고 무쉬리쿤(mushirikun)이라는 경멸적 이름으로 부른다.

처음 이집트에서 자스민 혁명이 일어났을 때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중 무슬림들이 타흐리르 광장에 엎드려 기도할 때 기독교인들이 주변에 둘러서서 보호해 주었다면서 이것이 이슬람과 기독교의 화해와 협력의 상징이라고 매스컴에 사진까지 보도되었다. 

그러나 목격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이 섞여서 시위하던 중에 기도 시간이 되자 광장 중앙에서부터 기도하는 대열이 만들어지고 기독교인들은 그 대열에서 벗어나려고 자연히 주변으로 밀려갔고 무슬림들이 머리를 땅에 대면서 기도할 때에 기독교인들은 서 있었으니 자연히 울타리를 친 것처럼 보였을 뿐이며 오히려 확성기를 통해서 외치는 이맘의 목소리는 기독교인들도 이슬람식 기도에 동참하라고 촉구하는데 기독교인들이 몹시 당황했다는 것이다.


8천만의 인구를 가진 이집트는 기독교인들이 10% 정도 된다.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을 하층민으로 본다. 이를 이슬람 역사에서는 딤미(Dhimmi)라고 불렀다. 딤미들은 좋은 옷을 입어서도 안 되고 큰 집에 살아서도 안 된다. 딤미들은 해마다 생명을 연장 받는 대가로 무슬림들은 내지 않아도 되는 인두세라고 불리는 특별세금을 바쳐야 했다. (꾸란9:29)


자스민 혁명이 시작되기 전인 2011년 정초에 무슬림들은 이집트 교회에 차량폭탄 테러를 가했다. 신년 축하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기독교인들 21명이 죽고 97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무바라크 대통령은 긴급성명을 통해서 “범인을 찾아내 참수형에 처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러나 1월 24일 이집트에도 혁명의 불길이 번졌고 국정쇄신을 약속하며 강력하게 버티던 무바라크 대통령은 2월 11일 사임하고 말았다.


이것을 민주화의 승리라고 외치며 모두들 기뻐할 때 필자는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제 이집트에서 과격한 무슬림들이 저지르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횡포를 누가 막아 줄 것인가?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결코 사태를 항상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필자는 항상 사태를 긍정적으로 보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중동의 사태 특히 이집트 사태는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무바라크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이집트에서 현재 가장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집단이 무슬림 형제단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계의 이슬람화를 외치며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념으로 1928년에 창설된 조직이다. 혹자는 이들을 ‘온건한 무슬림 단체’로 규정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구호를 보면 이들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알라는 우리의 목표, 무함마드는 우리의 지도자, 꾸란은 우리의 법, 지하드는 우리의 수단, 알라를 위한 죽음은 우리의 대망’ 이런 구호를 외치는 집단을 어떻게 온건한 집단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만일 온건한 집단이라면 무바라크가 왜 이들의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했겠는가?

그런데 자신들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철저하게 활동을 통제하는 무바라크를 몰아내기 위해서 이들은 온건한 무슬림으로 위장했다. 자신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여성들의 베일 착용을 강제하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을 취소하지 않을 것이며, 대통령 후보도 내지 않을 것이며 오직 독재자를 몰아내고 이집트 국민의 해방과 자유를 원할 뿐이라고 하는 말에 서방 언론은 매우 환영했다.

그러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하고 나자 57년 동안 불법단체로 묶여 있던 이들은 해방을 맞이했고 서방세계도 갑작스런 권력 공백 상태에서 마땅한 지도세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을 협상 대상으로 공식 인정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슬람 성직자들과 지식인들, 의사, 법조인들 등 이집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조직원들을 다수 보유한 무슬림 형제단은 이제 당초의 약속을 무시하고 자유와정의당이라는 당을 만들었다. 기존의 정당들은 대부분 무바라크 정권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반감이 있을 뿐 아니라 당사 건물조차 제대로 없는 군소 그룹들이기에 크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반면 83년간의 역사를 자랑하며 자체 건물을 보유하고 있고 확고한 지지자들을 이미 다수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외에도 수많은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무슬림 형제단이 만든 자유 정의당은 조만간 치러질 총선에서 최대의석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슬람의 가치를 존중하자는 것이기에 신앙심이 깊은 무슬림들이라면 온건주의를 외치는 이들을 거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48년 누크라시 총리를 암살했고 이들의 분파는 81년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했을 뿐 아니라 수십 년간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시키려 무장 유혈 공격을 주도한 과거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에 간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지 6~7개월 만에 상황이 바뀌자 약속을 뒤집고 정당을 만든 것을 보더라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쉽게 말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정권을 잡고 세력이 커지면 이란처럼 이슬람의 율법을 강요하는 신정통치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무슬림 형제단이 활동의 자유를 얻은 후 정치에 간여하고부터 이집트에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가 팔레스타인과의 국경을 열어놓은 것이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함마스는 무슬림형제단의 예하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슬람 강경파가 집권하고 있는 터키와 손을 잡고 양쪽에서 이스라엘을 압박하고자 하고 있다.

군부가 이집트의 임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에 일어난 기독교인들 학살 사건은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이집트의 남부 아스완 지역에서 강경 무슬림들이 리모델 중인 콥틱교회에 방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기독교인들이 항의하자 정부 관리들은 교회가 불법 집회를 하기 때문이었다고 무슬림들을 두둔했다. 생각다 못한 기독교인들은 평화시위 허락을 받고 교통에 방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나무 십자가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행렬이 타흐리르 광장을 지나 방송국 앞에 이르자 평화시위중인 기독교인들을 향해 군부의 무장차량이 돌진하여 이들을 깔아 죽이고 실탄들을 발사해 36명이 목숨을 잃고 30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바라크가 퇴진하고 나서 이집트 기독교인들의 자유와 인권은 짓밟히고 있으며 그 때는 통제하는 세력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통제는커녕 오히려 군부가 앞장서서 핍박하고 있기에 최근에 기독교인들의 피해사례는 급증하고 있는데 이번 사건은 규모가 커서 매스컴을 탔을 뿐이다. 사건 발생 1주일 만에 세계적인 압력에 당황한 이집트 군부는 종교차별 금지법을 어기는 사람들에게 벌금(3만 파운드: 약 580만 원)형을 선언했지만, 처벌할 법이 없어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 아니다. 이집트는 이미 오래 전에 종교차별을 금하는 UN의 인권선언문에 서명한 국가이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이것은 집행하는 사람에 따라 파키스탄의 신성모독법처럼 이슬람을 폄하하는 기독교인들을 처벌하는 도구로 사용될 우려가 다분히 있다.

무바라크 재임시절 이집트의 경제지표는 완만하지만 지속적인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중동의 상황이 전쟁으로 시끄럽고 이집트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젊은이들이 이집트의 전쟁 개입을 요구할 때도 무바라크는 중동평화를 위해서 철저히 막아서 왔다. 그동안 불안하나마 중동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무바라크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앞으로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핍박받는 선량한 백성으로 위장한 무슬림 형제단의 전략에 속은 서방 세계의 압력에 의해 무바라크는 축출되었고 그들이 만든 자유와정의당은 이집트 최대 세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들이 장악한다면 이집트는 당분간은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며 조용하겠지만, 차츰 정권이 확고해지면 그들은 본색을 드러내어 수감 중인 1만7천 명에 달하는 테러범들이 석방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중동 및 세계를 어지럽힐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민주화는 무바라크나 가다피를 축출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시며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때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