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서울교회(담임 이종윤)과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장영일)에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라"(Witness Jesus Christ Today)라는 주제로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 100주년 기념 2010한국대회'가 개최된다. 다음은 폴 피어슨 박사(Paul E. Pierson, Ph. D.)의 기조강연 "에딘버러 이후의 선교 운동: 역사, 현안, 경향" 전문이다. (2010한국대회 관련기사 목록

p.JPG서론 : 우리는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급속한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화가 여러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기술은 비틀거리며 계속 발전하고 있다. 기독교의 중심은 유럽과 북미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로 이동했다.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떠오르고 있다. 박해받는 지역에서는 가정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 이슬람 세계는 대단한 위협이 되고 있으며, 서구와 기타 지역에서 커져가는 세속주의 또한 그렇다.

지난 역사 속에서 선교 사상가들은 지속적으로 선교 운동에 대해 새로운 질문들을 던져왔다. 무엇이 가장 좋은 방법론이었는가? 선교에 인원을 동원하고, 훈련시키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조직들이 필요했는가? 선교의 우선적인 초점은 복음 전파였는가, 사회 변혁이었는가? 최종 결과물은 무엇이어야 했는가? 만약 그것이 교회라면, 어떤 형태의 교회이어야 했는가? 선교사를 보낸 그 교회들의 복제품이어야 했는가? 그 둘이 서로 달랐다면, 그 교회들을 모두 역사적으로 기독교적이게 한 핵심 가치들은 무엇이었는가? 선교의 역사적 상황이 바뀌면서 등장한 새로운 도전들을 무엇이었는가? 그것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가? 변화하는 상황이 가져온 새로운 기회들은 무엇이었는가?

이런 변화의 한 복판에서, 기독교 선교는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이다. 나는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 믿는다. 선교란 사람들을 불러서 그분의 제자가 되게 하고, 모여서 예배하고, 양육 받고, 증거하고, 교회라는 공동체를 섬기도록 하는 것이다. 이 교회들이 자문화와 타문화 속에서 복음 전파, 구제, 사회 변혁을 충실히 행하는 중심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새로운 방식으로 선교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어떤 운동에서건 상황이 변할 때 제기되는 문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적응해야 하고, 또 그러면서도 핵심 메시지를 손상시키거나 잃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두 가지 오류를 확인할 수 있다. 한 가지 오류는 변화하는 상황이 새로운 양식을 요구하는 데도 본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과거의 양식과 방식을 되풀이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오류는 운동의 핵심 가치와 메시지를 저버리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선교가 당면한 과제는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핵심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세계화라는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문명 하에서 더 적합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과거로부터도 배울 것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성령님께서 언제나 창조적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분은 우리를 이 시대의 새롭고 생산적인 방법론들로 이끄실 것이다. 나는 그 방법론들이 많은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들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즉, 리더들을 어떻게 선발하고 훈련시키는가, 점점 커져가는 세계의 중심 도시들 속에서 어떻게 사역하는가, 국제적인 이주가 늘어가는 특이한 현상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가난한 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연민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또 특히 박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 교회가 어떤 구조를 가져야하는가 등의 문제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I. 선교운동은 18세기에 시작되었는데, 유럽의 기독교 왕국(Christendom) 모델과 그에 따른 명목상의 기독교를 극복하기 위한 쇄신 운동들의 결과였다. 선교운동의 기저에는 청교도주의, 경건주의, 모라비아교, 복음주의적 각성 등이 깔려있었다. 이 네 가지 모두, 방식은 달랐지만 크리센돔 모델을 극복하려 했고, 개인적인 회심과 제자도의 삶을 강조했다.

선교가 초기에는 기성 교회들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했다. 선교는 보다 큰 교회 조직들의 변두리에서 시작되었다. 캐리(Carey)는 작은 침례교단 소속이었는데(1792), 영국 의회에서 비난을 받았다.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 1795)를 설립한 사람들은 일단의 장로교파, 조합 교회주의자들, 국교회 평신도들과 목사들이었다. 영국 성공회 선교회(Anglican Church Missionary Society, 1799)를 설립한 것은 일단의 사제들과 평신도들이었고, 주교들은 50년 동안이나 이 협회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미국 회중교회 해외선교부(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 1810)는 학생들이 시작한 모임에서 출발했다.

선교운동이 서구 식민주의와 병행한 것은 역사적인 ‘우연’ 중 하나이다. 그로인한 이점들도 있었지만, 그와 함께 많은 오해와 손실들이 초래됐다. 분명한 이점은 식민주의로 인해 선교사들이 외국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기독교 신앙과 서구 문화를 혼동하게 했고, 선교의 근본적인 목표들을 혼동하게 했다. 선교라는 것이 식민주의의 종교적인 영역에 불과했는가? 종종 선교사들은 식민주의 세력의 목표와 자신들의 관심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II. 전제들: 선교운동에는 언제나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전제들이 있었다.

A. 복음 전파와 기독교 성장은 사회적 진보를 가져올 것이고, 그것이 통전적인 것이다. 제임스 데니스(James Dennis)의 『기독교 선교와 사회 변혁(Christian Missions and Social Reform)』은 이런 희망을 제시했다. 그것이 부분적으로는 옳지만, 전반적인 전제 자체는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그들은 모든 사회 내에서 불의를 떠받치고 있는 복잡한 구조적, 문화적 문제들을 보지 못했다.
  
B. 두 번째 전제: 서구 기독교가 표준이었다. 다른 나라의 교회들도 서구의 교회와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 그러면서 자립, 자치, 자전(기본적으로 자문화 내에서의 복음 전파를 뜻함)해야 한다. 그런데 가난한 문화권에서는 목사가 서구식 교육 기관에서 훈련받아야 하고 그러면서 거의 불가피하게 중간 계층으로 편입되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교회가 자립할 수 있겠는가?
  
C. 세 번째 전제: 서구의 문화는 기독교적이었다. 다른 나라의 기독교인의 삶은 서구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미국에게는 계속해서 확장되어야만 할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으로서의 사명이 있고, 서구 사람들에겐 통치에 어울리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믿음이다.
  
D. 네 번째 전제: 서구 신학이 표준이었다. 서구 신학은 비서구 문화권의 많은 쟁점들을 다루지 않았다. 예를 들어 조상과 망령들, 기적 등과 관련된 쟁점들이다. 가난과 정치적 압제에 대해 복음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서구 식민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전통적인 신학은 대다수 비서구 문화권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종교적 범주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능력이었다.
  
E. 다섯 번째 전제는 한동안 주도권이 서구 선교사들의 손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브라질은 예외였다.

III.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놀라운 영웅적 행위와 희생을 바로 알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두 명의 아내를 잃은 저드슨(Judson)이 한 예다. 아프리카에서는 도착한지 6개월 이내에 선교사 가족 절반이 사망한 경우가 흔했다.

IV. 우리는 절대로 복음을 완벽하게 전하거나 이해할 수 없으며, 우리의 시도들은 항상 적절하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복음은 그것을 전하려는 우리의 노력보다 더 위대하고,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다.

V. 성과들

A. 많은 나라에 교회들이 세워졌다. 1942년 켄터베리의 대주교였던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은 “우리 시대의 위대하고도 새로운 사실”에 대해 말했다. 그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에 교회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대략 다섯 개 국가가 예외인데, 네팔이 그 중에 하나이다.
  
B. 학교와 대학들이 설립되었다. 그중 상당수가 여성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 예로 상파울루의 맥킨지 대학(MacKenzie University), 서울의 이화여자대학(Ehwa University)이 있다. 여성들의 선교운동에 대해 베버(Beaver)는 이를 “북미 최초의 여성운동”이라고 일컬었고, 덧붙여서 이것이 “현재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인권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운동 세력의 불씨가 되었다”고 했다.
  
C. 현대 의학이 전래되면서 병원, 진료소, 의학/간호학 학교, 한센병과 결핵 치료 등이 보급되었다. 아이다 스커더(Ida Scudder) 의사와 인도 벨로르(Vellore)에 설립된 대형 진료소가 한 예이다.
  
D. 많은 경우에 새로운 농업기술이 전해졌다. 샘 히겐바텀(Sam Higgenbottom) 박사와 인도 알라하바드(Allahabad)의 농과대학이 뛰어난 사례이다. 가나에는 카카오 재배가 전래되었다.

VI. 20세기 초, 신학적 일치의 종말

A. 근본주의자/근대주의자 충돌. 근본주의자들은 선교를 영혼 구원으로 축소시켰고,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배가 가라앉고 있으니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구명선에 태우라는) 구명선 신학이다. 근대주의자들은 선교를 사회 변혁으로 축소시키려 했다. 양쪽 모두 선교를 성서가 말하는 것 이하로 축소시켰다.

B. 타 종교를 대하는 태도가 극단적인 자유주의 쪽으로 변화했다. 1932년 호킹 보고서(Hocking Report)는 선교가 회심을 위해 노력해서는 안 되고, 대신 “모든 종교 내의 최선을 찾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장로교 지도자인 로버트 스피어(Robert E. Speer)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성(The Finality of Jesus Christ)』이라는 책을 썼다. 인도네시아 선교사였던 네덜란드인 헨드릭 크레머(Hendrik Kraemer) 또한 이에 대해 『비기독교 세계에서의 기독교 메시지(The Christian Message in a Non-Christian World)』라는 책을 썼다. 두 사람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복음 전도의 중심성을 주장했다.

VII. 그런 상황에서 열린 1910년 에딘버러 선교사대회

A. 이 대회에는 다양한 선교단체가 참여했다. 영국 성공회로부터, ‘Faith Missions’과 같은 중국 내지 선교회까지 포함했다.
  
B. 1,200여 명의 대표가 참석했는데, 17명의 아시아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구인들이었다.
  
C. 대회의 초점은 협력이었다. 이 대회로 인해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가 구성되었고, 간접적으로는 세계교회협의회(WCC)로 이어졌다. WCC의 초기 목표는 “선교를 위한 일치(Unity for the sake of Mission)” “세계가 믿도록(That the world might believe)”이었다.
  
D. 선교란 ‘기독교 국가’에서 ‘비기독교 국가’로 가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에딘버러 대회는 서구가 기독교적이라고 전제했다. 이런 사고의 밑바탕에는 서구 사회와 교회의 크리센돔 개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E. 라틴 아메리카는, 토착 민족을 향한 선교가 있긴 했지만, 배제되었다. 국교회파와 일부 루터파는 그 점을 강조했는데, 중남미는 로마 가톨릭이었고 따라서 크리센돔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F. 에딘버러 대회의 비극적인 결점은, 서구 문화에 대한 성공주의와 자만 때문에 서구 크리센돔 내의 비극적인 결함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결함들은 4년 뒤, ‘기독교 국가들’ 간의 싸움이었던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 수백만의 병사들이 무분별하게 프랑스의 참호 속에서 전사했다. 영국, 스코틀랜드, 독일의 장래 선교사 지망자들 중 절반이 전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설상가상으로,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기독교 신앙의 타당성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기독교 국가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데, 어떻게 그들의 신앙이 옳을 수 있겠는가?
  
G.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그로부터 4년 전, 한때 마구간으로 사용 됐던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건물에서 오순절 부흥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에딘버러 대회에 모인 지도자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강력한 바람과 같이 역사한 오순절 운동이 20세기의 다른 어떤 교회 운동보다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성령님이 언제나 창조적이시며, 따라서 그분의 사역을 우리가 절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주는 지표이다.

VIII. 1945년부터 2010년까지의 선교

A. 1945년, 충분한 선교사들을 보낸다면 일본도 기독교 국가가 될 거라는 낙관론이 1949년에 와서는 엄청난 비관론으로 바뀌었다. 중국에서는 공산주의가 승리했고, 교회는 박해받다가 결국에는 폐쇄되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식민주의의 종말이 찾아왔다. 결과적으로 그런 지역에서는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교회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1950년대에 많은 사람들은 선교운동이 실패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B. '주류‘ 교단들의 선교가 쇠퇴했는데, 이들은 1935년 북미 선교 인원의 6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5% 혹은 그 이하에 불과하다. 그 대신 주로 여러 교파가 섞인 복음주의, 은사주의, 독립 선교회들이 성장해서 그 자리를 메웠다. 오랜 역사를 가진 단체들이 쇠락하는 이유를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두 개의 이유가 복합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신학적인 ’부식‘이다. 즉, WCC와 오래된 여러 교단 내에서 복음이 중심위치를 잃고, 모호한 보편주의가 자리 잡은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선교와 세계 복음화에 집중했던 조직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 예로, 내가 속한 교단에서는 ’해외선교위원회‘가 ’프로그램부(Program Agency)‘로 변경됐다. 그것은 결국 선교가 여러 프로그램 중에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C. 선교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두 종류의 에큐메니즘이 현재 있다.
         
a. 첫째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이다. 국제선교협의회(IMC)가 1961년 WCC의 일부분이 되었다. 본래는 이런 일치가 더 많은 선교로 이어질 거라 기대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복음을 비기독교인에게 전한다는 의미에서의 선교는 오늘날 WCC의 협의 사항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b. 둘째는 새로운 복음주의 에큐메니즘이다. 이것은 로잔 운동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 1974년 채택된 로잔 언약은 20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문서 중 하나이며, 1982년 문서인 ‘복음 전파와 사회 책임’ 역시 중요하다. 로잔의 또 다른 결과물은 1974년, 선교의 초점이 지리에서 문화로 옮겨간 것이다. ‘미전도 종족’에 관한 랄프 윈터(Ralph Winter)의 연설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건이었다. 따라서 로잔으로부터 두 개의 흐름이 나왔다. 하나는 ‘미전도 종족’에 중점을 두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구호 사역과 또 가능하다면 사회 변혁을 포괄하는 선교의 회복이다.
         
c. 이렇게 해서 선교 용어는 1974년 이전의 ‘해외 선교(foreign mission)’로부터 오늘날의 ‘타문화권 선교(cross cultural mission)’로 바뀌게 되었다.

IX. 변화하는 우리 세대에 대처해야 할 몇 가지 쟁점들

A. 제자의 수를 늘리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중요하다. 내적으로는 개인(그리스도와 연합)과 기독교 공동체에 초점을 맞추고, 외적으로는 세상을 향해야 한다. 예를 들어, 르완다에 ‘부흥’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우리는 어떻게 접근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부패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교회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것은? 혹은 미국인의 1/3이 ‘거듭났다’고 말하지만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것은?
 
 B. 세계화와 이주. 오늘날의 선교는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from everywhere to everywhere)의 선교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도시들이 다문화, 다언어, 다인종적이다. 한 예로, 미국 대학 내에서 이집트 기독교인이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도하고 있다.
  
C. 도시화. 세계의 도시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거대해졌다. 21세기 중반이 되면 세계 인구 89%가 도시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이런 현상이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요구할 거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역이 시급하다.
  
D. 변혁으로서의 선교. 루이스 부시(Luis Bush) 박사가 시행한 수차례의 세계 조사(World Inquiry)에 따르면, 많은 지역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사회 변혁을 위해 일할 것을 말씀하고 계시다고 믿는다. 사회 변혁은 각 지역에 따라서 남녀평등, 소수 집단 대우, 보건 의료 등 서로 다른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다. 복음 전파와 경제 성장에 대한 관심 사이의 관계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교회는 AIDS의 심각한 피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E. 상황화와 ‘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s)’. 무슬림과 같은 사람들은 전통 사회를 떠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주로 고백하는데, 성령님께서는 교회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계신 것인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쪽의 문화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초기 서구 선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문화의 예배 방식이 표준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복음을 수용하는 문화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보지 못할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다. 우리는 모든 문화가 한 분 성령님에 의해서 변혁되어야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성령님께서 문화를 긍정하는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신뢰할 필요가 있다.
  
F. 동반자 정신과 더 큰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에 출전한 경쟁자들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선교 조직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우리의 일치됨을 표현할 것인가?
  
G. 사역 현장의 상황에 맞게 지도자들을 선발하고 훈련시킬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 현재 정식으로 성서나 신학 훈련을 받지 않은 채 일하고 있는 목사, 전도자들이 전 세계에 최소 200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들은 사역 현장을 나와 기존 교육기관에 다닐 여건이 안 된다. 사역에 몸담고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H. 교회의 본질과 목적에 관해서 더 성서적인 신학이 필요하다. 진정 성서적으로 교회를 이해한다면 반드시 선교가 그 중심에 놓여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즉,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교를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그분의 선교를 이뤄 가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여하라고 부르신다. 하나님의 선교이지, 우리의 선교가 아니다. 우리는 그분을 신뢰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어디에서 일하고 계신지를 찾아야 하고,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I.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에 대한 신학은 복음 전도를 보다 성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해준다. 우리는 그 나라의 시민이 되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는 정의, 가난한 자를 위한 배려와 같은 그 나라의 가치들을 실현하라고 부름 받았다. 그 나라가 그리스도를 통해, 아직 온전하게는 아니지만, 이미 역사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를 통해 우리는 은사주의적인 강조나 성령님의 은사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이 대부분의 전통적인 문화권 내에서 그토록 중요시하는 능력에 대한 신학의 기초가 된다.
  
J. 끝으로, 오늘날 기독교 선교가 전 세계적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기쁨이다. 역사상 그 어느 시기에도 이토록 다양한 국가, 인종, 언어권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어떤 운동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창 12:3)이 놀라운 규모로 오늘날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폴 피어슨 박사(Paul E. Pierson, Ph. D.)
현재 풀러신학교 세계선교대학원 명예대학원장으로, 선교역사와 라틴아메리카 선교 분야의 전문가이다. 브라질, 포르투칼에서 17년 동안 선교사로 헌신했으며, 풀러신학교 선교학교수, 세계선교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학력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B.S.)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B.D.)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Ph. D.)

주요 저서
1. History Through a Missiological Perspective (2009)
2. Emerging Streams of Church and Mission (2004)
3. Themes from Acts (1982)
4. A Younger Church in Search of Maturity: Presbyterianism in Brazil, 1910-1959 (1974)
5.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Mission Theology for the Third Millennium (1993,
   with Dean Gilliland and Chuck Van E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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