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선교의 모델은 성육신 선교에 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내려와 종의 몸으로 사람들을 섬기셨다. 이를 본받아 선교사가 자기의 것을 다 내려놓고 현지인들을 섬기는 것을 성육신 선교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화 시대로 넘어 가면서 선교도 현대화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마치 선교사가 여러가지의 직업들 중에 하나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100%의 철저한 자기 포기 보다는 노후대책, 각종 보험과 자녀교육의 특혜를 고려해 넣고 선교사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변화된 모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바른 선교의 모델을 바울에게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는 로마서 12장 1절부터 로마에 보낸 편지에 진정한 성육신 선교가 주님처럼 ‘산 제물’ 로 드려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선교의 모형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 바를 몰랐지만 가족과 친척집을 떠났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선교사가 되는 가장 큰 장점을 가진 사람이다.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랐다. 자기의 의지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이 명하신 땅으로 가서 살았기에 곧 열국의 아비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으며 선교사의 모형이 되었다.
모세는 비 자발성 선교사이다. 애굽에서 태어난 제 2세의 선교사이다. 그는 애굽의 큰 명예와 권세와 보화를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상급을 보고 편안한 삶을 포기했다. (히11;24-30) 이처럼 선교사들은 모든 명예와 권세와 부를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가서 그들처럼 되어 그들 속에서 살며 놀라운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파하는 것이다.
룻은 이방여인으로 히브리인과 결혼하였으나 그 남편이 죽어 소망이 끊어졌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간절히 친정으로 돌아 갈 것을 권고하지만 룻은 끝내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다. 그의 고백이 바로 성육신하는 선교사들의 고백인 것이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선교지를 위한 이런 결심이 곧 성육신적 선교의 모델이다.
바울은 이방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친척과 의논하지 아니하고’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좀더 구체적인 말씀이 되는 마태복음 10장 34절부터 39절까지를 한번 묵상하고 생각해 보면 좋겠다. 선교사가 되는 것을 결정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부모 때문이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많은 모델들이 있다. 세월이 지나도 선교의 본질은 변할 수 없다. 아무리 시대가 현대화 되어도 이런 헌신된 모습의 가치는 변질될 수 없다.
희생이 없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현대적으로 의역하면 “성령님이 임하시면 너희가 다이나마이트 같은 복음의 폭탄을 가지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 죽어 순교자가 될 것이라”라고 말할 수 있다. ‘권능’이라는 ‘Power’는 헬라어로 ‘다이나 마이트’를 말한다. ‘증인’이라는 ‘witness’는 헬라어의 ‘martus’ 즉 ‘순교자’라는 어원에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증인이 된다는 것은 순교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는 생명을 드려야 열매를 맺는 힘든 사역이다. 희생 없이는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전략적 선교를 지향하는 선교사는 그 곳의 영혼들을 품고 순교의 정신으로 삶 전체를 투자해야 한다. 위대한 선교사들은 모두가 다 이 희생의 모습을 실현한 사람들이다.
선교의 승패는 헌신의 정도에 달려 있다.
바울은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복음을 위해서는 죽는 것을 결코 두려워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헌신의 열매는 귀중한 추수로 이어질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네가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성육신 선교의 결과로 얻어지는 축복의 내용이다. 선교사는 끝까지 이런 영적 열정이 식어서는 안된다. 선교현장은 복음을 증거하는 자체보다는 삶을 통해 복음이 증거된다. 진정한 헌신의 모습은 곧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보게 된다. 마하트마 간디는 “나도 예수를 믿고 싶다. 그러나 예수를 닮은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C.T Studd는 “만일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 죽은 분이라면 어떤 큰 일도 희생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선교와 순교
한국정부는 최근에 일어난 순교의 사건들을 통해서 ‘여행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그러나 ‘선교 금지 구역’이란 있을 수 없다. 시대가 복잡해지고 악할 수록 더욱 많은 지혜가 필요하다. 순교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순교는 불행한 사고가 아니다. 이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만 존재했던 사건이 아니다. 현대에도 일어나고 있는 영적 전투의 현실이다. 선교와 순교는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병행되어지는 거룩한 사건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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