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성한 눈, 즉 영안(靈眼)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똑같이 탐지하고도 그 땅을 ‘사람들을 삼키는 땅’으로 보는 눈과 ‘젖과 꿀이 흐르는 땅’(민 13:27)으로 보는 눈으로 나뉘었다. 그 뿐 아니라 앗수르 대군의 말과 병거로 사마리아 성읍을 포위한 것을 보고, 절망하는 눈이 아니라 온 언덕에 불 말과 불 병거가 둘러서서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경이로운 눈이 필요하다(왕하 6:8~19).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 의미는 바라지 않는 불행한 상황에 처했는데 뜻밖에 그 상황이 하려던 일을 이루는 기회가 된다는 뜻일 것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전쟁과 기근과 기후 위기와 같은 상황들은 안타깝게도 인간들의 과학기술문명을 자랑하는 문명사회의 한가운데서 초래한 불행이지만, 이 불행은 인류가 그동안 통찰로만 간직하고 있던 계획들을 구체화 할 최적의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통찰로만 간직하고 있던 것이란 다름 아닌 영적 성숙과 영성의 삶이다. 말세지말(末世之末)의 시대를 살면서 욕망에서 영성으로, 인간 중심과 과학 중심에서 만물과의 공생으로, 이기적 생존에서 이타적 상생으로 회심할 수 있는 영안이 절대 필요한 기회이다.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있다. 구태의연한 눈으로 인류에게 닥친 불행과 좌절 속에서 과거의 삶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영안의 눈으로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고 근본적 회심을 통해서 성경적인 영성의 문화를 창출할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극단적인 상황은 인류를 영성적 삶으로 이끌어가고 있기에 결코 재앙만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이선구 목사(지구촌사랑의쌀나눔재단 이사장, 세계선교연대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