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한국교회 선교역사의 산 증인인 조동진 박사의 삶을 다룬 '나의 소명, 나의 선교행전'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동진 박사는 한국 신학교에서 선교학 교육(1961)의 창도자이며, 비서구세계 최초의 선교사 훈련과 연구기관인 '국제선교연구원'(1963, 훗날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을 설립했습니다. 또 '아시아선교협의회'(AMA)와 '제3세계선교협의회'(TWMA) 등을 창립해 비서구세계 선교계의 연합을 추진했으며, 서구와 비서구권의 선교가 만나 협력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최근 열린 '2010동경대회'에서는 故 랄프 윈터 박사를 대신해 대회 전체 주제강연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조동진 박사 관련기사)

jdj.jpg다섯 번째 부르심 : 서구 선교단체들과의 동반자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

나는 새롭게 일어나는 아시아 선교단체들의 지도력 개발을 위해 서구 선교단체들과 동반자 관계 형성을 위한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위한 나의 첫 번째 시도는 1968년 11월 5일부터 13일까지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전도회의’에서였다. 나는 싱가포르에 있는 OMF 국제본부를 방문해 국제본부 대표인 데니스 레인을 비롯한 간부들을 만나 한국 선교단체들의 선교사 훈련에 협력해 줄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제안은 잠깐 동안의 아주 짧은 대화 끝에 냉담하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계속 아시아에서 선교하는 서구 선교단체들을 접촉하여 새로 일어나는 아시아 선교단체들과 협력할 것을 애원했다.

나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먼저 뉴욕에 있는 C&MA 선교본부를 찾아가 총무 루이스 킹을 만나 아시아에서 C&MA 선교회와의 협력선교를 제안했다. 루이스 킹 총무와 간부들은 나를 정중하게 영접하고 대화하기는 했지만, 한 달 후에 돌아온 회답은 “우리는 아직 아시아 선교단체들과 동반자 관계의 협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델라웨어 주의 윌밍턴에 있는 세계장로회선교회 본부를 찾아가 선교 동반자 관계를 제안했지만, 역시 그들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일리노이 주 휘튼으로 가서 TEAM 선교회 본부를 찾았다. 나는 앞에 언급한 것처럼 TEAM 선교회가 1953년 한국에서 문서선교와 방송선교를 시작하려 했을 때 그들의 생명의 말씀사 개설을 위한 한국 정부의 문화공보부 등록과 HLKX 방송국 개설의 정부 허가를 위해 큰 도움을 줬다. 그래서 TEAM 선교회만은 나의 동반자 관계 제안을 수용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1968년부터 1969년까지 한 해가 넘는 오랜 기간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계속)

조동진 박사 (조동진선교학연구소)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