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mw.jpg이스라엘의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Golda Mayer)는 외교수단을 통한 중동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으며 은퇴한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메이어가 세상을 뜬 후에야 그녀가 12년 동안 백혈병을 앓아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백혈병도 그녀의 열심을 막지 못했습니다. 메이어의 자서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 얼굴이 못난 것이 다행이었다. 내가 못났기에 열심히 기도했고 공부했다. 나의 약함은 이 나라에 도움이 되었다.”

2013년 윔블던 주니어 남자 단식 준우승을 한 정현은 어릴 때 약시가 되었습니다. 정상시력으로 돌릴 수 없었지만 “아이의 눈을 위하여 넓고 초록색인 것을 많이 보게 하라”는 의사의 권유를 듣고 테니스를 시작합니다. 치료 목적으로 시작한 테니스였지만 체격 조건이 뛰어나고 운동 신경이 좋았던 정현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약시도 그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약시라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테니스 전문가들은 그의 강점 중 하나로 동체시력(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시력)을 꼽는데, 이를 발달시킨 것이 바로 약시였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아 사물을 볼 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집중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체시력이 발달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테니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즐기며 연습을 합니다. 그는 테니스를 즐깁니다.

올림픽이 열렸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의 도시 로고 디자인으로 유명한 하비에르 마리스칼(Javier Mariscal)은 대화를 할 때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산만합니다. 그래픽 작품도 아이가 손으로 쓱싹 대강 그린 듯합니다. 그는 난독증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말 대신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편했습니다. 지금도 사물을 이미지로 만들어 머릿속에 기억을 합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바르셀로나 도시 로고는 역설적으로 난독증이 준 선물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Barcelona)라는 긴 단어를 한 눈에 볼 수가 없었던 그는 ‘바르(Bar)’, ‘셀(Cel)’, ‘오나(Ona)’로 끊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각 단어가 카탈란(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언어)으로 각각 ‘주점’, ‘하늘’, ‘파도’라는 뜻인 것을 발견하였고, 각 단어 속에 술, 하늘, 파도를 그려 넣었다는 것입니다. 이 로고 덕에 바르셀로나는 술, 하늘, 파도의 도시라는 별명과 함께 자유로운 휴양 도시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미국 라이트주립대의 바이올린 부교수이자 대학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차인홍 교수는 ‘휠체어의 지휘자’로 불립니다. 그는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불편했고,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 탓에 아홉 살 때 대전의 재활원에 맡겨져 7년 간 생활했습니다. 열두 살 때 재활원에서 처음 들었던 바이올린 소리가 그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자원봉사 바이올린 선생님에게 틈틈이 교습을 받으면서 의자와 보면대도 없이 방바닥에 앉아 연습했습니다. 바이올린 연습을 시작한지 1년 반 만에 충남 음악 콩쿠르 초등부 1위를 차지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감을 얻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재활원에서 초등 과정을 마쳤지만 가정 형편과 장애 때문에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열여덟 살 때 재활원 친구들과 베데스다 현악 4중주단을 만들어 제1바이올린을 맡았습니다.

단원 네 명은 셋방을 얻어 합숙했고, 그는 아침 6시면 일어나 먼지 쌓인 연탄 창고에서 하루 열 시간씩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그는 24세 때인 1982년 미국 신시내티 음대로 유학을 떠났고, 이어 뉴욕시립대의 브루클린 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게 됩니다. 1991년 귀국해 대전시향의 악장을 6년간 맡았다가 1996년 지휘 분야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립대로 다시 유학을 떠났습니다.

박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악단에 입단하기 위해 수없이 오디션에 응모했지만 모두 낙방했습니다. 하지만 마침 라이트주립대의 바이올린 교수 모집에 응모해서 2000년 조교수로 선발됐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위대한 음악가가 되겠다거나 명예를 얻고 싶은 욕심은 없다. 삶을 축복으로 여기면서 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이들에게는 장애와 단점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그 장애를 발판으로 더 좋은 것을 이루어 냈습니다. 못생긴 것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를 했고, 약시 때문에 더 집중을 하여 보는 연습을 해 동체시력이 발달했습니다. 난독증으로 긴 글자를 한꺼번에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잘라서 보았고, 그 속에서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소아마비였기 때문에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하루 열 시간씩 바이올린 연습을 했습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들에게 포기란 없었습니다. 또 이들은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면서 살아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우리의 장애와 단점들을 이겨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우리의 삶의 모습 그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한국밀알선교단 단장 이민우 목사
한국밀알선교단 제공(밀알보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