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한 개인을 사용하신 적이 너무도 많다는 말씀에 대해 지난번 글에서 다룬 바 있다. 이번에도 이처럼 한 영혼에 주목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데, 오늘 이야기의 중심은 나아만 장군에 대한 것이다.
왕하 5장에는 엘리사 선지자 이외에도 하나님이 사용하신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한 공통적인 목적에 동일하게 쓰인 것을 보게 된다. 그 인물 중에 첫 번째는 나아만 장군을 전도한 무명의 한 소녀이다. 그녀는 주인의 병을 자기 나라 선지자인 엘리사가 고칠 것을 확신할 정도로 견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3절에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병을 고치리이다’고 말했다. 결국엔 적국의 하찮은 포로요 천한 노예 신분이며 이름도 모르는 이 소녀의 말 한마디가 역사를 뒤바꿀 정도의 놀라운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다. 적국의 유명한 장군 나아만의 병을 고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아람 왕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적국의 군주였다. 따라서 당연히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으나 자신의 가장 신임하는 장군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적국에 보낼 정도로 신하를 사랑했고, 자신의 친서까지 써 준 왕이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만, 그러나 하나님만은 하실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왕의 친서에는 엘리사 선지자에 대해서는 없었지만, 이스라엘 왕에게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니 그를 잘 받아주시고 그의 병을 고치는 데 최대한 협조를 부탁드립니다’는 정중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쟁을 서로 치렀던 상대의 군주에게 자기의 가장 신임하는 장군을 보낸다는 사실 자체도 매우 어려운 일인데, 여기에 친서까지 써서 부탁할 정도라면 이 왕도 무언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싶은 사람임이 틀림없었다는 말이 된다.
세 번째 등장하는 인물은 나아만 장군의 고침을 받기 위해 그와 함께 수행했던 종들이다. 주인 나아만 장군과 함께 이스라엘에 당도하였을 때 나아만의 예상은 엘리사 선지자가 직접 나아와 그를 융숭하게 영접하여 줄 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사가 보낸 종을 통해 ‘요단강 물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는 말만 전달받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나아만이 분노를 금치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그의 종들이 그의 주인에게 나아가, ‘선지자가 당신의 병을 낮게 해 준다면 당신에게 이보다 더 큰 일을 말하였을지라도 따르지 아니하겠나이까?’라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엔 그 종들의 말대로 나아만은 요단강물에 들어가 일곱 번 그의 몸을 담갔고 마침내 치유의 놀라운 역사가 임했던 것이다. 만약 나아만이 분노를 참지 못한 채 그의 종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돌아갔다면 그는 평생 그 무서운 나병을 안고 살았어야만 했을 것이고, 양국의 관계는 이전보다 더 악화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아만의 종들은 비록 하찮은 존재들이었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케 된 사실이다.
네 번째 등장하는 인물은 엘리사 선지자이다. 나아만 장군의 병을 치료하는 오늘의 이야기에서 엘리사가 한 말과 행동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적국의 장군이었지만 그는 나아만에게 ‘크고 존귀한 자’라 하였고, 나아만이 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나라에 왔을 때 엘리사는 그의 종을 보내어 ‘요단강 물에 들어가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밖에 한 것이 없었다. 왜 자신이 직접 그에게 가서 고쳐주지 아니하고 그의 종을 보내어 그런 말만 전달하도록 했을까? 그가 직접 가서 나아만의 환부에 손을 얹고 기도라도 했더라면 나아만이 처음부터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고, 더 나아가 양국 간에도 아슬아슬한 관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데 선지자가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면 아마 이런 이유였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아만 장군의 병은 인간의 치료로서는 불가능한 병이었고, 하나님만이 치료하실 병이라는 사실을 엘리사는 애초부터 알았을 것이다. 그가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방의 장수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고 참 신이신 것을 알려주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아만이 치료를 받고 나중에 자기를 찾아와 주는 예물들을 모두 다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치료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엘리사 선지자야말로 하나님만을 높이는 겸손한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는 말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었던, 이상의 배경과 관련된 사람들의 합력으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나아가셨던 것이다. 할렐루야!
마지막 여섯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오늘 본문에서 가장 주목이 된 나아만 장군이다. 그가 선지자 엘리사의 말대로 하여 자신의 병을 고치기까지의 그간의 과정은 이미 앞에서 다 다루었으므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다만 그가 엘리사의 명령대로 요단강 물에 몸을 일곱 번 담그고 깨끗이 나아진 후에 먼저 그는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후에 그가 엘리사에게 한 말을 우리는 다시 주목해야 하는데, 오늘 본문 15절에서 18절까지다. 여기서 그는 엘리사에게 다음의 세 가지를 부탁한 것을 본다. 오늘 메시지의 핵심이 바로 이 부분에 있으므로 주목했으면 한다.
첫째는 노새 두 마리가 싣고 갈 정도의 이스라엘의 흙을 퍼 가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스라엘로부터 가져온 흙으로 자기 나라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만들어 번제물과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이것은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지방신의 개념에서 나온 것으로, 신은 언제나 자기 땅이 있는 곳에서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 말이다. 셋째로 그는 엘리사에게 본국의 주 신(神)인 림몬 신전으로 자기 왕이 들어갈 때, 함께 수행하는 것을 용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 당시 림몬 신은 여러 셈족 문화에서 숭배했던 폭풍과 다산의 신으로, 바알이나 하닷 신으로도 알려진 대표적인 이방 신이었다. 나아만 장군의 이상의 세 가지 부탁과 요구에 대해 엘리사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아무 답변도 없었고, 그에게 그저 ‘평안히 가십시오’라고만 대답했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다.
어쨌든 여기서 나아만은 예전과 같지 않았고, 좀 달라진 사람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전에는 적국의 사령관으로서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권위와 교만한 행태를 내세웠던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엘리사에게 ‘당신의 종’이라고 겸손한 자세를 보인 점으로 보아 많이 달라진 것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는 더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혼탁한 요단강을 얕보지 않았다.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는 꽤 훌륭한 신앙고백을 했다.
그렇다면 나아만의 신앙은 과연 올바른 신앙이었을까? 많은 설교자가 그에 대한 신앙을 증거할 만큼 그는 과연 본받을 만한 신앙을 소유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해 한 번 묵상해 보고 싶다.
우선 나아만이 고백했던 말 중 15절에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라는 고백이 무슨 의미일까? 이 말은 이스라엘 땅 이외에는 온 천하에 그 어떤 신도 없는 줄 아는 것, 그러니까 나아만은 오직 이스라엘 땅에서만, 그리고 그 땅에 있는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치유와 능력이 있음을 깨달았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그는 17절에서 이스라엘 땅에 있는 흙을 퍼갖고 자기 나라로 가서 번제단을 만들어 희생 제사를 드리려고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신앙은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한 곳에만 계시는 신으로 믿은 것이지 온 세상 어느 곳에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신앙을 가졌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나아만은 18절에서 자신의 군주와 함께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서 같이 경배하게 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엘리사에게 간청을 했다. 이것은 하나님만을 참 신이라고 고백한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여전히 자기 나라의 신을 섬기겠다는 고백을 의미한다. 또한 자기도 왕과 함께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서 경배하겠다는 것은, 그러니까 그 나라의 신탁에 왕과 같은 반열에 서보겠다는 일종의 교만한 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나아만의 고백과 태도에서 우리는 오늘의 선교 사역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한 나라나 특정한 지역에만 한정된 신이 아니라, 온 세계 여러 나라와 민족과 열방에서도 다 같이 경배해야 하는 하나님이시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혹은 나의 교회의 하나님, 내 나라의 하나님이라는 제한된 분으로 믿는 믿음을 가졌다면 이를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온 세계를 지으시고 천하 만민을 다스리시는,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계시는 하나님으로 의지하고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둘째, 구원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구원의 역사와 경험은 언제나 우주적이며 공동체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개인적으로만 제한시키려는 이기적인 신앙에서 떠나야 할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 대한 사역은 얼마든지 상황적으로 다르게 적용될 수 있지만, 신앙고백만은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그리고 절대적으로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고백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우리는 나아만 장군을 통해 우리의 바른 신앙과 바른 선교적 마음을 갖기를 원한다.
[말씀묵상기도]
1.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의 무대와 배경에 등장하는 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어떤 한 개인이라도 귀히 쓰시려는 섭리와 계획을 가진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도 한 개인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며 한 영혼이라도 놓치지 않고 전도하게 하소서.
3. 나아만의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도 잘못된 신앙과 바르지 못한 선교적 마음이 있는지 회개하게 하시고 올바른 믿음과 선교적 마음을 갖게 하소서.
김영휘 목사/선교사
KWMA 운영이사
시니어선교한국 실행위원
서울남교회 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