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근기 목사
▲백근기 목사
지난주 10월 10일은 놀라운 소식에 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소설가 한강 여류 작가의 노벨문학상에 대하여 찬반 의견이 팽배한 상황을 주시하면서 오늘 주일 오후 시간에 잠시 휴대폰 자판을 두드려 본다. 필자는 은퇴목사이며, 은퇴 이후에 문학의 길을 적극적으로 걷고 있기에 상기 주제를 가지고 이 글을 쓰고 싶었다.

1. 세속적인 상(賞)

문학계에 발을 디뎌보니 문학인들은 상(賞)에 대하여 예민함을 느꼈다. 문인들에게 주는 많은 종류의 상과 문인들이 받고 싶어 하는 상들이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상(賞)의 권위는 세 가지가 융합될 때 좋은 상이 된다. 1) 누구의 이름으로 받는 상인가? 2) 어떤 단체가 주는 상인가? 3) 상금은 얼마인가! 이 세 가지가 고르게 잘 융합될 때 권위있는 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필자는 두 가지 상을 늘 염두에 두고, 내가 아닌 문학인(利他精神)들이 수상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었다. 첫째, 늘봄 문학상. 늘봄은 전영택 목사님의 아호이다. 고(故) 전영택은 감리교회의 목사이셨고, 소설가이었다. 그리고 찬송가 559장을 작사하신 분이다. 늘봄은 한국문단을 최초로 만드신 분이다. 기독교문인협회와 현재 최대 규모로 확장된 한국문인협회를 창립하신 분이다.

그리고, 숙명여자대학교 음대학장을 역임하시고 남산감리교회 장로이셨던 고(故) 구두회 작곡가께서 작곡함으로써 찬송가 559장은 명실공히 <감리교회 찬송>으로써 모든 크리스천들이 즐겨 부르는 불후의 작품이 되었다. 따라서, 감리회는 늘봄 문학상을 제정하여 시대적으로 감리교인들에게 자존감과 한국 사회에 선교의 영역을 넓혀 나아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본다.

둘째, 노벨문학상. 한국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가 왔다고 늘 말하곤 하였다. K-팝, K-스포츠 등등(等等) 심지어 김치까지 세계화가 되었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문학의 세계화는 노벨문학상이란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 누군가 문학의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대상을 발굴하여 끌어주고 밀어줘야 한다고 늘 주창해 보았다. K문학이 세계적 정상에 오를 때, 세계 속의 한국인의 위상은 국위선양과 함께 캐릭터가 높아질 것으로 보았다. 문학가가 애국하는 힘은 펜(붓)에 있다.

한국문학계에서 사용하는 이러한 유명한 문장이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지금 온 나라 안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알려진 소설가 한강 씨에 대한 찬반(贊反) 스토리가 들풀처럼 돋고 있다. 한강 씨가 태어난 시대적 상황아래 그가 집필한 작품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소설 속에서 왜곡했다는 평가로 노벨문학상의 권위는 짓밟히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한강 씨는 작품으로 좌파 작가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고 주장하며,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심사위원회는 한국의 과거사를 잘못 인식하였다고 서슴없이 공격하고 있는 현시점이 오늘이다. 작가를 보는 역사적 관점과 사상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보니, 한강 씨가 노벨문학상 예비 후보자로 미리 알려졌다면 아마도 그에게는 노벨문학상은 물건너갈뻔 하였다. 그러나, 우선 한국인으로 최초이며, 아시아 여성으로 최초로 받는 노벨문학상임을 감안하여 우리 국민들이 다 함께 인정할 수는 없을까!

2. 천국에서의 상(賞)

천국에서 받을 상(賞)은 면류관으로 성경은 기록되었는데, 신구약성서(新舊約聖書)에 약 46번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땅에서 사람들이 씌워준 것은 가시면류관이었다.(마27:29, 막15:17, 요19:2) 그러나, 천국에서는 금 면류관을 쓰고 계신다.(계14:14) 크리스천들에게는 이 땅이 아닌 천국에 소망을 두어야겠다. 그곳에서 믿는 자, 죽도록 충성스러웠던 성도들에게는 주께로부터 받을 면류관이 있다.

몇 가지 요약하여보면 생명의 면류관(계2:10), 영광 면류관(벧전5:4), 의(義)의 면류관(딤후4:8) 등(等)이 있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천국에서 상(賞)을 받기 위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을 위하여 일편단심 충성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구원! 그 이후! 그 은혜에 감사하고, 나같은 죄인을 부르심(召命)과 사명(使命)주셨기에 죽도록 충성(忠誠)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던 바울(Paul)은 그가 쓴 서신에서 천국에서 받을 賞에 대하여 남긴 서신이 있었다. 디모데후서 4장 6~8절을 인용하고 싶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義)의 면류관(冕旒冠)이 예비되었으므로 主 곧 義로우신 재판장(裁判長)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主의 나타나심을 사모(思慕)하는 모든 者에게니라”고 하셨다.

고로, 모든 크리스천 작가들은 세속적인 상(賞)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해야겠다는 깨달음을 갖는 주일이 오늘이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명언을 가슴에 품고 톨스토이, 토스트예프스키, 존 밀턴, 헤밍웨이, 펄 벅, 이광수, 김소월, 심훈 등등(等等) 그들과 같이 좋은 작품으로 당대와 다음세대에 불후(不朽)의 作品을 남기고, 하늘나라에 가서 義의 冕旒冠을 기대하는 영적 삶을 추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3. 한강 씨의 교훈

인간은 어릴 때부터 읽고, 듣고, 보고, 배우면서 성장한다. 그럴 때 가치관이 싹트고, 세계관이 형성된다. 필자가 단연코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강 씨가 노벨문학상 예비대상자로 상정되었다는 소식이 사전에 국내 안에 공개되고, 뉴스화되었다면 지금처럼 국내 반응은 어수선하여 그나마 예비 후보에서 탈락될 수 있지 않했을까! 지금 판단되어진다.

왜냐고 묻는다면, 문학이 정치적으로 이슈화 되기 때문이다. 진짜 아무도 모르는 깜깜 속에 국내 여론이 전무하고 조용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스웨덴 한림원은 그 여류 작가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준 결과가 나타났다고 본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마다 좌우파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다르다. 북한이란 사회공산주의가 존재함으로써 국내 분위기는 매우 심각하다.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을 향하여 도전하고, 역행하는 세력을 좌파, 친북종파, 주사파로 단죄하는 보수 우파들이 있기 때문에 작가가 각 장르에서 작품을 발표할 때는 삼가 조심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다.

지금 끊임없이 세계 최대의 문학상 노벨의 이름으로 받으며, 상금도 13억 4천만 원을 받는 문인들이 받는 상 가운데 최고의 영예에 자리에 앉는 영광스러운 상(賞)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여류 작가는 어쩌면 그런 상(賞)이 가시면류관이 될 수도 있으리라 느껴진다.

다만 국민들은 소설의 내용도 중요하나, 이미 주사위가 던져졌으니 문학적인 표현에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삼가함이 좋으리라고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공감(共感), 공생(共生), 공유(共有)하여 다가오는 미래세대의 거울처럼 삼았으면 어떨까!

청송(靑松) 백근기 목사(㈔기독교문학가협회 상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