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파가 안정 유지에 실패한 ‘공백’ 시 극단주의자 승리,
극단주의자들의 문화 장악이 훨씬 쉬워지기 때문”
2014년 6월 10일은 시리아 남부에 칼리프 국가를 형성한 IS가 이라크 제2의 도시이자 인근에 유전을 보유한 모술로 진군한 날이다. GCR의 글로벌 전략 및 연구 책임자인 론 보이드 맥밀런 박사에 따르면, 당시 6만 명의 이라크군이 이들을 격퇴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들은 4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지원받은 35만 군대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IS가 단 1,300명의 전사를 이끌고 접근하자 이라크군 사령관이 가장 먼저 탈영하고, 사령관을 따라 3일 만에 6만 병력이 모두 도망갔다.
이라크 북부 수니파는 심각한 부패와 억압을 일삼던 바그다드의 시아파 정부에 싫증이 났기에 IS를 환영했다. 시아파 정부는 앞서 수니파였던 사담 후세인 정권 하에서 수십년 간 받은 탄압에 대한 보복을 하는 등 양측간 갈등은 지속되어 왔다.
IS의 모술 점령 후에는 끔찍한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 맥밀런 박사는 “쿠르드족 토착 종교집단인 야지디족들이 도망쳤지만, 종종 야지디족 남성들이 학살되고 여성들은 전사들에게 넘겨졌다”며 “니네베 평원의 약 10만 명의 기독교인은 비교적 안전한 북부 쿠르드 지역으로 도망쳐야 했다. 많은 사람이 살해되었지만, 대부분은 가치 있는 것들을 빼앗긴 후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떠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또 IS는 젊은 이라크군 군사들을 구덩이 앞에 줄지어 세워놓고 총살하는 등 인간의 야만성과 악의 현실을 다시 보게 했다.
현재 모술에는 탈출한 10만 명 중 절반도 안 되는 기독교인들이 귀환한 상태다. 맥밀런 박사는 “당신을 미워했던 이웃이 지금 당신의 집에 사는 도시로 어떻게 돌아가겠나. 아니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마을로 어떻게 가겠나”라며 “아르빌과 같은 도시로 피신한 기독교인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다. 특히 젊은이들은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집이었던 곳과 거의 관련이 없어 (모술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맥밀런 박사는 2006년 이라크에서 시작된 IS는 미국 당국에 해고된 전직 이라크 정부 직원들로 구성된 민병대이며, 그 수가 많고 무장이 잘 되어 있으며 유능하고 필사적이라는 특징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강력한 이슬람 단체가 아니었지만, 몇 년 후 알카에다와 협력하면서 바뀌었다. IS가 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가 되면서 시리아 분쟁을 이용하여 작전 중심지를 국경 너머로 옮겼는데, 그 지역은 권력의 공백이 있었고, 누구도 그들과 맞서고 싶어하지 않았다”라며 “곤경에 처한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는 ISIS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는데, 이는 서방에 ‘내게 지원하지 않으면 이런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ISIS가 그들 사이에 형성한 완충지대가 꽤 유용하다고 여겼고, 터키는 ISIS와 석유를 거래했다. 라카를 행정 중심지로 삼고 영토를 확장한 ISIS는 2010년 등장한 새로운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와 함께 북부 이라크로 진출하면서 이슬람 최고 지도자가 통치하는 칼리프 국가를 선포했다. 이후 탑에서 사람들을 던져 죽이고, 카메라 앞에서 수백 명을 처형하고, 여성들을 노예로 삼으며 계획된 ‘야만’을 보여주었다. 홍보에 탁월한 그들은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고, 폭력을 찬미하고 이를 공포 조성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또 당시 전 세계에서 3만 명이 넘는 젊은이가 ISIS에 합류하기 위해 몰려들어 지하디스트가 되었다. 맥밀런 박사는 “서방은 무서운 폭력과 정교한 홍보의 새로운 조합 때문만이 아니라 자국 사회의 젊은 무슬림들이 급진화되어 자국에서 잔혹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그는 “(루마니아 태생 미국의 유대계 작가이자 교수인) 엘리 비젤(Elie Wiesel)은 ‘히틀러를 어떻게 막느냐’는 질문에 ‘히틀러가 되기 전’이라고 대답했다. 중요한 교훈은 사회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공백은 실제로 온건파 세력이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온건파가 실패하면 극단주의자가 승리한다. 왜냐하면 극단주의자들이 문화를 장악하기가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IS 국가는 2017년 망했지만, 여전히 몇 달간 치열한 전투를 했고 도시의 대부분이 폐허가 됐다. IS의 많은 지도자는 도망쳤고, 이후 특수작전에서 사살됐다. 알바그다디는 2019년 10월 자신이 숨어 있던 터널에 미군이 진입하자 자살조끼를 폭발시켜, 자신의 어린 자녀 2명의 목숨도 함께 앗아갔다.
맥밀런 박사는 ‘IS가 끝났느냐’는 질문에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북부 이라크의 산악 지대에 재결집의 증거가 있다. 하지만 다시 국가를 형성할 가능성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많은 ISIS 전투원이 남쪽으로 도피하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로 도주해, 그곳의 신흥 이슬람 극단주의 운동에 자금을 대고 전문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맥밀런 박사는 “그들은 범죄사업을 운영하는 데 능숙하다. 지하드 운동에는 항상 돈이 필요하므로, 납치, 마약 밀수, 무기 밀수, 지역 주민 강탈에 전문가”라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교육받지 못하고 직업이 없는 17~24세 사이의 청년이 수백만 명 있다. 이들이 종종 급여를 받고 가족을 부양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극단주의 운동 중 하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하라 사막 남쪽 경계 지역인 사헬 지역에는 10년 전 5개의 주요 지하드 운동이 있었으나, 지금은 20개가 넘으면서 불안정한 상황이 되었다. 맥밀런 박사는 이슬람 극단주의의 뿌리가 깊고 수십 년 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IS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임을 지적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뿌리에는 수니파 이슬람 세계의 두 가지 강력한 요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금을 지원하는 극단적인 근본주의 이슬람인 와하비즘이다. 와하비즘은 이슬람법인 샤리아법을 강요하고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하며 시아파와 수피파 무슬림을 기독교인과 유대인과 함께 박해받아야 할 이단자로 간주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석유 자금을 동원해 와하비즘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세운 모스크와 훈련받은 설교자들이 이 종파의 이슬람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카에다와 IS의 이념 또한 와하비즘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파키스탄 정보기관이 탈레반 계열 운동을 지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맥밀런 박사는 지하드 단체에 잠입시켰던 사람이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자금을 모으고 교리를 배운 뒤, 파키스탄으로 가서 운동 조직 전술, 폭탄 제조, 암살용 무기 다루기 등을 배웠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두 가지 근본 원인이 계속 존재하는 한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는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남을 것”이라며 “사람들은 IS가 대부분 제압되었다고 해서 이슬람 극단주의의 위협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오사마 빈 라덴은 칼리프 국가 창설이 중대한 전술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항상 말했다. 칼리프 국가 건설은 지역 및 세계 강대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맞서 영토를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그의 알카에다의 목표는 세계적인 이슬람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며, 충분히 급진화된 무슬림 공동체와 국가의 수적 성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빈라덴은 물론 폭력을 승인하고 후원했지만, 인구통계학적 변화를 통해 무슬림 세계가 실현될 것이라고 봤다”고 전했다. 이때 알바그다디와 빈 라덴이 갈라섰는데, IS는 칼리프 국가를 지지하지 않는 모든 무슬림을 불신자로 간주하고 죽여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모술 지역에서는 IS로부터 박해받은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들이 회자 되고 있다. 맥밀런 박사는 “애리조나 출신의 25세 기독교인인 카일라 뮬러(Kayla Mueller)는 국경없는의사회에 시리아 친구와 합류했다가 알바그다디에 체포됐고, 18개월 후 살해됐다. 또 약 18명의 서양인이 ISIS에 포로로 잡혔다”라며 “2012년 체포된 미국 언론인 제임스 폴리(James Foley)는 포로 생활 중 이슬람으로 개종한 기독교인으로, 2014년 그의 끔찍한 참수 사건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되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놀라운 용서를 보여주었다. 폴리의 어머니는 이후 제임스 W. 폴리 레거시 재단을 설립하여 해외에 억류된 미국 포로들을 지지하고 언론인들의 안전을 증진시키는 활동을 했다.
폭력은 역설적이게도 지역교회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맥밀런 박사는 “폭력으로 인해 (이슬람에 혐오감을 느낀) 많은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했고, 교회는 눈에 띄게 성장했다. 오랜 세월 적대적이었던 오래된 교파들 간 갈등도 기도 운동을 통해 해소되었다”라며 “IS의 포로들을 구출하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한 놀라운 지역의 영웅들도 있다. 제가 아는 한 사람은 232명의 포로를 구했는데, 그는 여러 세대에 영감을 줄 기독교인의 용기를 보여 주었다”라고 말했다.
한편, GCR은 이라크와 중동 및 기타 지역의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책(권당 5달 러)과 오디오 성경 등을 전달하여 신앙을 강하게 하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