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구 목사
▲이선구 목사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의 불교문화와 태조 이성계의 조선을 건국한 후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인해서 선조들은 자연스럽게 조상 제사를 지내고 명절에는 차례를 지내는 것이 문화로 굳어져 있다. 누가 제사를 지내거나 차례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조상님이나 부모님들이 찾아와서 자신들이 정성껏 준비해 놓은 음식을 먹고 간다고 믿고 있을까 싶지만, 이런 문화의 바탕 위에 뿌리내린 기독교가 선교의 초창기에는 나름대로 영적 에너지가 충만하였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영적 승리의 믿음과 신앙으로 순교의 길을 가신 많은 믿음의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이 땅 위에 6만 교회가 세워졌고, 천만이 넘는 성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은혜와 복을 받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온 세상에 홍수가 나면 정작 마실 물이 없어서 갈증을 해결하지 못 한다”는 말이 있듯이 오늘날 예배와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은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철야예배, 새벽예배 외에도 여러가지 목적과 방법으로 더 많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실상이다.

분명한 사실은 관계의 변화가 존재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정형화되고 당연시 되어진 유교전통과 제사문화의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 기독교인 성도들에게 영적 에너지가 필요한 시기이다.

예배는 제사가 아니며 종교 행위에 그쳐서도 안 된다. 교회마다 이렇게 많은 예배를 드리지만 한국의 사회는 세월이 갈수록 더 몰인정해지고 양극화는 심화되는 현상 속에서 과연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당연히 예배는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고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고 가르쳐 주셨다.

예배는 그리스도의 영적 에너지의 신비를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예배는 무엇보다 말씀 중의 말씀이요 인간이 되신 말씀인 그리스도와 만나는 시간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예배하는 자는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을 충만하게 받게 되는 것을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에게 성부 하나님께서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서 성령을 통하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시고 속사람이 생기를 띠면서 우리는 성 삼위일체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는 것이다.”(엡 3:17)

이처럼 예배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아서 신비 곧 영적 채움과 충만의 신비를 경험하여 세상을 이길 힘을 얻는다. 영적 에너지가 충만할 때 삶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기적이 일어나며, 기적이란 풍성한 영적 에너지를 통해서 속사람이 강건해진 성도들이 수시로 경험하는 일상이다.

찬송하는 동안 머리에 집중됐던 에너지는 가슴으로 내려온다. 기도하는 동안 땅을 향했던 시선은 하늘을 향한다. 땅의 속박과 세속의 미련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속한 신령하고 경건한 것들이 영혼을 채운다. 말씀을 경청하고 묵상하는 동안에 말씀이라는 신성의 언어는 황량하고 메마른 마음을 천국의 꽃밭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도덕적인 감정과 율법적 의지의 실천을 앞세우지 말고 그리스도의 요구조건인 영적 에너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영적 에너지가 풍성할 때 영적 신비를 맛보고 실패와 좌절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하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며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하여 속사람이 강건해지게 된다. 속사람이 강건할 때 비로소 만성적인 관계의 질병은 치유되며 습관적인 관계 방식이나 패턴에 변화가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은 관계가 설정이 될 때에 새로운 존재로 바뀌어 질 수 있다.

끝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 영적 에너지의 충만함이 시작된다.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영혼의 양식을 채우지 못하는 성도들은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풍요의 시대에 사는 성도들이 여전히 영적 굶주림에 시달리며 갈급해 하는 것은 예언자 아모스의 탄식대로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고,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영적 굶주림의 상태인 것이다.

아모스가 탄식했던 시대는 오늘날보다는 영적에너지의 소중함을 잘 알고 살았던 것 같다. 주의 말씀을 찾으려고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헤매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떠돌아다니며 영적 에너지에 대한 갈망함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바벨탑 같은 세상 맘몬의 풍요와 과학의 진보와 발전에 함몰되어 유한한 이 세상의 욕망과 탐심으로 예배의 자리에서조차도 세상을 이길 예수그리스도 에너지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축복을 요구하면서 이 땅의 일과 육신의 풍요만을 기도하는 사마리아 산의 바산의 암소가 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6만 교회와 천만의 성도여! 이제 일어나 순결하고 거룩한 주님의 신부 관계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존재의 정체성(Identity)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영적 에너지가 생명이다.

이선구 목사(지구촌사랑의쌀나눔재단 이사장, 세계선교연대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