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는 2011년 이후 12년째 내전 중이다.
▲시리아는 2011년 이후 12년째 내전 중이다. ⓒ한국오픈도어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2살 미만의 남자아이들은 모조리 죽이라는 헤롯왕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이는 오래전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마태복음 2장 18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태어난 후 결국 이집트로 피난을 가셨습니다. 그의 탄생과 함께 무수한 생명이 이유도, 까닭도 없이 죽어갔고 예수님도 친히 원수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예수 이름 때문에 수없이 많은 생명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이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는데, 왜 예수님 때문에 죽고 고난 받는 사람이 그렇게도 많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는 생명을 주는 분이 아니라 죽음을 주고, 고난을 주는 분인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며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참신이신 여호와 하나님, 만군의 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 분은 곧 하나님 자신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왕이시고, 그 분이 전능자이십니다. 그런데도 어찌 이런 불행한 일들을 그냥 보고만 있고 어떤 해결도 응답도 없이 세월만 가며 여전히 핍박과 박해로 죽어가는 일들이 지구상에 계속되고 있을까요?

때로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질문들이 우리에게 일어나곤 합니다. 시편 42편에 보면 다윗은 고난 중에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응답이나 구원이 없어서 고통하며,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며 “네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조롱을 받기까지 하였기에 “내 눈물이 밤과 낮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핍박과 박해의 자리에서 고난 받으며 고통과 괴로움 속에 처한 분들이나 죽음으로 순교하는 분들 가운데는 이 시의 내용으로 탄식하고 울부짖다가 순교당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작가 앤도 슈샤쿠가 쓴 <침묵>이라는 소설에 보면 사무라이 시대 때에 일본에 대대적인 핍박과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신부는 하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 “이처럼 당신의 백성이 비참하게 죽어 가는데, 하나님!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하고 절규하듯 외쳤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크리스천이 죽고, 그 백성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양국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믿는 정교회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서로 죽고 죽이는 마당에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전능하신 신이라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이 우리 안에서도 일어나고, 또 불신자들에게도 “네 하나님이 과연 어디에 있느냐?”고 조롱당하는 것 같은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대답이 필요한 것입니까?

시리아, 이라크의 핍박과 박해지수는 세계 상위권에 속할 만큼 이슬람의 기독교 박해는 점점 더 확산되고 잔인해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냥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답은 무엇이고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팬데믹 코로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교회는 문을 닫아야 했고...성도들은 꼭꼭 숨어야 했고... 하나님은 대체 어디에 계시는 겁니까? 앤도 슈샤쿠의 책 <침묵>에서는 신부에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그들과 함께 고난당하고 있느니라...” 즉, 고난의 자리에서 주님이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그 현장에 주님이 함께 계시고, 함께 고난당하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혼자만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 자리에 함께 계신다는 것으로 그들은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필자나 다른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함께 계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분이라면 고난과 핍박을 피하게 해주든지 건져주든지 해야지, 그냥 같이 고난만 당하는 무력한 분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하느냐는 것입니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이 갈멜산에서 대결할 때 바알 선지자들은 하루 종일 부르짖고 별짓 다 해도 응답이 없었는데, 엘리야는 단 한마디 “여호와여 불을 내리소서!”하고 외치니, 단번에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아무 응답이 없으신가 하고 탄식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내 눈물이 음식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시편 42편 5절과 11절에서 다윗은 결론적으로 고백하기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구원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생명은 제한적입니다. 그가 사는 날 동안, 허락하신 대로 주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위해 핍박받는 것은 천국을 소유하고 하늘 상이 크다고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우리의 목표는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최홍규 목사
▲최홍규 목사
두 번째는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로마서 12장 1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고, 보복하고 싶고, 되갚아 주고 싶은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일은 지금까지 반드시 그렇게 되었고, 또 그렇게 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반드시 목도할 것입니다. 다윗이 그 확신을 가지고 “여전히 찬송하리라”고 한 것처럼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평화를 위하여 힘쓰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자녀)이 되어야 하고, 오직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최홍규 목사(한국오픈도어선교회 이사)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