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30일. 송구영신예배를 앞두고 차를 운전해 오두산 전망대에 올랐다. 고양시에 있는 교회를 섬기고 있기에 북한 땅을 볼 기회는 얼마든 있다. 북한 동포를 위해 잠시 기도하고,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사와 책장에 두었다. 어떻게든 북한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송구영신예배 때 그 사진들을 보여주며 북한 땅과 동포들, 지하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다.
누가복음 10장의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야기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아는 이야기다. 심지어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는 법 해석의 기준이 있을 정도로, 그날 그 자리에서 사마리아인이 베풀고자 한 자비의 의도는 칭송되고 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를 전제해야 한다.
첫째, 우리 주변에는 언제든 강도 만난 자가 있다. 둘째, 누군가에게는 그 피 흘리는 사람을 돕지 않을 명분이 있다. 셋째, 누군가는 어떤 위협을 무릅쓰고서라도 피 흘린 사람을 돕는다. 넷째, 하나님은 누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아신다. 다섯째, 하나님은 죄인이어서 하나님과 원수된 나를 위해 아들을 피 흘리게 하심으로 나를 도우셨다.
성경은 제사장과 레위인이 왜 그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하여 갔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 배경을 이해하면 크게 두 가지로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피 흘린 사람을 만지면 부정해지고, 부정해진 제사장과 레위인이 직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길에 매복하고 있을지 모르는 강도들에 대한 두려움이 도움의 손길을 막았을 수도 있겠다. 둘 다 이해가 되는 명분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코로나로 인해 대면·비대면 예배의 긴장 가운데 신앙생활하고 있다. 코로나가 처음 발병하였을 때, 우리 교회는 지역 내에서 가장 먼저 문을 닫고 비대면 예배로 전환한 교회이기도 하다. 한국의 교회들은 비대면이 성경적이냐 아니냐로 논쟁을 하고, 이제 그 논쟁도 더 이상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오히려 비대면 예배를 지속하지 않으면 교인들이 떠날까 걱정하는 때를 맞고 있다.
그런데 비행기 타고 몇 시간만 가면 나오는 아프가니스탄 성도들은 기독교 박해 1위 국가라는 분위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오랫동안 2위 국가를 유지하다 1위 국가가 되었으니, 그들 자신의 애타는 기도와 그들을 위한 세계 기독교인들의 기도에 하나님이 무심하신 것은 아닌지에 대한 자조적 질문이 입 밖으로 새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박해 지수가 1위에서 2위로 낮아진 것으로 보고된 북한에 대해서도 오해하면 안 된다. 북한 동포들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불법 탈레반 정부의 탄압이 강해진 것뿐이다. 그동안 조마조마했던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일 뿐이란 얘기다.
강단에서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 대해 설교하려면,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을 죄인을 위해 죽이신 얘기를 하려면, 이제 우리는 아프가니스탄과 북한을 비롯한 수많은 박해 국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할 줄 알고도 그 믿음의 길을 걸었던, 그야말로 강도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그 두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 그 자체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강도 만난 자들을 도울 것인가? 가장 추상적인 말 같지만, 가장 힘 있는 말, 중보 기도다. 내 손으로는 그를 싸매 줄 수 없지만, 성령께서는 그들을 만지실 수 있다. 사마리아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 섬김의 자리를 잠시라도 비울 수밖에 없지만, 성령께서는 늘 함께하실 것이다.
모든 기도회 때마다 북한과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기도의 제목을 끊임없이 올리고,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30일 기도 소책자를 적극 활용하자. 이렇게 기도의 저변을 끊임없이 마련하면 하나님이 섭리하신 때에 반드시 구원의 날이 오리라 믿는다.
윤상덕 목사(일산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