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C 국제본부에 오래 있다 보니, 그동안에 C.C.C에서 파송되어 해외에 나가 사역하시는 많은 미국 선교사님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아프리카, 남미, 러시아, 유럽, 아시아 등의 여러 나라에서 사역하신 분들의 간증을 듣고 감동받은 일도 많았다.
그러다가 한 5년쯤 전 같은 사무실에 있는 친구 간사가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인 간사님이 인도에서 사역하고 있는데 가끔 질문이 있어서 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번에 전화 오면 연결시켜 준다고 하더니 과연 몇 주 후에 연결해 주었다.
나는 우선 한국분이 국제 C.C.C 파송으로 인도에서 사역한다고 해서 반가웠다. 국제 C.C.C에서 파송된 선교사는 약 1,600여 명이 되는데, 67개 나라에서 현지 간사님들과 주님을 섬기고 있다. 그중에 한국인이 몇 명 끼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인도에서 사역하시는 송 간사님은 처음 알게 되었다. 우선 전화 통화가 반가웠고, 대화하는 중 사모님과 함께 인도에서 사역하신 지 한 5년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이메일이나 안부카드도 오고, 여러 가지 질문 사항이 있으면 연락이 와서 그때마다 성의껏 도와드렸다. 자연히 기도제목도 오가고, 우리 형부와 동서가 암으로 고생하는 것을 알고 열심히 기도해 주셨다.
그런데 한번은 연락이 왔는데, 본인들은 STINT(Short Term International)로 인도에 갔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물으셨다. 원래 STINT 프로그램은 대학에 다니다가 휴학하고 1년 정도 해외에 나가 사역하는 팀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 장기로 사역하는 간사님들을 도와서 같이 사역하거나, 아니면 장기 선교사들이 없는 곳에 가서 언어연수를 하면서 장기 선교사들이 와서 사역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초사역을 다지게 된다. 때로는 대학생이 아닌 사람들도 가고, 혹은 미국 내에서 사역하다가 해외 사역에 장기로 헌신하기 전 1년쯤 현지에 가서 해외 사역을 체험해 보는 전임간사들도 있다.
송 선교사님은 미국에서 30여 년 동안 엔지니어로 일을 하시고 정년퇴직한 후에 워싱턴 D.C. 지역에서 사시면서 C.C.C의 STINT 프로그램을 소개받으시고, 그 팀에 참가하여 인도에 가신 것이었다.
인도 C.C.C가 땅을 기증하여서 그 집을 짓게 되었고, 처음에는 인도 C.C.C에서 커뮤니티 (community) 사역과 관련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곳에 가서 사역할 사람이 없어서 송 간사님이 자원해서 사역하게 된 지 5년 정도 된다고 하셨다.
그분은 “내 인생 노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한 사역을 주셔서 골든 타임(Golden time)을 보내고 있다”면서 황송한 마음으로 사역하신다고 고백하셨다. 일주일에 3~4회씩 먼지 나는 시골길 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오가며,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많이 체험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송 선교사님이 홈 오브 호프에 가면, 벌써 그분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힘없이 누워있던 사람들이 송 선교사님을 부르면서 자기에게 와서 기도해주기를 요청한다고 하셨다. 냄새나고 불결한 환자들, 오갈 데 없거나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킨 것도 수 차례이고, 그동안 열심히 기도하면서 복음 전하여 지옥으로 달려가던 영혼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어 천국으로 인도한 것도 수없이 많다고 하셨다.
나는 송 선교사님과 몇 년 동안 전화 혹은 이메일로 연락하면서 이분이 얼마나 순수하고 겸허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열정의 사역자인지 누누이 느꼈다. 그분의 겸손한 태도와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 때문에 은혜도 많이 받고, 내 자신의 부족함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협동간사로 있어야 하는지 전임간사로 있어야 하는지, 보험 관계는 어떻게 하는지 등 해결해야 될 일들이 있어서 송 선교사님이 국제 C.C.C.에 오셔서 그 지역 담당 부총재와 회의할 때, 그리고 국제 C.C.C.의 인사과와 여러 차례 이메일이 오고 갈 때, STINT에서 풀타임 전임간사이면서 자비량으로 신분이 바뀔 때 좀 도와드렸다. 나는 별로 한 일도 없는데 그 일들을 너무나 고마워하셔서 내가 오히려 민망했다.
어쨌든 인도에서 사역하게 되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다고 항상 이야기하시면서, 본인은 이제 일하다가 죽을 곳을 주셔서 너무나 행복하다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처럼 부족한 노인네한테도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부르셨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송 선교사님 부부가 올해에 미국 여권이 만기이고 비자도 새로 받아야 해서 미국에서 몇 달 체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모님이 다리가 너무 아파서 인도까지의 24~30여 시간의 왕복 여행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하셨다. 국제본부의 인사과에서는 한 1년 정도 병가를 내고 미국에 있으면서 치료를 받은 후에 인도로 가는 것을 권면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기로 하시고 인도 비자를 다시 받아 이것저것 정리한다고 송 선교사님 혼자서 인도로 가셨다. 그런데 다시 연락이 왔다. 본인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1년이나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국제 C.C.C의 규정상 부부가 다른 곳에 떨어져 살면서 사역할 수는 없고, 1년이나 기다려도 사모님의 건강이 더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으니 그냥 사표를 내고 혼자서라도 사역을 계속하겠다고 하셨다!
여러 번의 이메일이 오가면서 대화를 나누어 보았지만, 본인의 결심은 이미 확고하셨다. 사모님은 텍사스의 아들 집 옆에 집을 마련했고, 자동차는 아들들이 사드렸고, 그런대로 혼자서 지낼만하다고 남편 송 선교사님에게 혼자 가서 사역해도 좋다는 허락을 이미 하셨단다. 그리고 자녀들도 다 이해한다고 하셨다.
80이 다 되는 나이에 손주들의 재롱이나 보면서 편안히 노년을 보내실 때도 됐지만, 장터에 놀고 있다가 마지막 1시간 전에 일터로 불려간 사람처럼(마태복음 20장), 본인도 인생 마지막 한 시간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하셔서 나는 눈물이 났다.
혼자서 홈 오브 호프의 구석방에서 부엌도 없는 곳에서 식사를 챙겨 드시며 사역하신다고 해서 그곳의 환경이 어떠시냐고 계속 여쭈었더니 결국은 사실을 얘기하셨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나갈 때가 많고, 에어컨은 없고, TV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고, 부엌이 없어서 화장실의 세면대가 부엌이고, 밤에 자려고 하면 커다란 쥐들이 와서 잠을 깨우고, 모기나 기타 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고 하셔서 또 눈물이 났다.
그러나 그분의 결심은 확고했다. 숨넘어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소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때 얼마나 큰 기쁨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주님께서는 소자와 함께하시는 것을 강하게 느끼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능력을 실감한다고 했다. 냄새나고 불결하며 추한 곳이지만 주님이 함께하시는 곳이라고 하셨다. 더욱이 죽어가면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귀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인도 땅 한 구석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며, 그 때문에 그 곳의 사역이 너무 귀하여 포기할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송 선교사님의 사역이 어떤 면에서는 테레사 수녀님보다 더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수녀님은 인도 캘커타의 빈민촌에서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지만 구제적으로 복음을 전하지는 않으셨다고 한다. 물론 무언의 전도는 되었겠지만. 그러나 송 선교사님은 언제나 복음을 전하시니 얼마나 귀한 일인가! 정말 고개가 저절로 숙어지고 감동을 주시는 이 시대의 귀한 사역자이시다. 인도에서 황금 시기에 황금 사역을 하시는 송 선교사님 같은 분이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송 선교사님 화이팅!!!(이 글은 수년 전 C.C.C. 국제본부에서 근무할 때 쓴 글입니다.)
※최향숙 교장=숙명여대 학사 졸업, 오하이오주 주립대학 수학 후 C.C.C 국제본부 신학교 석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 C.C.C 숙대 간사를 거쳐 C.C.C 국제본부에서 25년간 근무했으며 현 동일프로이데아카데미 초등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석원 목사(국제기도공동체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의 사모이기도 하다.